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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시에 패밀리닥터와 약속이 되어 있어 10시 50분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대기실에는 이미 5명이 대기 중 이어서 접수 후 3-4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간단한 진찰을 받는 게 이 정도이다.
큰 병원에서 행하는 수술의 경우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대기기간이 보통 6개월 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어느 분은 한국에 가서 1주일 만에 대장의 용정을 제거하고 형제들도 만나보고 그곳에서 한 달여를 재미있게 지내다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곳 캐나다 의료시스템이 비효율적이고 아주 느려터졌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필자가 이곳은 < 완전 꽁짜 > 이까 그렇지 않으냐고 한마디 했더니 자기는 돈을 조금 내도 좋으니 좀 빨랐으면 좋겠다고 한다. 있는 사람 이야기지만, 그건 이곳 의료체계를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이다. 제발 토박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삼가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자신이 급하다고 생각하면 왕복 비행기 값, 한국에서 수술비 그리고 그곳에서 한달여를 묵는 비용을 감수하고 갔다 오면 되는 것이다. 밴쿠버 섬 북쪽 조그만 도시에서 사업을 하던 지인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구급 헬리콥터로 나나이모 병원으로 후송되어 목숨을 건졌다. 그 후 그는 “ 여태까지 캐나다에 낸 세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 고 말했다. 당연히 이곳도 위급의 정도가 심하면 한국 못지않게 액션이 빠르다.
이곳에 갖 도착한 사람들 ( 새 이민자, 유학생, 주재원 등등 ) 에게 필자가 제일 먼저 하는 조언은 이 나라에서는 하루 빨리 기다림의 미학 (?)을 체득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만사가 힘들어지며 짜증만 늘어나 결국 그만큼 적응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관공서, 은행, 약국, 코스트코, 슈퍼 등등에서 돈 낼 때 길게 늘어선 줄을 마주할 때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 왜?, 직원을 좀 더 채용해서 귀중한 고객의 시간을 세이브해 줄 생각을 못하지? ” 그러나 이곳 토박이들은 어려서부터 줄 서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게 자연스럽고 즐겁기까지 한 모양이다. 모두 여유로워 보이는 게 한가하기까지 하다.
이것을 이들의 여유문화 ( ? ) 라고 이름 붙여 본다. 이런 문화가 하나 더 있다.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큰길이 아닌 주로 뒷골목 네거리 ( 신호등이 없는 곳 ) 길에 한국에 없는 4 – WAY 라는게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차를 멈추고 마주 보이는 도로와 좌우에 먼저 온 차를 우선 보내고 내가 출발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게 기가 막히게 잘 지켜진다.
신호등이 있는곳에서 사고는 종종 보았지만 신호등도 없는 이 4 - WAY에서 사고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차선을 바꿔야 하는 경우, 깜빡이로 신호를 주면 그 차선으로 달려오던 대부분의 차가 속력을 늦춰서 끼어들 여유를 준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길을 양보한다는 것이 곧 경쟁에서 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문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역시 우리와 상당히 다른 이곳의 결혼문화와 장례문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 결혼식
우리네와 달리 전문 결혼식장이 없다. 거의 대부분 컨벤션센터, 연회장, 교회, 박물관, 시청, 공원 등등, 그리고 집이 큰 경우 집 안 마당에서도 결혼식 올리며 초청장을 받았으면 참석 여부를 반드시 알려야 한다. 식이 끝난 후 연회장 식사로 이어지는데 이때 참석자의 좌석까지 지정되기 때문이다.
축의금 접수 테이블은 없으며 ( 중국과 한국계는 예외 임 ) 그 대신 신랑신부는 사전에 지인들에게 버킷리스트 ( 자신들의 필요 혼수 명세 ) 를 돌려 선물해 주고 싶은 품목에 표시를 하도록 한다. 그리고 지인들은 그 선물이 결혼식 당일 또는 적당한 시기에 전달되도록 한다.
연회장에서 식사가 거의 끝나면 신랑신부의 부모들은 자리를 뜰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이후는 신랑신부와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파티가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한국처럼 부모가 준비하고, 신랑, 신부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많은 사람들이 식장을 채우는 그런 결혼식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자기들 위주로 축하객을 선정하기에 부모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자식의 결혼 청첩장을 메일 (우편 ) 로 받고서야 비로소 자식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교민 부모. 펄펄 뛰며 하는 말 “ 여태까지 자식 헛키웠다. 앞으론 내 자식으로 생각 안 하겠다. “ 그러나 어쩌랴! 천륜을 어떻게 끊는단 말인가?
우리의 정서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아주 심한 경우지만 좋게 생각하자. 부모덕 안 보고 자신의 힘으로 결혼식을 치르겠다는 자식. “ 다 컸네, 우리가 자식 하난 잘 키웠다. “ 고.
- 장례식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병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루지만 이곳에서는 병원과는 관련 없는 장례전문식장에서 장례를 치른다. 문상객은 추도식 때만 참석한다. 우리네처럼 3일 내내 상주 (喪主) 가 식장에 상주하며 문상객을 받지 않는다.
추도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인과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어서, 여러 사람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고인과의 지난 추억을 회상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고인과 함께한 황당한 실수 또는 평소 고인이 즐겨하던 농담도 나오는 경우가 있어 한 때 식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한다.
추도식이 끝나면 참석자들은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관 ( 관 뚜껑을 열어 놓는다 ) 을 지나며 마지막으로 고인과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그 후 간단한 다과가 준비된 홀로 옮겨간다. 그리고 땅 덩어리가 워낙 큰 ( 남한면적의 약 100배 ) 관계로 우리처럼 사망 시부터 3일장 또는 5일장 이런 개념이 없는듯 하다. 꼭 참석 해야할 조문객의 일정, 장례식장 스케줄 등등을 보아가며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듯하다.
한국처럼 부의금 접수처는 거의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결혼식의 경우처럼 일부 중국과 한국계에서는 부의금 접수처를 봤는데 같은 동양사람인 일본계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그 대신 꼭 원하는 사람에 한해, 화환이나 우리의 부의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고인이 평소 치료받던 병원이나 어떤 자선기관에 보내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우리와 다른 점은 이곳 묘지는 봉분이 없다. 그저 평평한 땅 위에 비석만이 그곳에 어느 누가 잠들어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어떤 이는 평소 즐기던 문구를 새기기도 한다. “ 어영부영하더라니 내 이럴 줄 알았다 “ < 버나드 쇼 >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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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이번에도 줄도 맞지 않고 < 완전 꽁짜 > "니까 "가 <꽁짜> "이까"가 되어 엉망이 되었습니다.
- "수정 "에 들어가 수차 수정하려고 시도 했지만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 이글은 이곳에 사시는 분들을 위한것이 아니고 기회가 되면 한국산문 칼럼에 싣기위해 작성해 둔 것 입니다.
저희가 캐나다에 와서 겪는 문화의 차이들을 모아 주셨네요.
옹보수격인 제가 오랫동안 이해하고 접수하기 힘들었던 ....
20년 살다보니 합리적이다 싶어요
- 자식 대학교육에다, 직장 준비 그리고 결혼 때 목돈까지. 한국의 부모들은 주변이 모두 그러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제가 볼 때는 참 안 됐습니다.
- 정치인, 지식인, 언론/방송 등등에서 " 대학까지만 자식 돌보기 " 캠페인을 벌려야할 시점인데 서로 싸움질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