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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양이를 볼 때 천사를 믿는다 / 최세라
고양이를 볼 때 천사를 믿는다
최세라
두 개의 촛불처럼 눈동자가 흔들린다
같은 시공간에서
고양이는 동물계를 나는 인간계를 살았다
냄비에 눈송이 끓는 소리를 내며 고양이가 기대 온다
그릉그릉 물에 젖은 공간이 열린다
고양이는 동물계의 발톱으로 현관에서 가장 잘 보이는 벽지를 긁어
놓았다
나는 인간계의 이빨과 혀로 고양이를 야단쳤다
털이 티슥티슥하고 커다란 길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는데 계속 울며 전봇대 주위를 뒤지고 있었다 고양이에게도 소유라는 게 있을까
깨진 접시 조각이 방금 전 가졌던 둥그럼을 소유하듯
이해하지 못하는 기도문을 외우며
천사라고 부르면
울컥 기울어지는 게 있어서
자꾸 서려고 하는 고양이를 안는다
고양이는 아주 정교한 보일러처럼 내 목구멍에 뜨거운 호스를 밀어넣는다
방안에 오줌이 퍼진다
나는 온 방안을 더듬는다
네 개의 발로 기며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방금 전까지 소유했던
따스함을 되찾기 위해
고양이를 볼 때면 천사를 믿는다
나는 동물계를 살게 된다
—계간 《시와 경계》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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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라 / 1973년 서울 출생. 국민대학교 국문과 졸업. 2011년 《시와 반시》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복화술사의 거리』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콜센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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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양이를 볼 때 천사를 믿는다 / 최세라
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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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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