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이야기
내가 어릴 적 보낸 시골 생활은 오롯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겨울이면 손수 만든 썰매로 논바닥이나 개울에서 얼음지치기를 했다. 댓살을 쪼개어 한지를 발라 가오리연이나 방패연을 만들어 날렸다. 연줄을 감는 얼레도 직접 만드는 솜씨를 발휘했다. 이런 놀이만이 아니라 땔감나무도 해 날랐다. 빈 비료포대에다 솔방울을 주워오고 솔잎 낙엽을 긁어 지게에 짊어져 나르기도 했다.
생시 어머님께서 보내신 날들도 기억에 떠오른다. 어머님은 연중 기제사와 명절이면 세 가지는 기본으로 하셨다. 고두밥을 쪄 누룩과 비벼 제주를 담그셨다. 일철에는 그 술이 농주가 되었다. 콩을 불려 맷돌에 간 콩물을 가마솥에다 끓여 비지는 짜내고 간수를 타 두부를 만드셨다. 두부는 하루에 완성되지만 미리 시간을 두고 콩나물도 직접 길렀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시일이 걸렸다.
어머님은 연중 몇 차례 되는 집안 행사에 쓰일 콩나물을 손수 길렀다. 명절이나 기제사 음식 마련을 위해서다. 밭에서 농사 지어 수확한 콩이었다. 메주로 쑤는 대두보다 논두렁에 심은 파랑콩이나 검정콩이 콩나물 콩으로 쓰였다. 돌이나 벌레가 파먹거나 탈곡 과정에서 찌그러진 콩알을 가려냈다. 이것들이 콩나물 독에 함께 들어가면 잘 자라는 콩나물까지 상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불순물을 가린 콩을 물에 불려 바닥에 구멍이 난 시루에다 담으셨다. 여기다 겨울이면 볏짚으로 똬리를 틀어 덮고, 여름이면 감나무 이파리를 몇 장 따 덮었다. 바가지로 물을 펴 올려 줄 때 어린 싹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콩나물 생장 속도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빨랐다. 물은 일정 간격으로 고르게 주어야지 너무 자주 주어도 안 되고 간격이 뜸하면 잔발이 많이 생겼다.
삼십대 젊은 날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렸을 적이다. 좁은 방을 전전하며 세 들어 살 적 유년기 어머님이 기르셨던 콩나물을 길러보았다. 겨울이나 봄이면 실내가 건조했는데 콩나물을 기르니 가습기를 대체하는 효과를 보았다. 빈 화분을 콩나물시루 대용으로 어머님이 길렀던 콩나물을 그대로 흉내 내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깨끗하게 기른 콩나물은 좋은 찬거리가 되었다.
내 나이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다. 살다 보면 끼니를 혼자서 해결할 때가 있다. 라면으로도 때울 수 있겠으나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겨울을 넘겨보면서 제일 간편하고 깔끔한 재료가 콩나물이었다. 콩나물에다 삭은 김치만 있으면 어떻게든 한 끼 식사는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멸치로 다시 국물을 내어 콩나물국을 끓이면 된다. 굴이 들면 더 좋다. 삭은 김치를 함께 넣으면 얼큰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콩나물은 세 가지임도 알고 있다. 대형 할인매장 식품 코너에 진열된 콩나물이 제일 깨끗하고 신선하다. 중견 식품회사 브랜드 값을 제대로 한다. 그런데 콩나물 한 가지 사려고 그곳까지 찾아갈 일은 아니다. 재래시장 야채가게에서 파는 콩나물은 양은 많으나 재료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플라스틱 재질 용기에다 성장 촉진으로 키워서인지 콩나물이 무르다.
마지막 세 번째 콩나물은 재래시장이지만 노점 할머니가 파는 콩나물이다. 내가 사는 생활권인 반송시장의 경우 성당 맞은편 차도와 인접한 보도 노점이다. 아마도 할머니가 집에서 가족 누군가의 도움으로 손수 물을 주어 기른 콩나물이지 싶다. 할머니는 자연산 무공해 콩나물이라고 소개한다. 퇴근길 반송시장을 지나치다 몇 차례 사본 바로는 믿을만한 친환경 콩나물이었다.
엊그제 입춘이 지난 주중 수요일 오후였다. 한낮인데도 볼에 스치는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오전에 졸업식을 마치고 점심은 상남동에서 교지 편집부원들과 평가 반성 자리를 가졌다. 귀로는 반송시장까지 걸어 노점 할머니에게 콩나물 2천원어치를 샀다. 할머니는 플라스틱 대야에 콩나물을 뽑아 가늠해 검정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다. 나는 ‘많이 파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18.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