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삼다의 섬이라고 부른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은 섬이라는 뜻이다. 이제 세 번째의 ‘여다(女多)’가 사라지다시피 하였으니, 제주도는 명실상부한 ‘돌과 바람의 섬’이 되었다.
‘제주도에 가면 뭘 보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다시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모두가 볼거리’라고 대답한다. 사실은 비행기에서 멀리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모든 것이 볼거리이다. 낯선 이방인이 제주도 땅에 내린다면, 우리나라의 어디와 비교하여도 이색적인 경관뿐이다. 육지와 쉽게 구별되는 암석과 더불어 따뜻한 기온 그리고 바람이 이루어 낸 경관이다.
제주도의 기온이 주로 식생과 작물의 분포에 영향을 미쳤다면, 바람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옥이다. 비행기에서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알록달록한 마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모든 것이 평화롭다. 그 평화로움은 소박한 가옥의 지붕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붕의 경사가 급하고 웅장하였다면 평화로움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제주도의 지붕이 섬 곳곳에 널려 있는 오름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그래서 그 둘이 잘 조화를 이룬다고 표현한다. 멀리 있는 오름과 나지막한 지붕을 같이 보고 있으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름은 경사가 아주 급하다. 그렇게 보면 오름과 제주도 가옥의 지붕은 차이가 크다. 오름처럼 지붕의 경사가 급했더라면,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움은 분명 지금보다 덜하였을 것이다.
제주도 가옥의 지붕 경사는 완만하다. 우리나라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지방이지만 바람이 강하기 때문이다. 같은 면적의 집이라도 지붕의 경사가 급하면 훨씬 더 커 보이고 웅장한 느낌이다. 중부지방의 서해안에 가 보면 집집마다 지붕 경사가 급하다. 처음 그런 집을 볼 때는 규모가 꽤 큰 집일 것이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막상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제주도의 집에 비하여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낮고 완만한 제주도 가옥의 지붕
낮고 완만한 제주도 가옥의 지붕 제주도에서는 지붕의 경사를 완만하게 하여 겨울철 강한 바람에 적응하였다(제주 성읍민속마을, 2006. 1).
제주도의 지붕은 용마름을 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강풍에 지붕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육지에서도 해안가보다는 내륙으로 갈수록 용마름을 웅장하게 처리한다. 제주도에서는 처마의 높이도 낮게 하여 바람에 받는 압력을 최소화하고 있다. 바람이 강한 어느 해안가에서는 가옥 주변의 돌담을 상모루 높이까지 쌓은 곳도 있다. 개량된 가옥은 대부분 우진각 지붕이다. 이는 섬 지방 어디에서나 비슷하다. 우진각 지붕이 바람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량된 지붕과 가옥 주변의 돌담 제주도의 개량 가옥은 강풍에 견딜 수 있게 거의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다. 주변에 높게 쌓은 돌담 역시 같은 이유에서이다(제주, 2007. 8).
제주도의 지붕은 누구에게 크게 보일 필요 없이 그저 자연에 순응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만들어 왔다.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하면 강한 바람을 이겨 내기 어렵다. 그리고 완만한 경사도 모자라 제주도의 지붕은 새(茅)를 덮고 다시 새를 꼬아서 만든 줄로 지붕을 단단하게 엮었다. 바람이 강한 서쪽 지방에서는 새끼줄의 굵기가 동쪽 지방보다 굵다. 새끼줄의 간격은 매우 촘촘하다. 전국 어디를 돌아다녀도 그렇게 촘촘한 간격으로 엮어 놓은 지붕의 줄을 보기 어렵다. 새끼줄은 처마 밑으로 달아 놓은 대나무에 단단하게 묶어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한다. 그러고도 불안하면 아예 그물을 덮기도 한다.
제주도 가옥 지붕의 새끼줄 제주도에서는 지붕이 바람에 날리지 않게 새로 줄을 꼬아서 지붕을 촘촘하게 엮어 놓았다(제주 성읍민속마을, 2006. 1).
우리나라의 가옥은 일반적으로 북쪽에서 남쪽 지방으로 갈수록 개방적이라고 한다. 어쩌면 관북지방에서부터 남해안까지 본다면 그럴 듯한 이론이다. 그러나 제주도에 들어서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제주도의 가옥은 개방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제주도의 집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올래’나 ‘이문간’을 통해야 한다. 올래는 도로나 골목에서부터 마당까지 이어지는 공간이다. 얼핏 보면 마치 작은 골목으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꽤 긴 경우도 있으며 양쪽에 돌담을 높게 쌓았다. 그 돌담 안으로 키가 큰 방풍림이 빽빽하게 들어선 경우도 있다. 올래 때문에 길에서는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한편에선 잡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올래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기후와 관련지어 보면 올래는 강한 바람이 집 안으로 직접 들이치는 것을 막아 준다. 일반적으로 올래는 완만한 곡선으로 만들었으며, 직선이라 할지라도 가옥의 현관과 직각이 되지 않게 하였다. 올래의 앞에는 ‘정낭’을 두어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렸다. 정낭은 돌기둥 위에 걸쳐 놓은 나무 막대기 셋으로 구성되며, 그것이 놓여 있는 모양에 따라 주인의 이동 거리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도 이미 그런 것을 표시하였던 기억이 없다.
