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k2백옥회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안춘식
    2. 히어리
    3. 박윤호
    4. 윤톨1
    5. 원티드
    1. 황인규
    2. 해피랑희
    3. 모던센스
    4. 영우
    5. 보라미
 
카페 게시글
백두대간 산행기(완주) 스크랩 백두대간 9구간 - 20130804
감포 추천 0 조회 87 13.08.06 17:2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그렇지 !

절대 다른 사람에게 들킬 수는 없는 거야.

내가 이렇게 힘이 들고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절대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돼 !

 

약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인생 따위란 필요없는 거야.

나는 절대 약해지면 안돼 !

 

여기서 발 걸음이 멈춘다면 정상까지 오르기가 더 힘이 들어질꺼야!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여다오.

다리야 !

심장아 !

부디 저 능선까지만 날 데려다오...

  

오름질의 고통은 지독했다.

그러나 그 고통보다도 끈질긴 무엇을 나는 갈망하고 있었다.

상의도 바지도 물에 빠진 새앙쥐 마냥 축 늘어져있었다.

 

그래도 능선위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누구와 : 백두대간16차 종주대 60여명

 

어디를 : 백두대간 9구간 (매요리 ~ 사치재 ~ 새맥이재 ~ 복성이재)

 

날씨 : 후덥지근. 습식 사우나에 들어앉은 기분이 들었음.

 

산행만족도 : ★★☆☆☆ 

 

 

무더운 밤이었다.

출정식을 하듯이 남산 한 바퀴 돌고

데워진 몸을 차가운 물에다 식혀 보았지만

한번 데워진 몸은 쉽게 식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공부에 지쳤을 수험생 딸내미는 거실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취침 중이었다.

아침 대용으로 집사람이 준비해준 양세마리 컵라면을 들고 나오려다

식탁위에 놓여진 북어채를 보고 서둘러 북어국을 끓였다.

아침, 점심 두끼의 밥.

먹는다는 것이 구차스럽다는 느낌도 들지만

어쩌랴 !

먹지 않고는 움직이려 하질 않는 인간의 육체를 가졌으니 말이다.

 

동이 트기도 전

일요일 아침.

바삐 움직이는 것은 대간을 가는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텅빈 시내버스를 몰고 하루의 일터를 찾아 가는 사람과

그 광경을 찍는 사람에게도 지금이라는 현재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비가 내리다가 다시 뿌옇게 안개가 끼었다가

바람이 불었다가

버스는 88고속국도를 잘도 내달렸다.

거창휴게소 도착을 알리는 몸의 쏠림.

기우뚱 옆으로 몸이 쏠리자 감각적으로 휴게소에 도착했음을 몸이 알아챈다.

 

맞은편 산자락에서는 계속해서 운무가 피어났다.

아침 햇살은 어디에 숨었는지

살랑거리는 바람에

진분홍 배롱나무 꽃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더위를 먹었는지 g.p.s도 말썽이다.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로 나와야 할 주소가 수십킬로 밖 거창 가조로 출력이 되었다.

 

휴가철이어서 인지

매요리 동네 회관앞 주차장은 적지 않은 수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들어닥친 두대의 차량에도 마을사람들은 훈련이 되었는지 별로 놀라지 않는 듯 했다.

출발 준비.

 

 

그리고 출발.

폐교가 된 초등학교와 할머니 혼자 가게를 지키는 주종불문 한병에 2,500원을 받는 매요리 휴게소 사이로 난 길을 따른다. 

 

 

시지사시는 재호 형님은 발빠른 산꾼이다.

오늘은 느긋하게 후미에서 가신다고 하더니

버스에서 물 한통만 달랑 가지고 내리시는 폼을 보니

오늘도 어지간히 내빼실 작정인 모양이었다.

'이제 출발하시면 도착 때까지 사진 한장 없을 터이니 여기서 한장 찍고 가입시더.'

 

 

한분 두분 모두 출발하시고

이짓 저짓 다하고 후미 성대장님과 같이 출발.

언덕배기 하나 넘고

아무것도 심어놓지 않은 밭길 사이를 지나간다.

 

 

목공예사.

가던 길 멈추고 사진 찍은 이유가 있으렸다.

남원의 명물 중 하나.

바로 목기이다.

남원 땅 운봉이 목기로 유명하게 된 것은 바로 지천에 있는 지리산 때문이었다.

노각, 물푸레, 은행나무 등 질 좋은 나무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묶이고 나서는 목기 산업 또한 사양길을 걷게 되는데

그나마 운봉 지역에서 목기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은 서너집에 불과하다고 한다.

고흥 보성 등의 지역에서 오리나무를 구해오고, 강원도 지역 등에서 물푸레 나무를 구해 온다고 하니

전국구에서 나무 공급을 받는 셈이었다.

 

 수작업과 기계작업이 반반 정도 섞인 목기 제작은 크게 다섯단계로 나뉜다.

