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학자들은 인류가 200만 년 전부터 일종의 말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말만으로는 부족해 그림을 그려 보충했다. 자주 사용하게 된 그림은 좀 더 간단히 그리게 됐고 이것이 그림문자로 발전했다. 그림문자는 자연스럽게 그 그림이 나타내는 형상의 이름으로 부르게 됐다. 예를 들어 사슴 그림을 보고 ‘사슴’, 호랑이 그림을 보고 ‘호랑이’라 불렀다.
이렇게 그림문자에 이름을 붙여 부르다 보니 글자마다 발음을 갖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발음을 갖는 그림문자, 즉 상형문자가 된 것이다. 수메르 지방에서는 B.C. 3,500년 전부터 상형문자의 일종인 설형문자(쐐기문자)를 썼다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상형문자의 역할은 대단했다. 왕의 비석에 이름을 새기고 사연을 적기도 했다.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끌었고,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길가메시 신화도 4,000여 년 전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새겼다.
상형문자는 사물의 이름을 대부분 첫 음절만 사용했다. ‘호랑이’는 ‘호’라고 첫 음절만 쓰는 식이다. 초기의 상형문자는 약 1,000개의 음절문자가 있었다. 이 중에서 같은 음절의 문자들은 하나만 남고 없어져 수백 자로 줄어들고, 다음에는 같은 자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이 모두 하나로 통합되었다. 예컨대 가, 거, 고, 구 등 ‘ㄱ’ 으로 시작되는 음절을 모두 ‘가’로 통일하고 읽을 때에는 늘 쓰는 대로 발음했다.
그래서 ‘고기’란 단어는 ‘가가’로 쓰고 ‘고기’라고 읽었다. 우습게 보이겠지만 바로 아랍어와 이스라엘어가 이런 ‘자음문자(Abjad, 아브자드)’에 속한다. 다만 특수 부호 몇 개로 일부 모음을 표시해 주었다. 이들 언어의 문장 여기저기에 찍혀 있는 꼬부라진 점들이 모음을 표시하는 부호이다.
약 3,000년 전 배를 타고 다니며 무역으로 살던 페니키아 상인들은 여러 지방을 상대하기 위해 22자의 아브자드를 사용했다. 이 페니키아 알파벳이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거쳐 현대의 라틴 알파벳으로 발전했다. 인도 지방에서는 아브자드에 필요한 모든 모음을 부호로 처리해 아부기다(Abugida, 모음부 자음문자)로 발전시켰다. 산스크리트를 적는 데바나가리 문자도 아부기다이며 세종대왕도 데바나가리에 통달했음이 틀림없다.
우리의 음운 체계 ‘아설순치후’는 순서만 조금 바꾸면 데바나가리 음운 체계와 일치한다. 지금 세계에는 아브자드, 아부기다, 라틴 알파벳을 쓰는 사람이 각각 9억, 12억, 49억 명이며 이밖에 한자를 쓰는 사람이 중국과 일본만 쳐도 15억 명이 넘는다. 이렇게 볼 때 문자는 고대로부터 그렇게 많이 발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