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옛길에서 만난 초가을 손님
장산구립공원 밝힌 반딧불이, 송정터널 위 암컷집단서식지 이뤄
장산이 구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구립공원으로 지정된 장산은 동으로 부흥봉과 신곡산을 거쳐 와우산으로 길게 날개를 펼친다. 와우산 끝자락을 동해에 담근 장산은 태평양의 기운을 빨아들여 해운대를 보호하고 있다.
장산의 동편 날개 자락 부흥봉 기슭에 손님이 날아들었다. 지난 23일 추석 연휴 끝자락에 송정옛길을 찾았다. 환경관리공단 옆 송정옛길 입구로 들어가 송정터널 위로 오르자 사진작가 서광수 씨가 촬영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송정터널로 접어드는 자동차 라이트 불빛이 숲속에서 반짝거리는 반딧불이 같았다. 그런데 이내 어두운 숲에서 무슨 불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나뭇잎 사이로 크리스마스트리마냥 반짝거리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일행의 호출 음성을 따라 송정터널 해운대 방면 출구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자 비탈진 경사면 한삼덩굴 군락지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서 풀숲을 바라보노라니 눈앞에 펼져진 기슭이 전부 깜빡이는 게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함께한 옥숙표 장산습지보존위원장과 반디생태학교 윤정임 선생이 반딧불이 전문가답게 반딧불이 암컷들의 집단 서식지임을 밝혀냈다.
통상 반딧불이 암컷은 땅 위에서 수컷을 기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에서는 뜻밖에도 비탈면에, 그것도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었다. 반딧불이 생태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더욱 진귀한 장면을 포착했다. 한삼덩굴 잎에서 반딧불이 애벌레가 달팽이를 잡아먹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장면을 눈앞에서 보게 되자 일행은 환호했다. 이런 일이 송정터널 바로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터널로 향하는 차량들의 불빛과 소음 속에서 반딧불이 암컷들이 집단 서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으로 보였다.
반딧불이 관찰을 방해한 오토바이
도심과 맞닿은 반딧불이 서식지
그동안 장산습지 반딧불이 보존을 위해 장산반딧불이보존동아리를 중심으로 회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들의 참여와 협조가 있었다. 어쩌면 그 결과가 이제 장산의 날개인 부흥봉에까지 나타난 것일지 모른다. 사실 장산습지 일원의 반딧불이 탐사는 지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야간에 집단적으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군부대를 통한 차량 이동이나 차량들의 매연으로 애로가 많았다. 더구나 어린이들과 야간 반딧불이 탐사활동을 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반딧불이만큼이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하지만 송정옛길에서 만난 반딧불이는 접근성이 많이 다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아이들과 손을 잡고 송정옛길로 오르면 된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장산습지의 반딧불이에 비해 불빛이 약하다는 점이다. 몸집 역시 작아 혹 장산습지의 늦반딧불이와 다른 종인지 아닌지 몰라서 윤정임 반디생태학교 선생이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불빛이 약한 관계로 송정옛길에서 반딧불이 관찰은 더 집중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당일 현장에서 만난 산책객들은 눈앞의 반딧불이를 보고도 지나치다 반딧불이 이야기를 듣고서 관찰했을 정도다. 그런데 난데없이 산악 오토바이족을 만났다. 송정옛길을 따라 야간 바이크를 즐기는 일행과의 조우로 강한 불빛과 소음, 그리고 매캐한 매연을 반딧불이와 함께 경험해야 했다.
생태적으로 늦반딧불이와 차이 보여
해운대반딧불이나 부흥봉반딧불이 되길
송정옛길 부흥봉 자락에서 저녁 7시 5분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반딧불이는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선사했다. 도심 인근 지역이면서 자동차 불빛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연신 비치는 곳에서 반딧불이가 서식한다니. 더구나 특이하게 암컷들이 집단서식처를 이루고 있었고 서식처마저 평지가 아닌 비탈면이었다. 크기도 일반 늦반딧불이와 달리 작은 편이라 연구 가치가 높아 보인다.
아파트 단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서식하는 송정옛길 초입 송정터널 위 반딧불이는 지역에서 또 하나의 자랑거리이자 보존해야 할 중요한 자연 자산이다. 욕심 같아선 송정옛길 반딧불이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국내에서 보고되지 않은 종으로 밝혀졌으면 한다. 그래서 송정옛길 반딧불이의 이름이 운문산반딧불이처럼 해운대반딧불이나 부흥봉반딧불이로 새롭게 정해지길 기대해 본다.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