먼저 통나무를 목기 크기에 맞게 절단하고, ‘초갈이(초벌)’를 통해 장구 비슷한 모양으로 목기의 틀을 잡은 뒤 뒷굽 파기로 홈을 만든다.

가장 기술을 요하는 재갈이(재벌)’ 과정에서 앞면을 반질반질하게 깎아낸 다음 남원시 제기협의회의 낙관을 찍고 말린다.

이렇게 만든 목기는 김제에 있는 옻칠공방으로 보내 네번에 걸쳐 옻칠 또는 캐슈(목재용 페인트)칠을 한다.

칠방은 보통 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미세한 먼지가 들어가면 품질이 현격히 떨어지는 이유에서다.

 

 

마을 표지석이 서 있는 갈림길에서 트럭 한대가 갑자기 선다.

'지금 가시는 산길은 공사 중이라 막아 놓았으니, 사치마을을 우회하는 고가도로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미 진행을 한 대원 들을 다시 불러 세울 수도 없고

감각 좋은 선두대장님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우웽~ 우엥~

내달리는 차량을 피해 중앙선을 넘었다.

도로 무단횡단 금지라고 붙여놓지말고

전에 있었던 길을 복구해 주었으면...

 

도로 건너자말자 오름질.

한참을 쳐올린다.

잡목들이 가로 막는 길에다가 후덥지근한 습기와 열기.

 

땀이 비오듯이 한다.

그랬다.

딱 감포 꼬라지가 그랬다.

 

정상적인 인체 상태에서는 인체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땀으로 배출, 조절을 하지만

높은 온도와 습도에서는 땀의 증발 기능이 떨어짐으로써  이러한 조절 기능을 잃어버리게된다.

평소에도 땀이 많고, 열이 많은 중생인지라

이 계절 산행은 역쉬나 힘들다, 힘들어.

 

 

사치재 오름질이 끝나갈 무렵.

마사토 지역 전망이 열린 지역이 나왔다.

배낭을 내려놓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앉은 김에 놀다가자!

 

 

인월 i.c에서 광주 방향으로 2km지점에 있는 지리산 휴게소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리봉 가기 전 조망터에서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또 다시 털썩.

 

 

 

 

보다시피 시리봉은 대간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경관이 잘 나오는 곳이 별로 없어서 휴식을 취할 틈을 잘 노려야했다.

사진 찍는 척 앉아서 쉬었다.

남들은 사진 찍는갑다. 생각을 하실 때

나는 쉬는갑다.  

 

 

아막산성터는 대간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일부러 그러섰는지 모르고 그러셨는지

우태형님을 비롯한 몇분은 흥부묘에 갔다왔다면서 꼭 다녀오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아막성터.

주소가?

함 보자.

아영면 성리 38번지. 전북도 기념물 38호.  

 

 

아영면은 남원의 문헌 기록상 최초로 등장하는 지역이다.

아영은 삼국시대에 아막(阿莫), 아용(阿容), 아영(阿英)이라 하였고 지금도 옛 지명이 아막산성(阿莫山城) 등으로 남아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에서는 아막산성으로, 신라본기에서는 아막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940(태조 23)까지는 모산현에 속하여 천령군(天嶺郡)[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포함되었던 신라 영역이었으나

운봉현이 남원부(南原府)에 편입되면서 남원 관할로 속하게 되었다.

 

 

성안에 남아 있는 암자의 이름은 운성암(雲城庵)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따가운 햇살에 태극기 마저 축쳐져 있었다.

 

그나마 성벽이 잘 보존된 지역은 북서쪽으로 대간길은 이어진다.

아막산성터를 볼려고 하면 대간길에서 약 200m 정도 이탈을 해야된다.

그리고 다시 복귀.

무너진 성벽을 내려서면 다시 대간 길은 이어진다.

 

복성이재 근처 풀숲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계신 몇 분들 틈에 끼어 식사를 한다.

물에 말아서 훌훌 마시니 왠 식사를 그리 빨리하시냐고... 

 

 

장수군 번암면 복성리와 남원시 인월면 성리를 잇는 고개마루가 복성이재이다.  

 

 

400여년전.

변도탄은 천기를 읽다가 3년이내에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아내었다.

이를 조정에 상소하였으나

조정에서는 혹세무민한다고 하여 삭탈관직하고 ?아내었다.

전쟁중 피난처를 찾아 천기를 읽던 변도탄은 복성이 비추이는 곳을 따라 이곳에 도달하였다.

쌀로 집을 짓고 여기에 거주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수많은 의병들이 변도탄이 지은 쌀집을 뜯어서 밥을 해먹고 싸움에 임하였다고 한다.

 

비로 天福星이 빛을 비추이던 곳이 복성 마을이었던 것이다.  

 

 

이제 남원을 뒤로 하고 장수군으로 들어가게 된다.  

백두대간의 권역은 크게 지리산권, 덕유산권, 속리산권, 소백산권, 태백산권, 오대산권, 설악산권 등으로 나뉘어진다.

