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비정사기 <풀이>
예성의 동남쪽에 한 집이 있나니 양반의 현달한 문벌인 이천서씨가 사는 집 이라. 거기에 청비정사가 있으매, 이곳은 현사 서동형이 평생을 남몰래 수련하는 집이다. 집을 청비정사라고 이름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 당나라 시인 장구령의 싯구에 "지붕이 맑고 신비스러워 남달라서 재주의 화려함이 여기에 있도다" 라 하였으니, 이 싯구는 서현사의 날마다 닦는 공부에 덕행과 한묵을 독실히 하고 명예를 중시하지 않음에, 마침내 겨울 종달이와 눈속 산삼의 기이함을 다하여 세상보기를 은일로써 느끼고 다하는 것인 즉, 노경의 처소는 평생을 유유자적하고 서권기 문자향의 뜻이 있게함이 아니겠는가? 이곳은 진실로 은자의 집인 것이다.
대저 은둔이라 함은 이름을 버림이 근원이니, 현사는 그윽하고 한가함으로 세상에 행하고 사물을 접하여, 은일로써 손님을 맞이하고 벗을 대하며, 유유자적으로 학문에 임하여서 일시일각에도 한가함을 잊지 않았으니, 어찌 진인의 풍모와 흡사하지 않으리오? 청비정사를 물어 좌우를 살핀 즉, 동으론 계명산이 우뚝하게 빼어나 웃음짓는듯 하며 봉우리 넘어 거울같은 충주호가 있음이요. 남방으론 대림산이 있고 멀리 조령과 이어져 형세는 만마의 병력이 진치고 마주함과 같으며, 서쪽 달천을 바라보니 구름 흩어져 비 개이고 석양 노을속 천태만상의 경치이고, 북녁의 탄금대는 풍월을 마다하지 않으며 두 나루의 버들가지는 정을 머금고 눈물짐에 천리의 바다로 흘러드나니, 이것은 청비정사의 좋은 경관이라. 아 ! 마을을 승모라 하니 효자가 지나가지 아니하며 물 이름을 탐천이라 함에 청렴한 선비가 마시지 않나니, 고을은 예성이요 택호 청비라 이름함에 옛날 삼국의 절경에서 현달한 은인이 아니라면 누가 능히 살면서 즐기리오?
오호라! 서공이 청비정사에 기거하며 행동거지를 자랑치 않고 은둔의 자취를 실행하니, 이 집을 잘 보존하여 학문을 이곳에서 닦고 정신을 이곳에서 길러 옛 사람의 은둔함을 이어받으니 그 얼마나 오묘한 것이리오? 상산사호의 고상한 운치와 죽림칠현의 청담이 희미해짐에 우러르지 않아 듣기 어렵고, 엄광의 편안함과 부춘산의 경관이 적막하게 전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지금 청비정사을 현사서공이 은둔의 장소로써 함에 정사의 기문이 아니라면 누가 은둔하는 뜻을 밝히는자가 있겠는가? 노자가 이르길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을 알며 창밖을 살피지 않아도 천도를 본다.그 나가보면 더욱 멀어지고 알수록 더욱 작아진다." 라고 했었다. 대저 은자는 뜻 감추길 잘 하고 인사를 편케함을 잘하는 사람이니 지금의 혼란스러움에 전인의 은둔함을 행하는 사람을 나는 필히 현사서공 에게서 봤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작년 칠월 충주에서 시회를 함께한 후에 서공이 당호의 기문을 나에게 청함에, 그런 까닭으로 참람됨도 살피지 않고 붓을들어 기문을 짓고 율시 한 수로 명을 대신함은 후일에 전하고자 함이나, 그러나 단문졸필하여 강호제현의 웃음거리는 면하기 어려울 것이리라.
그 시에 이르길
예성현 아름다운 곳의 동남쪽에
청비정사 한 이름이 큰 뜻 품었어라
상산사호 눈썹은 희어도 큰 칼 능멸했고
엄자릉의 낚시속에 아지랑이 늙었다오
은거하여 묻고 배움에 도는 더욱 가깝고
편안한 흥취속 시읊음 부끄럽지 않다네
깨끗함은 행장이요 감춤은 덕으로 하니
창너머 보잖아도 그 오묘함 감실 같다오
갑오년 청명절에 진주 소병돈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