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농사 일기 / 조미숙
지인이 농사를 지어 보란다. 압해도에 텃밭을 분양한다고 해서 몇이 어울려서 상추랑 고추를 심으며 농사의 재미를 알아가던 우리에게 노는 땅이 있는데 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왕에 이렇게 된 바에 텃밭과는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둘러보러 갔는데 벌써 일은 저질러졌다. 그이의 남편이 트렉터와 비닐을 대기시켜 놓았고 비료도 뿌린 뒤였다. 모종도 준비해 두었다.
광활한 300평대 밭을 일굴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우린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텃밭은 아는 분의 도움으로 교통편이 해결됐지만 여긴 문제가 다르다. 압해도 터미널에서 한참 먼 거리였다. 하지만 바쁜 농사일을 제쳐두고 한걸음에 달려온 그이의 남편에게 차마 못 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날은 앞뒤 재지 않고 고추와 호박, 그리고 옥수수 모종까지 심고 말았다. 얼렁뚱땅 일어난 일이지만 함께하니 재미있었다.
며칠 뒤, 차를 가진 이가 합세해 우린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쁜 마음으로 새벽시장에 나가 고구마 순과 몇 가지 모종을 더 샀다. 압해도로 향하는 차에서는 시끌벅적한 희망이 넘쳤다. 수확량이 적더라도 농약은 쓰지 말자, 일을 하는 데 서로 분담하고 의논해서 뒷말이 없게 하자는 등 이런저런 약속도 하며 마냥 웃고 떠들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모종 심고 물 주고 하니 허리가 묵직하다. 물이 해결이 안 되어 근처 학교까지 소형차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물 확보가 급선무일 것 같았다. 비가 올 때나 그 뒤에 고구마를 심어야 하는데, 우리 사정에 맞춰 심다 보니 물 줄 일이 걱정을 더 했다. 다행히 언니의 시댁 식구들의 도움으로 물탱크를 구해 와 설치하긴 했는데 그 통을 채울 물 배달이 또 큰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또 농사짓는 그이의 남편에게 매달릴 수밖에.
다음날, 고구마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비닐을 씌운 상태니까 고구마 잎이 뜨거운 비닐에 타지 않게 흙을 돋워서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 생각은 미처 못 했다. 그리고 수박이나 참외, 고추 등은 두 줄로 심을 때는 지그재그로 심어야 서로 부대끼지 않고 잘 자란다고 했는데 우린 그냥 보기 좋게 심으면 될 줄 알았다. 큰 통에 물이 가득 채워질 때까지 그이의 타박이 오래 이어졌지만 그저 웃음으로 대답할 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농사짓는 것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었다.
흙을 파내 다시 고구마 다독거려 주고, 땅콩 심고 어쩌고 하느라 몸이 천근만근 되었다. 백화점이 따로 없다. 누가 이것저것 좋다 하면 거기에 종류가 늘어간다. 그래도 심을 것이 남았다. 서투른 농사꾼 때문에 애꿎은 고구마는 대부분 타 버렸어도 차곡차곡 들어서는 농작물로 뿌듯해지긴 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발을 빼서 며칠 만에 언니와 나 이렇게 두 사람만 남아서 한 일이었다.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며 밭에 가야 한다. 택시 타고 다니며 농사짓는 어설픈 농부가 있다는 현실에 실소가 터졌지만 우린 부지런히 씨앗을 뿌리고 죽은 고구마 순은 다시 심으며 끝이 없는 일을 계속했다. 비닐 씌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비닐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흙으로 덮는 일도 힘에 부쳤다. 제법 농사일에 이력이 붙은 나이지만 말이다.
수박도 넝쿨을 뻗고, 옥수수도 한 뼘 자라고, 고추도 달렸다. 제법 제 모양을 잡아가는 작물을 보자니 기특했다.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기다리는 주인의 마음을 알았나 보다. 토마토 한 알 달린 것 보고도 환호성이 터졌다. 그나저나 늘어나는 저 풀은 다 어쩔 거나?
땡볕에 땀 흘리고 고생하는 마음을 알아주듯 농작물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참외도 달리고 호박도 맺히고 가지와 오이도 제구실을 하는 듯 꽃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멀어서 자주 못 오는데도 잘 커 줬다. 사진을 찍어와 여기저기 자랑하기에 바빴다. 가진 자의 여유랄까? 익으면 잔뜩 주리라는 공수표를 수없이 날렸다.
검정콩까지 심고 나니 밭이 꽉 찼다. 일이 끝난 것 같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풀과 모기떼의 공격에 넋이 나갔다. 콩밭 매는 아낙네가 되었다. 압해도를 내 집 드나들 듯 다녔지만 수확물은 보잘 것 없었다. 콩은 순도 따 주고 했지만 한 알도 맺히지 않았고, 고구마는 칡뿌리처럼 파고들어 캐기도 힘들고 모양도 기다랗기만 했다. 고추는 빨갛게 익기 전에 병들었고 마늘은 알이 너무 작았다. 풍작은 오로지 오이와 들깻잎뿐이었다.
초보 농사꾼의 꿈은 사라졌지만 농작물이 싹 트고 자라고 꽃을 피워 열매 맺는 그 과정을 눈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어 행복했다. 척박한 토지(몇 년 묵은 밭)에서 거름도 해 주지 않았는데 최선을 다해 자라 주어 장하고 애썼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그 뒤로도 가까운 곳에 또 일을 벌였는데 그곳에서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단호박도, 참외도 잘 되었고 고구마도 수확량이 많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그동안 아버지가 아프다가 돌아가셔서 많이 일하지 못했다. 이래저래 손을 떼니 점점 흥미도 떨어졌다.
농사의 맛을 제대로 느끼진 못했지만 농사꾼으로 살았던 2여 년이 좋은 추억이 되었다. 실패한 도전이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한번은 엄마가 밭에 따라와 오랜만에 흙을 묻히고 나서 싫어하던 짜장면을 밭둑에 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추억이 사진처럼 찍혀 잊히질 않는다. 지금도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 그렇게 오졌던 일에 가슴이 떨린다.
첫댓글 크게 일을 내셨네요. 만만치 않은게 농사일 같아요.
저도 고생 길을 걷는 한 사람입니다.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죠. 하하!
300평이면 꽤 큰 밭이라는 걸, 여름철 풀이 무지 잘 자란다는 걸, 뙤약볕에서 밭일하는 것이 힘들다는 걸 잘 알기에 참 무모하다, 역시 못할 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끝에서 두 번째 문단의 처음 두 문장에 이르니 나중에 꼭 제대로 농사 한번 지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글의 힘을 맛봅니다.
몸은 힘들어도 자연이 주는 힘 덕분에 행복했어요. 한번 도전해 보세요.
작물을 키워 보니돈 주고 사먹는 것이 제일 경제적입니다. 하하, 버스와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농사를 지었다니 고생했네요. 그래도 좋은 경험 했습니다.
그니까요.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텃밭이든 큰 밭이든 농사를 지으려면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해요.
좋은 경험하셨습니다. 농사 그거 쉽지 않거던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얼치기라 한번 흉내 내 보았습니다. 하하!
버스와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텃밭 농사를 일구다니요. 엄청납니다.
저도 몇 년 해 보니 사서 먹는 게 싸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하! 제가 그토록 무모하답니다.
저는 글쓰기보다 농사가 더 힘들어요. 고된 일이었을 텐데 대단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