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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신라,가야토론방 화랑세기 필사본의 매력
소호금천씨 추천 0 조회 733 09.12.07 14:27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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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08 00:21

    첫댓글 오~~잘보고 갑니다 화랑세기에 "신국의 도"라는 대목이 혹시 나오는지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나온다면 어떤 상황에서 말한건지 알수 있을까요?^^

  • 작성자 09.12.08 11:28

    고구려무사님 제22세 풍월주 양도공편에 나오는데 아래 미주가효님께서 워낙 빈틈없이 자세하게 설명되었기에 제가 중복되게 사족을 달수가 없어서 생략합니다...아래 미주가효님의 댓글을 참조하십시요...^^*

  • 09.12.08 09:55

    이 게시판에 소호금천님이 올리신 글 <神國의 婚道-新羅의 近親婚> 을 참고하세요. 그 구절이 나오는 상황은 이렇습니다. // 공은 본디 동기(同氣)간에 서로 결합(相合)하는 풍습을 싫어하여 따르지 않았다. (공의 누이인)보량이 그 때문에 병이 생겼다. (공의 어미인) 공주가 성을 내어 책망을 하니 공이 부득이 말하기를, "저는 누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사람들이 나무랄까 걱정이 됩니다. 제가 오랑캐(夷狄)의 풍속을 따르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누나 모두 좋아할 것이지만, 중국(中夏)의 예를 따르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누나가 모두 원망할 것입니다. 저는 오랑캐가 되겠습니다" 하였다. 공주는 이에 …

  • 09.12.08 09:57

    공을 감싸 안으며 말하기를 "참으로 나의 아들이다. 신국(神國)에는 신국의 도(道)가 있다 어찌 중국의 도로서 하겠느냐" 하였다. 이에 보량을 처로 삼아 아들 양효(良孝)를 낳았다. /

    이 상황은 결혼과 관련하여 근친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이야기이지만, 근본적인 취지는 '중국적 외래적 풍습 혹은 도덕관념' 에 대비되는 '신라 전통적 풍습 혹은 도덕관념' 이라는 의미겠지요.

  • 09.12.08 11:46

    오~~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우리 역사에서 저렇게 膽大한 글은 본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神國에는 신국의 道가 있으니 어찌 중국의 道로써 하겠느냐" 다시 보니 感懷가 새롭네요^^

  • 09.12.08 13:11

    음...좋은 글이군요....아주 합리적인 분석력이 돋보이는 글이네요....카오스가 이 싸이트를 떠나지 않고 종종 헷갈리는(?) 글 몇자 적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좋은 글들이 종종 올라오고 있어서 이 사이트가 앞으로 큰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일단, 좋은 글을 쓰신 소호금천씨님 계속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1. 그런데 화랑세기 등 남당유고에 대한 평가가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여러분들께서 '큰 맥락'을 놓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그 맥락만 파악하게 되면 남당유고의 원본이 왜, 언제, 어떻게 쓰여진 것이고 또 그 목적과 변모 및 활용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09.12.08 13:13

    2. 그래서 모두들 그 '맥락'이 도데체 무엇이었겠는가?를 진지하게 심사숙고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한가지 조언드릴 수 있는 것은...일단, 이 남당유고들이 현재는 실전된 '古記의 원전'에 해당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남당유고들은 '史實'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각색'된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는 '창작'된 부분도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기들이 몇번의 개작을 거쳐서 김부식에게 전해지고, 김부식은 그 내용이 황당하다고 매도하고서 마구 칼질해서 나름대로 뼈다귀만 재정리한 것이 바로 삼국사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손을 댄 것이 문제가 된 것이지요.

  • 09.12.08 13:25

    3. 그래서 삼국사기의 빠진 부분을 이 남당유고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이런 측면에서 이 유고들은 그 기록이 모두 史實이 아니라 하더라도 김부식이 감추어 버린 實史를 복원해 내는데 참으로 귀중한 자료들이 되는 것입니다. 김부식은 왜 개작된 내용을 후세에 전하려고 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당유고를 박창화의 창작으로 보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그룹의 사람들이라고 할수있을 것입니다. 실제 남당유고를 한번 보면 '어떤 인간도 이러한 방대한 창작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금방알 수 있을 것입니다. 眞實은 눈을 감는다고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 09.12.09 11:31

    박남수(국사편찬위원회) 선생은 자신의 논문에서 “따라서 花郞世紀 의 진위는 결국 박창화 본인이 기술한 각종 전적류에서 판별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그의 遺稿가운데 새로이 발견한 화랑세기 잔본의 내용을 검토하고, 이를 기존에 발견된 두 본의 화랑세기 와 비교함으로써 그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연구자들에게도 주요한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라고 하였는데 과연 이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의문시 됩니다.

