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
📌10년 종로 청년회관에 사진과 설치 | |
📌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평양에서 물산장려운동을 시작한 조만식 선생
1923년 1월 20일 오늘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 |
📌27년 항일단체 신간회 창립 📌37년 숭실 전문 학교장 매쿤이 신사 참배 반대로 교장 인가 취소됨. 📌38년 평양 근교 고구려 고분 보존 조치 착수 📌39년 낙랑 고분 발굴 📌44년 일제, 조선학생을 학병으로 첫 동원 | |
📌54년 중앙우체국 업무 개시
개설 당시 중앙우체국
1954년 1월 20일 오늘 중앙우체국 업무 개시 | |
📌69년 문교부, 한글전용 반대한 충남대 유정기교수 파면. 7/3 파면취소 판결 📌70년 김활란 박사 사망 -이화여대총장. 63년 막사이 사이 공익 부문상과 동양인 첫 다락방상 받아 📌71년 주 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 소련인 학자에 첫비자 발급 📌72년 동국정운 원본 전6권 발견(2월22일 국보 지정) 📌73년 헤이그 미국 대통령 특사 내한, 21일 박정희 대통령에 월남협상 설명 📌81년 민주사회당, 창당대회를 열고 총재에 고정훈 선출 📌82년 한국 정부가 경제협력 요구액은 외화 40억·상품 차관 20억 등 60억 달러 규모 📌83년 총무처, 83년1월 공직자윤리법 시행에 따라 퇴직 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영리사기업체 373개 고시 📌83년 메이어 미국 육군참모총장 내한, 북괴가 남침할 경우 핵무기 사용 한다고 언급 📌86년 북한, 팀스피리트훈련을 트집잡아 모든 남북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 한국, 회담계속을 촉구 📌86년 미국에 자동차를 처음 수출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유감표시. 김종호 내무 장관과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경질 📌88년 미국은 KAL기폭파사건과 관련 북한을 국제적 테러국가로 규정하는 등 3개항의 대 북한제재조치 발표 📌88년 떼강도 3곳 잇따라-서울 신림동 홍지동 서초동 📌88년 서울시, 10개 노선 총연장 247㎞의 고속화도로망 계획안 발표 📌88년 동대문구 상봉동에서 연탄공장 부근 주민 진폐증 첫 발병 📌89년 백화점 사기세일 들통-6개 백화점 간부 구속-가격 조작 | |
📌89년 부시 미 대통령 취임-제41대 대통령
1989년 1월 20일 오늘 부시 미 대통령 취임-제41대 대통령 | |
📌90년 문성길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1990년 문성길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프로복싱 WBC슈퍼플라이급 4위에 올라있는 문성길이 1990년 1월20일 무역회관 특설링서 벌어진 경기에서 동급챔피언인 나나 코나두를 격렬한 경기 끝에 물리치고 챔피언에 올랐다. 문성길의 프로통산 전적은 22전 20승 2패로 20승 가운데 16번을 KO로 이겼다. 그가 한국 프로복싱 사상 경량급에서 가장 무서운 주먹을 가진 선수였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수치다. | |
📌90년 통영, 괴한 2명 출현 해안초소 습격 1명살해, 총기 강탈 도주 📌91년 교육방송 프로듀서 70여명은 교육방송의 파행적 운영에 반발, 밤11시 부터 전면 제작을 기부. 📌92년 최호중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남북군사 당국자간 직통전화설치, 군사력 균형실현 남북협상 추진 📌93년 2020년까지 총연장 4523㎞의 고속도로.국도 신설(남북 7개축,동서 9개축 ,축간연결등 모두 6120㎞) 📌93년 대법원 사법제도발전委, `구속영장실질심사제'와 `기소前보석제'를 도입키로 결정 📌93년 미국 클린턴대통령 취임-보수 공화12년 장기집권 마감 📌93년 세계은행,91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340달러로 세계 30위이며, 국민소득 증가율 1위. 📌93년 경희대의료원,산부인과 부설 불임 클리닉이 정자 제공자 기초적인 조사 없이 650여회 인공수정. 📌94년 김영삼 대통령, 중국과 러시아와의 적극적인 군사 교류협력을 지시 📌94년 국악의 해 선포식 📌94년 한국은행, 새 1만원권 지폐 발행 📌95년 헌법재판소, 12ㆍ12사건과 관련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정당했다고 결정 📌95년 미국, 대북 경제제재 1단계 완화조치 발표 📌96년 서울에서 버스 전용차선제 처음으로 실시. | |
📌97년 신창원, 부산교도소 탈옥
✿1997년 1월 20일 신창원, 부산교도소 탈옥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신창원만큼이나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탈옥수도 없겠다. 그는 지난 1997년 1월20일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에 성공했다. 그는 전남 순천의 어느 아파트에 은거하고 있던 99년 7월16일 가스레인지 수리공의 신고로 검거될 때까지 2년6개월 동안 경찰의 수사망을 뚫고 전국 각지에 출몰하며 숱한 화제를 뿌렸다.
67년 전북 김제에서 빈농의 막내로 태어난 신창원은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뒤 절도 등으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했다. 89년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신창원은 서울구치소와 청송교도소 등을 거쳐 94년 11월 부산교도소로 이감돼 복역 중이었다. 경찰조사 결과 신창원은 도피생활 중에도 무려 108건의 강·절도를 저질러 9억800여만원을 강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 돈으로 다방 여종업원 등 유흥업소 여성들과 동거하면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신창원이 오랫동안 붙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동거여성들의 ‘연대의식’ 때문이었다. 이들은 신창원이 중대범죄자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다같은 소외계층’이라는 생각에서 신고하지 않았고, 은신과 도주를 도왔다. 그의 도피기간 경찰은 공조수사 부재, 주민신고 무시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많은 경찰관이 옷을 벗어야 했다. 현재 청송교도소에 복역 중인 신창원은 종교에 귀의해 독실한 신앙인이 됐으며, 암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와의 서신교환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 |
📌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차기정부는 시장경제 논리를 준수할 것”이라고 밝혀 📌98년 노ㆍ사ㆍ정위 37개 의제를 일괄타결키로 합의하고 이를 포함한 5개항의 공동선언문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