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 봄바다
11월인데도 낮이 되면 초여름 처럼 쨍한 빛을 내뿜어대니 입고 나선 코트를 팔에 걸치게 된다. 전에 없던 이상 기온을 겪으며 겨울이 올까싶다가도 코를 베어갈 듯한 매서운 한파가 저기 어디 스며 있다 올 여름처럼 우리를 괴롭힐까 슬쩍 불안감이 인다.
우리들의 관계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 이해심도 따라 늘어날 것 같았는데 환갑을 지내며 빠르게 흐르는 세월에 한 숨을 쉬면서도 튀격태격 불만이 많아지고 서운함도 늘어간다. 나만 해도 목적이 다른 두 개의 모임에서나 만나는 ㅅ에게 실망하여 요즘에는 되도록 그녀와 멀리 앉아 데면데면 대한다. 아마 그날 기분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도 들지만, 몇 십년 함께했으면서 웃자고 한 농담하나 소화하지 못하는가 싶어 말을 섞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속좁은 내 심사를 들킬까 모임은 빠지지 않는다.
나만 이렇게 옹졸한 줄 알았는데 ㅁ도 심사가 뒤틀렸는지 전화에 대고 모임에 빠지겠다고 소리소리 질러댄다. 친구라면 이러겠냐며 ㅅ이 카톡에다 자신이 들으면 뻔히 힘들어 할 말을 그렇게 꺼리낌없이 공개적으로 묻는 게 맞는 거냐며.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힘든 시절 지나가던 사람도 어떤지 묻는 판에 단 한 번, 전화로도 안부를 묻지 않은 ㅎ 등, 모르는 이들보다 못한 사람들과 모임을 이어가는 것이 맞는 일이냔다.
다들 그렇구나. 나이 드는 게 다른 것이 아니다 싶다. 좋은 것보다는 섭섭한 일이 더 크게 다가오나 보다. 나도 따져보면 어려운 일이 생길 적마다 생각할 참도 없이 ㅅ에게 파르르 전화해서 미주알고주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는 했는데. 그러면 그녀는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내 어리석은 부분을 채워줬는데. 어쩌자고 별 생각없이 한 말에 매달려 괴로워했는지.
ㅁ에게 나도 속상한 적 여러 번 있었지만 참는다고 했다. 수 십 년을 함께해서 얻은 친구를 말 한 마디에 속상해서 버리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자했더니 목소리가 조금 수그러든다. 나이가 벼슬이라고 예전처럼 생각대로 내밷지 못해서 화도 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내 감정을 누군들 느끼지 않는 이 있으랴. 손주를 얻는 이 나이에도 서로를 이해하기 보다 나를 인정해 주기를 원하는 친구들 사이의 작은 틈이 오히려 인간다워 정겹다.
첫댓글 저도 작은 실수로 어릴 때부터 한동네 살던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 아이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부디 선배님도 그러시길요.
오랜 세월 함께하다 보니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도 튀어나오네요. 나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하니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가까울수록 거리를 두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연이 아니면 균열이 아니라 갈라지겠죠.
아, 정말 오랜 친구와 거리를 두는 시즌인가 보네요. 50년 친구와 요즘 시간을 따로 갖고 있어요. 양쪽 가족돌이 더 안타까워 하지만
내 불찰이 크려니 하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숨도 못 쉬겠더니 지금은 만나자고 해도 엄두가 안나지요. 덕분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맛도 찾아 간답니다. 어느 날 문득 만나도 방금 만나고 또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하려고요. 시절인연이라는 게 있을진대 환- 하게 만나겠지요.
저도 같은 일을 겪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글이 제게 위로가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