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는 언론에 무례한, (정치인의) 음흉한 표현”
뉴스의 형식은 갖췄지만 ‘조작 정보’와 오보는 명확히 다르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WTOE5 TV라는 매체로 미국 지방 방송사의 하나처럼 보였다. SNS상에서 급속히 퍼져 갔지만 조작된 정보였다. 이런 방송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멀쩡한 김일성이나 덩샤오핑(鄧小平)을 사망했다고 한 것은 오보로 분류된다. 정보 접근이 어려운 공산국가의 정보를 잘못 전해 들은 뒤 충분히 확인하지 못해 생긴 결과다.
▷정확한 이름, 정명(正名)을 쓰는 것은 본질 이해에 중요하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회장 겸 발행인은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그제 서울대 강연에서 “우리 신문은 가짜뉴스라는 말을 안 쓴다”며 “언론에 무례한 표현이고, 굉장히 음흉한(insidious)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의도적 조작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뉴스라는 외피를 입게 되면서 언론의 공신력이 훼손된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가짜와 뉴스는 같이 쓰는 자체가 형용 모순이란 뜻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뉴욕타임스를 인수한 옥스-설즈버거 가문의 6대손인 그는 2017년 발행인에 취임했고, 이후 가짜뉴스 논쟁을 피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집권한 후 뉴욕타임스 CNN 등 주류 언론의 비판적 기사를 “가짜뉴스이니 관심 두지 말라”는 식으로 깎아내리고 있었다. 트위터(현재의 X) 횟수만 2년 동안 600번이 넘었다. 트럼프는 1930년대 독일 나치가 자신들의 선전 선동과 다른 기사를 보도하면 뤼겐프레세(Lügenpresse·거짓 언론)라고 몰아세웠던 그 방식을 가져다 썼다.
▷설즈버거 회장은 강연에서 “잘못된 정보의 시대를 맞아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며 “언론에는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음모론과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는 현실 속에서 사실에 기반한 뉴스를 만드는 언론사의 영향력은 더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미래에는 온라인 콘텐츠의 90%를 인공지능(AI)이 만들게 되면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더 모호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보듯이 의도적으로 만든 가짜 희생자 사진이나 폭발물 영상물이 생사를 가르는 사안에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설즈버거 회장은 “두 번 세 번 사실관계를 크로스 체크하고, (뉴스를 가진 힘 센 사람을 향해) 어렵고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이 자기 자리를 지켜줄 때 오해와 혼돈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김승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