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유일하게 다른 곳으로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 그림(3.18m* 2.76m)은 1985년 '全 세계 미술가가 뽑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된 바도 있는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 Las meninas)이란 제목의 그림으로서 '유럽 회화의 최고 걸작품'이라고 합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모나리자, 천지창조 등을 생각하는데 '시녀들'이 최고의 작품이라 하니 미술에 전혀 門外漢인 나도 그 이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인터넷 등을 검색한 자료들을 모아 알고 있는 내용을 인문. 역사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제가 스페인에 관광여행 갔을 때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했지만 기억도 거의 없고 아마 중고등학교 미술책에서나 본 것 같은 그림인데 그때 제가 느꼈던 인상은 동화그림 정도로 인식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과 관련하여 피카소(1881~1973)의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겠네요. 피카소는 이 그림을 16세에 처음 보고 매일 미술관에 출근하다시피 하여 때로는 멍하니 쳐다보면서 수없이 따라 그렸으며 그가 70대에는 5개월간에 걸쳐서 58점의 '시녀들을 패러디한 연작 그림'을 그렸습니다. 피카소가 이 정도였다면 보통 그림은 아닌 듯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벨라스케스(1599~1660)는 당시 스페인의 왕인 펠리페페 4세(1605~1665 )가 30년간 가족같이 여겼던 궁중화가로 있었는데 왕의 초상화는 그가 아니면 그릴 수가 없었고 심지어는 17세 때 죽은 왕의 아들 방에 벨라스케스의 작업실까지 마련해주었으며 그가 말년에는 화가의 지위로는 거의 받을 수 없었던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하니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지 그림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상식적으로 볼 때 누구나 한가운데에 있는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일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일단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사학자로 알려진 곰브리치가가 쓴 '곰브리치 미술사'의 설명을 옮겨봅니다.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제작실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국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 중이다. 우리는 이 그림 밖 바로 우리가 있는 지점에 국왕 부처가 있으며 바로 우리가 보는 광경을 그들이 보고 있다는 점을 상상해야만 한다. 그들 자신의 모습은 그림 뒤편 거울에 비쳐있다. 왼쪽에는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화가가 있다.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가 시녀들, 가정교사들 및 난쟁이들을 대동하고 초상화 모델을 서 있는 부모들에게 인사를 드릴 겸 그들의 따분함을 덜어줄 겸 방문한 장면이다"】 위의 설명에서 보듯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보는 그림들은 모두가 화가의 시선과 일치하지만 이 그림은 스페인 왕과 왕비의 시선에서 그린 것으로 시선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왕 자신의 눈에 비친 벨라스케스, 공주와 시녀들 등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서 화가에게 특별히 주문해서 그린 그림으로 해석됩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벨라스케스가 캔버스에 그리고 있는 것은 공주 앞에 있는 커다란 거울에 비친 공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주 뒤에 있는 국왕 부부가 비친 거울은 그림액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국왕 부부가 함께 그려진 초상화는 없었다고 하니 이 해석도 맞다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벨라스케스가 작업실에서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는데 왕과 왕비가 , 공주 등을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그림에 대한 여러 다른 수수께끼와 같은 추측들이 있다는 것이 작품의 위대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 그림 속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화면 가장 왼쪽의 그림을 그리다 멈추고 자신 있게 서있는 벨라스케스의 모습인데 그의 가슴에 붙어있는 십자가는 산티아고 기사단( 스페인이 아랍왕족에게 점령당했〉을 때 나라를 지키고자 모인 가톨릭 기사단 모임으로 귀족들만 가입할 수 있었음) 표시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단 문양은 〉그림 완성 2년 후에 덧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벨라스케스 자신 일수도 있겠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작품상의 주인공으로 보일 것 같은 펠리페 4세의 외동딸인 다섯 살의 마르가리타 공주(1651~1673)는 태어날 때부터 외삼촌(오스트리아 레오폴드 1세)과 결혼하기로 예정되었습니다. 공주의 어머니인 마리안느 역시 남편인 펠리페 4세가 그녀의 외삼촌입니다. 따라서 마르가리타 공주는 근친혼으로 낳은 딸이지요. 그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가문인 합스부 르그 왕가는 그들의 혈통을 보존하고자 근친혼이 성행했는데 그 결과 자손들이 유전병으로 인해 요절과 기형(주걱턱)이 많아져 결국 왕조가 사라지게 되는 비운을 맛봅니다. 마르가리타 공주 역시 유전인 주걱턱에 아이를 낳다가 23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맙니다. 공주 왼쪽의 시녀가 공주에게 건네주는 붉은 용기 안에 있는 것은 태운 납 연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 당시 미인의 조건이 창백한 흰 얼굴이었는데 납을 태운 후 연기를 흡입하면 얼굴이 창백해진다 합니다. 공주의 얼굴도 창백해 보입니다. 공주 양쪽에 있는 시녀들의 모습이 생각보다 우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의 시녀는 귀족 가문의 딸들이었다 합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단순히 시중드는 궁녀들과는 달리 공주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여가생활 등 취미활동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의 제목을 붙이지 않았는데 후에 사람들이 〈가족들〉에서 〈펠리페 4세의 가족〉으로 현재에는 프라도 미술관의 카탈로그에서 〈시녀들〉이라 명칭 하였다 합니다. 이 그림을 보면 마치 수백 년 전의 벨라스케스의 작업실에 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다른 그림에는 없는 천장까지 그렸다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우측 시녀 뒤에 서있는 남녀는 왕비의 시녀와 수행원이고 그림 제일 뒷문 사이에 서있는 사람은 왕비의 시종입니다. 난쟁이 어릿광대 앞의 '개'는 충성의 상징으로 그려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