 

잘 아시다시피

대간과 정맥을 구분하는 기준은 '山自分水嶺'

지리산을 끼고 도는 두개의 강이 낙동강과 섬진강인데,

 산자분수령 원칙에 의해 섬진강과 금강이 배구대간에서 갈라지기 시작하는 곳이 영취산. 

호남금남정맥의 출발점이다.

하여 출발한 지리 동쪽 끝자락 웅석봉에서 영취산까지를 지리산 권역으로 정해야하지 않을까? 

 

 

복성이재에서 버스가 기다리는 철쭉식당 앞까지는 약 10여분간 도로를 따라가야한다.

방향은 성리쪽. 

 

 

수확을 놓쳐버린 고사리밭의 웃자란 고사리를 보면서

저것만 캐서 팔아도 자식들 굶기진 않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보리 고개 경험못한 세대에서 '라면먹지! 왜 굶어?'라고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까?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가 물 흐르는 곳에서 흙 묻은 스틱을 씻었다.   

 

 

흥부마을 요것이 궁금타 !

 

1. 흥부, 놀부 과연 실존인물인가?

 

그렇다. 흥보와 놀보는 실존인물로 이들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흥부전이다.

 

2. 흥부와 놀부의 고향은 ?

 

판소리 흥부가에 의하면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삼도 어름에 악하고 사나운 형 놀부와 순하고 착한 아우 흥부가 살고 있었는데," 라는 대목이 있는데

경희대민속연구소 조사단의 결과에 의하면 인월면 성산리가 고향이다.

 

3. 흥보의 성씨는 ?

 

朴氏이다. 박춘보와 그의 형인 박첨지가 모델이다. 

 

4. 흥부가 놀부에게 ?겨가서 거주한 마을은 ?

 

번암면 복성이 마을에서 살다가 성리로 이주하여 복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5. 흥보는 언제적 사람인가?

 

판소리  흥부전의 탄생 시점이 조선 중기 즈음이니

그 언저리 즈음의 인물로 추정한다.

 

6. 성리의 흥부묘는 진짜인가?

 

박공춘보의 묘는 원래 연소령 와혈에 묻혔으나 문화재 정비 사업을 하면서 성리,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7. 흥부의 자식과 후손들은?

 

 판소리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최대 스물아홉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흥보가 묻힌 연소혈 명당은 絶孫의 명당.

하여 흥보가 얻었던 수많았던 재산과 후손 들은 없다고 함.

 

그럴 듯하다.

주인공과 그 많은 유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전설은 전설로서 남는 법.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를 깔아놓고 흥부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이가 없다.

그 참! 신기하다. 

 

 

 

 

 

남원시에 따르면 흥부길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공모사업에 고전소설 속을 걷는 문학 이야기길로 선정됐다.

이렇게 조성된 흥부 길은 약 10㎞ 코스로 , 걸어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영면사무소에서 일대저수지를 지나 흰죽배미, 허기재, 흥부우애관, 생금터와 화초장바위, 빈집골 등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구석구석 흥부의 삶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버스가 정차된 식당 앞.

손님이 없는지, 주인이 힘이 부쳤는지 식당 문을 닫아버렸다.

논과 논사이 물을 대는 도랑에 씻을 만한 물줄기가 있었다.

차가운 물에 얼굴을 씻고 나왔으나 이내 다시 땀이 흘렀다.

 

버스가 주차된 바로 옆.

비석이  서있었다.   

이 비석이 아영면 성리 뒷산에서 출토된 비석인가 싶어 찍어보았는데

우측 첫 문장에 孝子 뭐시기 뭐시기 적힌 걸로 보아서는 아닌 것 같고...

 

불러대는 재호형님 따라 뒷풀이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미니 준비해 오신 족발을 내 놓는다.

먼저 오신 분들은 뒤로 나앉아 계시고

나중에 도착한 일행들이 엉덩이를 들이 밀었다.

 

맛있는 족발에 시원한 동동주 한잔.

한잔 얻어마셨으니 값은 치루어야지.

 

안재호님의 별명은 놀부이다.

마침 흥부마을에 도착을 했는데 별명이 놀부이신 안재호님이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별명이 놀부가 된 연유는 성격이 놀부를 닮아서 그런것이 아니라

하시는 업장이 놀부보쌈.

 

 

  바로 위의 식당이 바로 안재호님이 사장으로 계시는 곳.

광고비 받았느냐고?

 

얻어 먹은 것도 있고, 글을 올려도 좋다는 허락도 얻었고 해서 올려본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

휴가철이 한창이여서인지 교통체증이 일어났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정도 지체된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말자 더운 열기가 반갑다고 달려들었다.

2013년 여름.

영원히 잊지못할 백두대간의 여름이 한창이다.

 
다음검색
댓글
  • 13.08.08 11:37

    첫댓글 경한씨와 명자씨도 보이네요...
    무더위에 산행하느라 욕봤심더...
    대간산행기 잘보고 갑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