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가 예기 중용편을 재편집한 중용장구 제28장은 서론 1절, 본론 3절, 결론 1절로 총 5절이다.
이는 예기 권53 중용편 제30장의 총 4절과 제31장의 첫 1절을 합친 것이다.
즉, 예기 중용 제31장의 첫 번째 1절을 30장으로 끌어와 결론으로 삼은 것이다.
이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子曰 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 烖(災)及其身者也
중용장구 28장 1절(28장 서론), 예기 중용 30장 1절(30장 서론)
非天子 不議禮 不制度 不考文
중용장구 28장 2절(본론1절), 예기 중용 30장 2절(본론1절)
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
중용장구 28장 3절(본론2절), 예기 중용 30장 3절(본론2절)
雖有其位 苟無其德 不敢作禮樂焉 雖有其德 苟無其位 亦不敢作禮樂焉
중용장구 28장 4절(본론3절), 예기 중용 30장 4절(30장 결론)
子曰 吾說夏禮 杞不足徵也 吾學殷禮 有宋 存焉 吾學周禮 今用之 吾從周
중용장구 28장 5절(28장 결론), 예기 중용 31장 1절(31장 서론)
위와 같이 총 5절 가운데 예기 중용과 중용장구는 서론은 같이하는데,
본론 부분은 일부가 같고, 결론 부분은 완전히 다르다.
주자가 예기 중용에서 다음 장 첫절을 끌어와 앞장의 결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먼저 예기 중용편 제30장을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어 전개되는 논리를 살펴보자.
<서론>
愚而好自用하고 賤而好自專하는 자가 今之世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先王의 道인 古之道를 거스려(반대하여) 행하면 반드시 그 몸에 재앙이 미친다.
<본론>
1) 천자가 아니면 예를 논하지 못하고, 법도를 제정하지 못하며 문자를 고정하지 못한다.
(즉 천자만이 이를 할 수 있다는 뜻)
2) 요즘 천하는 수레바퀴의 넓이가 같고 글자가 같고 행실의 윤리가 같다.
<결론>
비록 그 지위는 가지고 있으나 진실로 그 덕德이 없으면 감히 예악禮樂을 제정하지 못하며,
비록 그 덕은 있으나 진실로 그 지위가 없으면 역시 감히 예악을 제정하지 못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예기 중용편 제30장의 논지가 분명하게 보인다.
즉 선왕의 도인 古之道를 반대하여(거스려서) 행하면 반드시 재앙이 미치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론으로 깔고,
모든 법도는 오직 천자만이 할 수가 있는데,
지금 천하가 통일되어 모든 제도가 같아졌다고 하더라도,
천자조차 덕이 없으면 감히 예악과 같은 제도를 바꾸어 제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덕이 있더라도 천자의 지위에 있지 않으면 예악을 제정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로 보면 예기 중용편 30장은 천자에게 함부로 예악과 같은 제도를 바꾸지 말고
선왕의 도인 고지도를 어기지 말라는 경고문이 되는 것이다.
천자에게 직접 해가 미친다는 경고의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으므로
서론에서의 경고문은 천자가 아닌 자들에 대한 말로 완곡하게 천자를 겨냥한 표현이다.
예기를 집대성한 戴聖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천하를 재통일한 前漢 초기의 사람이다.
멸망한 진나라를 거울로 삼아 여러 가지 제도의 개혁이 필요한 전한의 초기에서
대성은 천자에게 古之道를 함부로 바꾸어 제정하지 말고
선왕의 도인 고지도를 따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며,
굳이 바꾸어 제정하려면 천자가 반드시 덕이 있을 경우여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진나라 시황제가 수 많은 제도를 제정했지만
덕이 없는 결과 천하를 잃게된 것을 회상시킴이며,
한고조의 약법3장도 함께 회상시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3번째 절인 <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 부분에 대하여
朱熹는 子思가 스스로 당시를 말한 것이라고 하였고,
鄭玄과 孔穎達은 孔子 당시를 가리킨다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대성이 예기를 편집하던 당시를 가리킨다고 본다.
즉 다시금 통일된 전한의 초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2, 3, 4절은 주자가 주장하는 대로 子思의 말이 아니고
예기를 집대성한 戴聖의 말이 된다.
주희는 중용을 자사가 지었다고 했으므로 저 문장도 자사가 지었다고 할 수 밖에 없으나
그렇게 되면 자사가 살았을 때 최소한 진시황이 천하를 이미 통일을 했다는 말이 되고 만다.
본래 공자가 찬술하신 禮經이 있었으나
戴聖이 집대성한 것은 그의 글이 들어갔으므로 經이라 하지 않고
記 즉 禮記라고 했다는 학설도 있다.
그러므로 중용의 저자는 자사가 아니라 대성이며,
대학의 저자도 증자가 아니라 대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다.
주희는 대학의 저자를 증자로, 중용의 저자를 자사로 특정하고
논어 맹자에 대학과 중용을 합쳐 四書로 명칭하면서
증자와 자사를 모셔와 공자 맹자와 함께 사서의 주인공으로 짝을 맞추었다.
이러한 어거지 짜맞춤을 위해서 주자는 대성이 대학과 중용의 저자임을 부정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의 구절이 子思 당시를 가리킨다는
사실에 맞지 않는 엉터리 해석을 하게 된 것이며
이후 수많은 대학자들도 주자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된 것이다.
주자는 대성이 편집한 대학과 중용을 자기 마음대로 재편집하여
(중용은 그나마 거의 별것 아니지만 대학은 거의 해체 재편집 수준이며
격물보전과 같은 본인의 창작도 포함시켰다.)
이렇게 주자는 대성이 천자를 위해 쓴 것을 일반 사대부들을 위한 책으로 만들었고
이후 대학은 증자가 짓고, 중용은 자사가 지었다는 거짓말이 정설이 되었다.
이리하여 대성이 편집한 본래의 대학과 중용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되었다.
즉 천자의 학이 사대부의 학으로 변한 것이다.
또 중용장구 28장처럼 엉뚱한 해석이 소위 대학자들에게서 나오게 된 연유이다.
다음으로 주자의 중용장구의 편집에 따라 그 대의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댓글 조선시대는 주자학이 번성하여 주자선생의 글짜 하나라도 바꿀수 없다고 하였는데 조금 거시기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