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의 맛
아침 반나절 집안일을 하다가 어머니는 점심때 쯤 해서 아버지의 점심을 준비 한다. 먹을게 흔지 않던 때이라 아버지의 점심은 매우 간단하다. 아침에 먹다 남긴 찬밥 한 덩이에 막걸리 반 주전자와 함께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아버지가 일하는 들로 나 간다. 혹여 막걸리가 떨어졌을 경우는 어김없이 심부름을 해야 했다.
돈이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는 광에서 곡식을 한 바가지 담아서 전방에 주고 막걸리를 받아왔다. 막 모내기를 끝낸 논 자락을 거닐며 어머니를 따라 주전자를 들고 가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엄마 아버지가 있고 동생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요즘 말로 하면 부자가 부럽지 않았다. 녹뚝길을 가다가 개구리를 만나면 신기하듯 바라보았고 긴 막대기로 잡으려고 하면 엄마는 못하게 말렸다. 그리고 물가 논빼미에서 뱀이 물살을 가르고 지나가면 기겁을 하면서도 쫒아 가서 잡아야 했다.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뻐꾸기가 울어댈 때쯤이면 농사일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계절에 관계없이 늘 바쁘다. 그래서 여름이 막 시작되는 유월쯤이면 농촌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왜냐면 봄에 씨 뿌린 곡식들이 점차 제 자리를 잡아가면서 가을 수확을 위해서 열심히 자라고 있다. 이때부터는 농사꾼이 얼마나 부지런했는가에 따라 수확량이 다르다.
논에 잡풀도 매야 하고 콩밭에 웃자란 쇠비름도 뽐아 내야 한다. 쇠비름은 생명력이 강해서 여간 잘 죽지 않는다. 또한 고구마 넝쿨도 적당히 손질을 해줘야 틈실하게 잘 안 는다. 말하자면 풍년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참깨에 붙어 사는 파란 벌레도 잡아줘야 하고 콩밭에 두더지도 잡아내야 한다. 특히 참깨에 있는 애벌레는 진녹색을 띤 벌레가 크기도 엄청 커서 여자들에게는 천적이었다. 나무젓가락으로 짚어서 몰래 갖다 주면 ‘엄마야’ 하며 놀래서 자빠지며 도망을 가는데 배꼽을 잡고 웃던 기억이 새록새록 해진다.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다.
저녁 해 걸음이 될 때쯤이면 들에서 어머니가 저녁 준비 하려고 일찍 집에 들어온다. 오늘 메뉴는 칼국수이다. 쌀이 없으니 하루 건너씩 해먹어야 한다.
밀가루 반죽을 넓게 밀어서 몇 겹을 겹친 후 부엌칼로 썰어 면을 뽑아서 이름 붙여진 칼국수가 있다.
적당한 양의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밀가루를 치대기 시작하는데 이때 너무 묽으면 손에도 들러붙고 면이 힘이 없다, 그래서 적당한 농도 조절이 필요했다. 반죽을 한참을 치댄 후에는 헝겊에 싸서 숙성을 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밀가루는 아기피부처럼 부드럽고 매끈해진다. 모두가 할머니부터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눈대중으로 옛 부터 배워온 기술이다.
반죽이 완성되면 홍두깨로 밀가루를 묻혀가며 반죽을 조금씩 밀어내서 키운다. 이것을 홍두깨에 둘둘 말아서 다시 손을 이용해서 연신 좌우로 움직여 반죽을 여러 번 고르게 밀어내서
펴면 커다란 상이 넘치도록 얇고 널따란 칼국수 반죽이 완성이 된다. 그리고 칼로 송송 썰어 내면 손칼국수가 완성되는 것이다.
국숫물을 끓이는 동안 어머니는 파와 마늘 고춧가루, 참깨 등을 섞어서 국수에 넣어 먹을 양념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국수에 넣을 애호박을 채 썰어서 만들어 놓고 이때 얼큰한 매운 고추가 제격이다. 육수는 옛날 시골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멸치를 넣은 육수물이다. 들에서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국수를 건져서 드렸다. 그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뜨거운 국수를 후후 불어가면서 먹었던 칼국수에 대한 기억이 세월이 지나도 새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