  • 09.12.09 11:31

    본인은 花郞世紀의 진위는 형식적으로는 일본 궁내성 서릉고에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남당 박창화 선생이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문의 존재여부와 이것이 조선 규장각에서 유출된 판본인지, 또는 민간에서 보관중이던 판본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나, 그렇지 못한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남당유고 신라사초라고 제가 임시로 이름 지은 5권의 유고본과 위화진경초라 불리는 유고본을 해석하고 비교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 09.12.09 11:34

    또 신라사초를 검증하기 위하여 백제왕기, 고구려사초(략), 추모경을 모두 비교 검토(검증)하고, 중국정사 조선전의 기록과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비교 검토(검증)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면 남당유고가 창작인지 필사인지 내용적인 검토는 이루어 질 수 있다 할 것입니다. 지금 주류학계에서 내용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판본 존재여부의 불확실성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있다는 것은 증명이 가능하지만 없다고 증명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 09.12.09 13:13

    만약 일본 궁내성 서릉고에 남당유고의 원본이 있다면 조선 왕실도서관인 규장각본일까? 아니면 민간에서 소유하고 있던 판본일까? 여러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남당이 쓴 강역고라는 책을 보면 이씨 조선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 보인다. 남당은 적어도 자신이 본 서책들이 규장각에서 유출된 것인지, 민간의 것인지 알았을 것이다. 남당은 자신이 규장각본을 필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황당하였을 것이다. 화랑세기 등 각종 전적류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 황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차라리 남당이 희대의 사기꾼이고 나는 남당의 낚시에 걸린 한마리의 물고기인 것이기를 바란다.

  • 09.12.09 13:17

    ㅋㅋㅋ화랑세기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네요

  • 09.12.09 13:28

    예전 역사스페셜 방송에선 궁내성에 화랑세기 원본이 있지만, 그것이 온전한 형태로 있지는 않다. 그걸 부분 조각 내서 전부 따로 보관하거나 다른 곳에 붙이고 했다고 박창화 제자가 나와서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일본이 우리의 식민지가 되지 않는 이상 화랑세기 원본은 영원히 찾기 힘들겁니다. 궁내성을 뒤지도록 일본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죠. 접근도 못하게 하는데, 그걸 쑥대밭처럼 뒤지는 건 ....화랑세기에 대한 미스터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거 같네요. 고대 금석문이나 목간에 박미실!!! 이런 자료가 출토가 된다면 흥미진진해지겠죠 ㅋㅋ..그러나 제 생각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을 거 같군.

  • 09.12.09 13:29

    내가 남당유고를 해석하여 세상밖으로 내어 놓으려고 하는 이유는 원본을 되찾기 위한 목적도 있다. 남당유고가 책으로 나오면 그동안에 풀리지 않던 불합리한 일본의 기년이 풀리게 된다. 남당유고에는 일본의 왕들의 시호조차 언급되지 않지만, 신공여왕(우로살해 - 근초고왕과 칠지도), 광개토대왕과 인덕천황은 거의 확실하니 일본천황릉 발굴과 비교해 보면 일본의 기년도 풀지 못할 것도 없다. 다만 내부정리가 끝난 이후일 터이니 내가 그 결과까지 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우리와 같이 자료를 공유하면 빠르고, 저희들끼리 속닥거리다 보면 늦을 것이다.

  • 09.12.09 16: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09.12.09 17:37

    음...일본이 일본서기를 자국의 시조역사로 주장할 수 있는 상황하에서는...절대로 '남당유고의 원본'은 공개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만일 일본서기의 왜곡성이 완전히 규명되거나 혹은 심각하게 일본서기의 신뢰성이 의심받는 상황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일본인 스스로가 그것을 공개하여 '일본서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로 삼을 것입니다...즉, 이말은 지금 우리에게 공개된 '남당유고의 원전' 보다 더 자세한 '동아시아의 초기역사에 대한 언급'이 기록된 '古記類'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재 공개된 남당유고는 현재 알려진 내용으로부터 추론해 보면 '초기 古記類'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 09.12.09 17:35

    그리고, 현존 남당유고에 일본에 관한 사항이 자세하지 않은 것은 박창화가 한국사와 관련된 기록만을 필사해서 그렇지 실제는 일본사에 관해서도 이와같은 '초기 古記類'가 존재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즉, '초기 古記類'의 집필 목적이 한국사(신라사)와 일본사를 가능하면 구분짓기 위해서 집필된 것이기 때문에 '초기 古記類'에서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불명확하거나 생략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남당이 본 기록들은 아마 일제가 가져간 기록들이 아니라 조선의 규장각에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진 기록이었을 것으로 봅니다..한반도에서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삼국사기와 다른 古記類는 철저하게 인멸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09.12.09 19:23

    고스트님과 카오스님 말처럼 일본이 남당유고의 원본을 공개하거나 확인시켜 주는 일은 없겠지요. 그걸 공개하면 조선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에서 도둑질한 일이 들통나게 되고, 국제외교상 결국 돌려주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니까요. 또 정치적으로 돌려 줄때는 자신들에게 그만큼 자신의 이익과 합치될 때 입니다. 남당유고의 원본을 일본이 돌려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일이며, 지금 저는 열리지 않을 철문을 두드려보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남당 유고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 09.12.09 19:27

    저의 생각으로는 일본의 건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과 맞물려 있습니다. 현재의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의 도래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나, 일본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일본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한반도와 만주의 도래인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싫을 것입니다. 또 국내에서는 일본과 우리가 같은 조상의 나라라고 하면 일제의 '내선일체'사상과 같은 것이고, 본인을 친일파로 몰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결국 현실의 정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두 나라가 싫어하는 관계로 결론을 이끌어 가는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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