제주도 가옥의 올래 올래는 골목과 마당을 연결하는 것으로 제주도의 가옥으로 들어서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이다(제주, 1994. 5).
해안과 가까워서 공간이 좁아 올래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에는 이문간을 두었다. 이문간은 먼문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해안가뿐만 아니라 중산간에서도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는 올래 대신에 이문간을 두었다. 이문간은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대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주도에 대문이 없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제주도 북쪽 해안을 따라서 발달한 마을 중 인구가 밀집되었던 마을에는 예로부터 이문간을 둔 집이 많았다. 이것 역시 겨울철의 강한 바람과 관련된 것이다.
어떤 이는 이문간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해안에나 다 이문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바람이 약한 한라산 남쪽 지방의 해안에서는 이문간을 보기 쉽지 않다.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한 시설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문간은 높은 돌담과 이어져 있어 강한 바람이 안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주기에 충분하다.
이문간 올래를 둘 만한 공간이 없는 가옥에는 이문간을 두어 바람이 집 안으로 몰아치는 것을 막는다(제주 성읍민속마을, 2006. 1).
북서 계절풍이 강하게 부는 날, 올래나 이문간을 들어서서 마당에 서 있어도 집 안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풍채’ 때문이다. 풍채는 가옥의 전면에 설치된 것으로 지붕 아래에 매달아 지붕을 고정함과 동시에 차양의 역할을 한다. 햇빛이 강한 날은 받침대를 받쳐서 빛을 차단하며, 비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는 날에는 그것을 내려서 바람과 비나 눈이 집 안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는다. 풍채는 울릉도의 우데기, 전라도의 까대기와 기능이 비슷하다.
받침대로 받쳐 놓은 풍채 풍채는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집 안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한다(제주 성읍민속마을, 2006. 5).
제주도의 가옥은 겹집이다. 태백산지를 포함한 겨울이 추운 동네에서는 겹집을 짓지만, 겨울이 덜 춥거나 여름이 무더운 곳에서는 홑집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겨울 기온이 가장 높은 지역이지만, 어디서나 겹집을 짓고 산다. 겹집은 찬 북서 계절풍을 막아 집 안을 따뜻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벽을 많이 두면 보온이 된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방 앞에 ‘낭간’이나 방 뒤쪽에 ‘랑채’라는 공간을 두어 바람이 직접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방문을 이중으로 한 것도 찬 바람을 막는 데 효과적이었다. 요즘 짓는 집은 아파트이든 단독 주택이든 대부분 이중문을 설치한다. 제주도의 가옥에는 대부분 이런 이중문이 설치되어 있다.
제주도 가옥의 이중문 찬 북서풍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중문을 설치하였다(제주 성읍민속마을, 2006. 7).
간혹 제주도 사람을 만난 타지 사람들 중에는 그를 배타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혹시라도 그 생각이 맞는다면, 찬 북서 계절풍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제주도의 바람은 맞아 보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섭다. 제주도 사람들은 평생을 그 바람과 싸우다시피 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낯선 이를 대할 때도 경계하며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는 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바람은 이렇게 그들의 삶 속 깊이까지 파고들었다.
폐쇄적인 가옥 돌담 안에 집이 있지만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폐쇄적이다. 오른편에 북서 계절풍에 의해서 기운 편향수가 눈에 띈다(제주 서귀포, 2006. 5).
어느 날, 제주도를 방문한 서울 사람이 지나가는 학생에게 길을 물었다. 그 학생은 아주 친절하게 답하였다. 그러나 대답을 명확하게 알아듣지 못한 서울 사람은 다시 길을 물었다. 역시 학생은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그래도 서울 사람은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이번에도 학생은 친절하게 더욱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제야 서울 사람은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이 빠르냐’면서 더 이상의 질문을 포기하였다.
이런 일은 울릉도에서도 벌어졌다. 답사 때 어떤 집의 울타리가 특이하여 한 할머니에게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여쭈었다. 뭐라고 하는지 도무지 알아듣기 어려운 짧은 대답이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러기를 다섯 번. 이번에는 할머니가 화가 났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그 말을 왜 못 알아듣느냐’고. 끝내 알아듣지 못하였다. 후에 알아보니, 그 대답은 ‘우딸’이었다. 울타리를 짧게 줄여서 발음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발음을 너무 짧게 하여 마치 한 음절로 들린 것이다. 그러니 다른 지방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아듣기 어려웠을 것이다.
높다랗게 서 있는 우딸 울릉도의 우딸은 강한 바람이 집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아 주는 울타리를 말한다(경북 울릉, 2005. 5).
섬 지방의 사투리는 투박한 편이다. 게다가 말이 짧다. 그러면서 그 짧은 말을 빠르게 발음한다. 그래서 도시로 나오면 사투리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섬 사람이 있다. 적응하기 어려운 경우는 도시에 살다 섬을 찾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섬 지방 사투리가 그런 것은 기후의 영향이 크다. 대부분 섬에서는 바람이 강하므로 체감온도가 낮아 습관적으로 말을 빠르게 한다. 또 강한 바람 때문에 끝말이 잘 들리지 않아서 말의 끝부분을 발음하지 않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