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하는 최종 목적지의 방향에 따라
창세기 42장 유장춘 목사 (법학박사 ·철학박사)
〇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윤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 때문에 판단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예)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행동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며 받아들였을 때, 그 태중에서 태어난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요셉 역시 권력을 쥐고 형들에게 부당해 보이는 억지 주장을 펼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안목으로 이를 옳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분별의 이유를 깨닫고 받아들이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본문 말씀: 요셉의 억지 주장과 그 배경
창세기 42장은 가나안 땅에 심각한 흉년이 들어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로 가고, 총리가 된 동생 요셉과 극적으로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어릴 적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고, 형들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고난 끝에 총리가 된 요셉은 대흉년을 맞아 양식을 사러 와 엎드린 형들을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상상조체 못 합니다.
요셉은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세우며 거칠게 대합니다. 형들이 해명하자, 요셉은 너희 말이 진짜라면 고향의 막내 동생(베냐민)을 데려오라며 둘째 시므온을 인질로 잡습니다. 굶어 죽어가는 가족들에게 양식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는 현실적으로 엄청난 억지였습니다. 게다가 곡식 자루에 그들이 지불한 돈을 몰래 다시 넣어두며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계속 이어갑니다.
〇 본질을 향한 해석: 보복인가, 시험인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요셉의 행동은 복수나 갑질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엽적인 행위보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향하는 방향이 일치하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여전히 잔인한지, 아니면 진정으로 변화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감옥에 갇힌 형들이 "우리가 아우의 일로 범죄하였도다, 그의 피 값을 치르게 되었도다”라며 회개하는 말을 들었을 때, 요셉은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보복이 아니라 사랑의 시험이었습니다.
요셉은 또 다른 동생 베냐민의 안위를 반드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행동 자체의 단편적인 옳고 그름보다, 복잡한 상황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선을 이루어 가시는지 분별하는 것이 올바른 기준입니다.
〇 삶의 적용: 텍스트와 컨텍스트(상황적 맥락)
예) 태조 이성계가 점술가에게 물을 문(問) 자를 써서 보였을 때, 점술가는 좌우에 보필하는 사람이 있는 형상이니‘임금이 될 상'이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 하인을 시켜 똑같은 글자로 점을 치게 하자, 점술가는 문 입구에서 구걸하는 형상이니 ‘거지 팔자'라고 해석했습니다.
글자는 똑같았지만, 사람의 신분과 상황이라는 맥락이 해석을 바꾼 것입니다. 요셉의 거친 행동이 궁극적으로 가족의 구원과 회복을 향했듯, 우리의 삶도‘그 행동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〇 인간의 이중성과 수양의 한계: 순자의 사상
우리는 공간과 상황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이중적 존재입니다. 한옥 마당의 쑥은 나를 힘들게 하는 잡초로 여겨 절대 먹지 않지만, 분당 집에서 아내가 끓여주는 쑥국은 맛있게 먹습니다. 나의 이익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보이는 인간의 본성을 보며 순자의 사상을 되짚게 됩니다.
순자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탐하고 질투하는 존재(성악설)라고 보았습니다. 그대로 두면 세상은 다툼으로 가득 찰 것이기에, 타고난 본성을 변화시키고 인위적인 선을 일으켜야 한다
(화성기위(化性起僞)고 주장했습니다. 굽은 나무를 틀에 넣고 깎고 다듬어야 곧아지듯, 인간도 도덕과 예절,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수양해야 성숙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비유입니다.
〇 판단의 권세를 내려놓고 하나님 중심으로
순자의 말대로 교육을 통해 자신을 다듬어 갈 수 있지만,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완전한 변화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완전하게 변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늘 흔들리고 이중적이며 부족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부족한 우리에게 타인을 심판하고 옳고 그름을 가려낼 판단의 권세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