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著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그것을 큰일로 만들지 말라
한 사람이 라다크 지역을 여행했다. 해발 3,500미터의 레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푼 그는 먼저 도착한 투숙객이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코에 대고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말로만 듣던 고산병을 실감했다. 3층 객실을 오르내리는 데도 숨이 찼다. 곧이어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속이 메슥거리고 증상이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하루만 휴식을 취하면 된다고 숙소 주인이 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조여 오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비싼 돈을 내고 대여한 산소호흡기도 별 효과가 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고산병에 대한 공포가 시시각각 커져만 갔다. 3ㅇ리째 되는 날,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하고 혈중 산소 농도를 측정한 후 단순한 소화불량이라면 약을 처방했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일주일 동안의 정해진 여정을 게스트하우스 방 안에 누워서 다 보낸 후 비행기를 타고 낮은 지대로 내려와야만 했다. 나중에야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그 정도는 고산지대에서 누구나 겪는 사소한 증상이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 문제를 키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고 그는 나에게 고백했다.
외부 상황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내면의 전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인간 심리의 흔한 측면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때 노랑 앵무새를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눈을 감자마자 노랑 앵무새를 떠올릴 것이다. 그 생각은 차츰 강박적인 되어 밥을 먹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심지어 꿈속에도 노랑 앵무새가 나타날 것이다. 그 새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남인도 첸나이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자정 넘은 시작에 도착해 숙소를 향해 가는데, 12월인데도 폭우가 쏟아져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천 하나로 가림막을 한 오토릭샤(오토바이와 자동차 중간 형태인, 인도 서민 교통수단의 상징) 안으로 사정없이 비가 들이쳐 백 미터도 못 가서 속옷까지 흠뻑 젖고 배낭은 물에 빠뜨린 꼴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비를 맞은 것은 처음이었다. 바퀴까지 물에 잠긴 오토릭샤가 늪인지 웅덩인지 모를 곳을 종횡무진으로 달리니 사방의 비를 다 맞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보이는 물체가 소인지 사람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쇠창살을 꽉 움켜진 내 두려움을 느꼈는지, 늙은 릭샤 운전수 어깨너머로 말했다.
“낫싱 스페셜nothing special!”
‘큰일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우기가 긴 남인도에서는 12월에도 종종 폭우가 쏟아진다). 그 한마디 말이 부정적인 상상으로 내면의 전투를 벌이려는 내 마음을 바꿔 놓았다. ‘나는 여행자 아닌가? 아열대 나라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비를 맞아 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날 밤, 젖은 옷과 배낭 안의 물건들을 게스트하우스 방 안에 가득 늘어놓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날이 활짝 개어 있고 싱그런 바나나를 가득 실은 수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강박적인 생각을 내려놓을 때 마음과 가슴이 열린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문제들에 너무 쉽게 큰 힘을 부여하고, 그것과 싸우느라 삶의 아름다움에 애정을 가질 여유가 없다.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인데도 마음은 그 하나를 전체로 만든다, 삶에서 겪는 문제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괴물이 되어 우리를 더 중요한 것에서 멀어지게 한다. 영적인 삶의 정의는 ‘가슴을 여는 것’ 혹은 ‘받아들임’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국에 온 인도인 친구와 차를 마시다가 그의 삼촌 파탁 씨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도 만난 적 있는 그 삼촌이 얼마 전 급성 빈혈에 걸려 수혈이 필요했다. 형액형이 희귀해 애를 먹긴 했으나 다행히 늦기 전에 기증자를 찾아 구혈에 성공했고, 파탁 씨는 건강을 회복해 정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달 뒤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정통 흰두교인 파탁 씨는 한 가지 우ㅢ심에 사로잡혔다. 자신에게 혈액을 기증한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처럼 신분이 높은 계급일까, 아니면 하층민일까? 만약에 불가촉천민이며 어떻게 하지? 혹시라도 무슬림이나 범죄자라면?
자기 몸 안에 수혈된 낯선 피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진 나머지 심장이 빨라지고 식은 땀이 났다. 파탁 씨는 기증받은 형액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도 믿지 않았으면, 겨루에는 심한 신경쇠약증에 심박수와 불안증과 피로감이 정체 모른 혈액 기증자의 DNA와 헤모글로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확신했다. 화가 난 그는 고나공서마다 전화를 걸어 낮은 카스트의 혈액을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 수혈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절박했던 급성빈혈에서 살아난 기쁨은 사라지고, 그가 문제를 확대시킴으로써 세상은 메아리처럼 그에게 더 많은 문제를 안겨주었다. 결국 뛰어난 문제 발견자인 그는 자신에게 다시금 주어진 새 삶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런 우화가 있다. 숲에서 진박새가 야생비둘기에게 말했다.
“눈송이 하나의 무게가 얼마인지 알아?”
야생비둘기가 말했다.
“무게가 거의 없어.”
진박새가 말했다.
“그럼 내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내가 전나무 둥치 바로 옆 가지에 앉아 있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심한 눈보라도 아니었어. 전혀 격렬하지도 않고 마치 꿈속처럼 내렸어. 나는 달리 할 일이 업었기 때문에 내가 앉은 가지 위에 내려앉는 눈송이들의 숫자를 세었어, 정확하게 3,742,952였어. 네 말대로하면 무게가 거의 없는 그다음 번째 눈송이가 내려앉는 순간 나뭇가지가 부러졌어.”
지금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각의 눈송이들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는가. 생각만큼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없다. 마음은 한 개의 해답을 찾으면 금방 천개의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작가이다. 마음이 자기와 전쟁을 벌이지 않을 때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한 여성이 충격을 받고 심한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영적 스승에게 조언을 청하자 스승이 말한다.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아요”
암에 걸린 것은 불행한 사건이지만, 그것을 스스로 더 크게 학대시켜 자신을 괴롭히지 말하는 것이다. 평소 수행을 해오던 그녀는 그 조언의 의미를 이해하고 차츰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암은 자신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주위에서 놀랄 정도로 과거보다 더 활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암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자 두려움과 싸우던 에너지가 생명력으로 바뀌어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화 화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문제는 작아지고 우리는 커진다. 실제로 우리 자신은 문제보다 더 큰 존재이다.
행복한 일이든 불행한 일이든 이것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라’
물론 이런 조언은 함부로 흉내 내선 안 된다. 만약 큰 성공으로 행복해하거나 불의의 상실로 고통받거나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이에게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간 당신은 당장 쫓겨나거나 절교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 조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때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