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으로 누워 있던 바다가
지평선을 눕힌 대지가 되었더이다.
반짝이는 잔물결 대신
곡식들이 꽃등을 달고 하늘 향해 손 흔드는
풍요와 행복의 가나안이 펼쳐졌더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되었더이다.
(후략)” 전남 고흥의 달가스로 불리는 고(故) 우석 김세기 선생을 시로써 노래한 김종 시인의 시 ‘삽 한자루의 신화’ 일부분이다. 이 시에는 전라도 고흥군 동강면 죽암만 푸른 물결이 넘실대던 바다를 매립, 수십년에 걸친 노력 끝에 총 200만평의 비옥한 옥토로 만들어낸 고 김세기 선생의 노고가 그대로 녹아 있다.
2003년 작고한 김세기 선생의 대를 이어 현재 죽암농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그의 장남 종욱(60)씨다. JA건설주식회사 대표이기도 한 그는 “건설인보다는 농사꾼으로 남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1965년 시작된 간척사업
죽암간척지 매립사업의 첫 시작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가 중학생 때였어요. 죽암간척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간척지를 만들기에 최적지로 평가하고 몇 차례에 걸쳐 사업을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철수한 곳이었어요. 아버지는 ‘간척이 성공하면 이곳에 약 200만평의 경작지가 조성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식량증대에 큰 몫을 하게 될 것’이라며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가족 모두는 아버지를 따라 고향인 경남 마산을 떠나 고흥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죽암간척지 준공승인서를 받은 것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인 1977년의 일이니 말이다.
본격적인 간척사업이 있기 전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제게 불도저 운전부터 가르치셨어요. 불도저 기사와 조수 노릇을 통해 건설 현장 경험을 쌓게 하신 거지요. 대학 시절엔 벽돌공장 운영도 직접 해 볼 수 있게 기회를 주셨고요. 아버지께선 제가 지금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이만큼 키울 수 있게끔 바탕을 마련해 주신 셈입니다.”
간척사업을 벌이기 위해 아버지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그는 두 팔 걷고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다.
“아버지께서는 월급에 큰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가족과 형제들을 데리고 일을 하고 싶어하셨어요(웃음). 저 역시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지요. 군 제대 후 농어촌공사에 잠깐 근무한 게 사회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간척사업은 무엇보다 자금 대는 일이 가장 어려웠기 때문에 저의 주업무는 은행으로 돈 빌리러 다니는 일이었지요.”
농어촌진흥 대상 수상에 빛나는 업적
“피와 땀으로 개척한 200만평의 간척지가 빚으로 넘어갈 뻔한 위험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 간척지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땅을 필요로 하는 농민들에게 일부를 팔아 죽암간척지를 지켜냈고, 197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죽암농장은 식량증산과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농수산부 장관 표창을 비롯해 여러 차례 수상했다. 1995년엔 농어촌진흥공사로부터 ‘제3회 농어촌진흥 대상’을 받기도 했다.
“죽암간척지를 비롯해 1986년엔 남양간척지도 매립, 918㏊의 국토 확장과 더불어 591㏊를 영세농민들에게 저렴하게 분배했어요. 주변 20여 마을이 부촌으로 탈바꿈했고, 농업용수의 확보 및 2모작 재배의 성공 등 지역 농가소득을 배가 한 공로를 크게 인정받았습니다.”
그 무렵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고흥 녹동~도덕 간 도로건설공사, 호남철도 복선화 공사 등을 성공적으로 해낸 김 대표는 이와 더불어 죽암기계까지 운영하며 농기계의 국산화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2003년부터는 건설업보다 죽암농장 운영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사업임을 잘 알기에 농장 운영은 무척 중요하죠. 체질적으로도 농사꾼이 잘 맞고요(웃음).”
친환경쌀 이용한 식품사업 진출
현재 죽암농장은 자체 퇴비공장ㆍ도정공장을 갖춘 친환경 영농법으로 연간 1000t의 쌀(금세기쌀)을 생산하는 한편, 1000두의 한우를 키우며 복합 영농을 실현하고 있다.
“농장에서 사육한 무항생제 한우의 축분을 퇴비로 활용해 벼를 재배하고, 이를 통해 생산된 벼를 직접 가공하고 판매하는 일까지 일괄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스톱 시스템을 갖추고 자원순환농법 시스템을 실천하는 곳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 2005년부터 친환경농업을 실천해오고 있는 그는 2008년 초에는 물량 확보 및 유통, 가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근 3개 영농조합법인을 통합, 15개 농가가 참여하는 죽암농장주식회사로 규모화ㆍ조직화를 이뤄 시장교섭력을 강화했다.
죽암농장에서 생산된 쌀은 김세기 선생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금세기쌀’로, 피땀으로 일궈낸 농장의 자부심을 그대로 담아냈다. 금세기쌀은 무농약 인증을 받은 명품쌀로 인기가 높다.
“가을에 수확한 벼는 저온저장고에 보관해 신선도를 유지합니다. 죽암농장 홈페이지 등을 통해 소비자로부터 신청이 접수되면 배송 직전에 자체 도정시설을 이용, 가공함으로써 신선도를 최적으로 유지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밥맛이 좋을 수밖에요.”
이뿐 아니다. 금세기쌀을 이용한 막걸리와 떡도 곧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죽암농장 근처에는 막걸리와 떡 공장 건설이 한장입니다. 친환경 쌀을 이용한 식품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빨리 소비자들에게 죽암농장의 노하우가 담긴 탁월한 맛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매년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해 농업기술 세미나를 열고 있는 그에겐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죽암농장 내 농업박물관ㆍ교육관을 지어 지역 농업 발전을 선도하는 것은 물론 전국의 농민들에게 죽암농장의 노하우를 전수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업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마련해둔 우석기념관도 새단장해 좀더 많은 이들이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싶고요. 죽암농장이 생산과정, 농식품 가공, 농촌문화까지 체험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을 계획입니다.” 고흥=글ㆍ홍연정기자 hong@ 사진ㆍ안윤수기자 ays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