오늘 공부 마치고 인사동 고미술전시회에 갔다가 몇 개의 간찰첩이 눈에 띄었는데, 그래도 이 서첩이 깔끔하게 남아있다. 영천군수로 가있던 오수엽이 그 지역의 유력인사인 정중기에게 보낸 간찰 8점이 첩장된 간찰첩이다.
오수엽(吳遂燁, 1689~?)은 본관이 해주(海州), 자가 군회(君晦), 아버지는 서파 오도일(吳道一), 증조할아버지가 추탄 오윤겸이다. 오수엽은 행장도 하나 남아있지 않아서 자세한 생애는 알 수 없는데, 연대기를 살펴보면 진사에서 장원을 하고 주로 지방관을 많이 역임하였다. 그의 동생 오수채의 고문서는 국편 도서관에서 본 것 같고, 해주오씨 문중에 소장하고 있던 문서들은 한중연에서 간행한 적이 있다.
얼마 전부터 영천의 영일정씨 매산가 자료가 시중에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 오늘 이 서첩을 구하였고 정중기가 받은 많은 낱장의 간찰들이 지방 옥션에 나온 것을 십여 점 구해두었던 것 같다.
정중기(鄭重器, 1685~1757)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梅山)이다.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 형제 및 이형상(李衡祥)의 문인이다. 경사에 통달하고 전고(典故)와 예제(禮制)에 밝았다. 1727년(영조 3)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1년 승정원주서, 이어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나가 이도(吏道)를 바로잡고 『여씨향약(呂氏鄕約)』에 의거하여 향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사간원정언을 거쳐 1753년 사헌부지평이 되고, 뒤에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조정에서 영남 인사를 정권에서 소외시키자 연명 상소를 하여 그 시정을 진정한 바 있다. [매산집]이 있고, 편저로 [포은속집(圃隱續集)]·[가례집요(家禮輯要)]·[주서절요집해(朱書節要集解)]가 있다.
첫댓글
어제 영천 병와학회 참석하면서 영천 유적 답사를 하였다. 포항 영일에 속하지만 영천 경계에 붙어 있는 죽장의 입암서원의 현판이 고졸하여 누구의 글씨인가 물으니 영천군수였던 오수엽의 글씨라고 한다. 오수엽이 정중기에게 보낸 간찰첩과 관련하여 댓글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