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교회를 파고드는 사탄의 전략
퍼온 글입니다.
바야흐로 인문학 열풍이다.
TV를 봐도, 출간되는 서적을 봐도 온통 인문학 이야기.
그러니 아예 여러 주제를 인문학에 결부시키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커피와 인문학, 자동차와 인문학, 컴퓨터와 인문학 등등.
여러해 전에 미국의 노숙자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실시한 적이 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그들에게 인문학이 무어냐고 하겠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고 자아를 찾게 해주는 인문학 강의 이후
많은 이들이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로 복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상당히 고무적이고 권장, 지향할 일이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바야흐로 교계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목회자들이, 리더들이 앞 다투어 인문학 강의를 듣고,
인문학 모임을 갖고,
인문학 서적을 각종 SNS에 올리고 있다.
광풍이라 부를 만 하다.
인문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문학(人文學, 영어: humanities)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광범위한 교육의 기준으로 그리스,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20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에 의해 재차 논의되었다. 하위 분야는 고전학, 역사학, 언어, 문예, 음악, 그리고 철학과 종교학 등이 있다. |
두 번 정도 읽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인문학의 정의.
인문학은 인간의 실존을 철학적으로 관조하고 파헤치는 학문이다.
태생이 내면탐구, 인본주의,
결국 뉴에이지로 귀결된다.
그럼 왜 크리스천이,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보이다 못해 열광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각종 수사를 설교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어떤 이들은 초등학문이라도 배우면 얻을게 있고, 배울 것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성경만 읽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어두워질 수 있어 그렇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경이 열린 비밀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읽으면 읽을수록 캐낼 보화가 끝이 없는 화수분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대신...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간절히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며,
간절히 말씀 가운데 성령으로 깨달아 알게 하시기를 구하며
간절히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임하기를 구하지 않으면
‘약간’ 열린 비밀에서 끝난다.
5년, 10년을 그 보화를 캐다가 멈춘다.
이젠 목회자라서,
리더라서,
세상에 죽도록 말씀만 캐는 사람이 안보여서,
온갖 타당한 이유를 들어 멈춘다.
그리고
인문학이,
초등학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 현란한 수사가,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공감이,
이마를 탁 치는 현자의 선문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인문학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없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십자가에 하나님 친히 매달려가면서 주신 말씀인데,
인문학 같은 세상 초등학문에는 내게 오는 길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초등학문에 꾸역꾸역 달라붙는다.
평생 먹어도 다 못 먹을 생명양식을 주시고
혹여 이해 못할까봐 성령님도 함께 하시는데...
십자가가 무색할 노릇이다.
왜 멈추나.
결국 제대로 못 먹어봐서 멈추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말씀을 통해 내 안에 샘이 열리고,
말씀을 통해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지고,
말씀 가운데 지성소에 거하기 시작하면,
어떤 세상의 고전이 눈에 들어올까.
시냇가에 심겨지면,
내가 열매가 되고,
주변을 소성케 하는 잎을 내는데,
내 입술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건네시고,
그분의 일을 하시고,
나는 그분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목도하는데...
그게 안 되니,
그게 의심스러우니,
터진 웅덩이를 파고야 만다.
동남아에 간 선교사님들이 심정적 종교다원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들어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세상살이에 지혜가 되는 말들이 있어 적용하다 보니
머리만 들어오던 낙타가 주인을 밀어내고 텐트를 차지하고야 만다.
사단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이것이다.
‘저건 성경적이진 않지만 배울 것들이 몇 개 있으니 필요한 것은 취하자’
평신도들이 인문학에 빠질 때,
초등학문에 빠지지 말라고,
하나님 말씀에 모든 것이 있고,
말씀 외에는 생명이 없다고 말해야 할
목회자가, 리더가...
설교는, 성화는,
아니 신앙은...
방정식을 적용하는 수학이 아니다.
생명 없는 인문학에서 하나님을 떠올리는 것이 적용이 아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
적용이다.
난파선의 선장일 뿐이다.
이단이 무섭지만
내부의 적에 비할 바가 아니다.
김조광수를 초청해 동성애자의 입장을 듣는 현실이 참담해도
인문학을 통해 안에서 썩어 들어가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바야흐로 인문학 열풍이다.
아니, 死풍이 불고 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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