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얼굴은 그대 삶의 상징이다.
인간의 얼굴 속에서 삶은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들여다본다.
고통과 분노가 머물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한 사람의 삶이 황폐해질 때, 거기 많은 부정적인 것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황폐함이 얼굴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얼굴은 온화해지는 대신 딱딱하게 굳어져 가면이 된다.
인간을 일컫는 가장 오래된 단어 중 하나는 그리스 어의 '프로소폰'이다.
프로소폰은 그리스 가무단에서 연기자들이 쓰는 가면을 뜻했다.
고통과 분노가 승화되지 않고 남아 있을 때, 얼굴은 하나의 가면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그것과 반대되는 얼굴을 만나기도 한다.
즉 시간과 경험이 깊은 주름을 새겨 놓았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은 아름다운 노인의 얼굴을.
그의 삶은 피곤하고 고통스럽게 흘러갔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침범하게 하지 않았다.
그런 얼굴에서는 고귀한 빛이 흘러나와 세상을 두루 비춘다.
그 얼굴은 신성하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빛을 내뿜는다.
얼굴은 언제나 그대가 누구이며, 삶이 그대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대가 자기 자신의 삶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대의 삶은 그대와 너무도 가까이 있어서 그대는 그것을 바라볼 수가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대의 얼굴을 통해 그대의 신비를 알아볼 수 있다.
인간의 얼굴은 표현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초상화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전통적으로 눈은 영혼의 창이라고 이야기한다. 입 또한 초상화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입술 선은 조금은 이상한 방식으로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종종 굳게 다문 입술은 정신 세계의 빈곤함을 보여 준다.
영혼이 얼굴의 모양으로 삶의 이야기를 쓸 때는 이상하게도 대칭의 방식을 사용하는 듯하다.
인간의 육체는 아름답다. 육체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다.
그대는 육체를 통해 한 장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인간이 언제나 장소에 매혹된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장소는 우리에게 이곳에서 머물 집을 제공해 준다. 장소가 없다면 우리는 문자 그대로 갈 곳이 없을 것이다.
풍경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는 장소다. 풍경 속에서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은 우리와 친밀한 장소가 된다.
집은 여러 가지 물건들로 장식되고 개인적인 곳으로 탈바꿈한다.
그리하여 그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닮고, 그들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하지만 깊은 의미에서는 육체야말로 가장 친밀한 장소다. 육체는 흙으로 만든 그대의 집이다.
육체는 이 우주에서 그대가 갖고 있는 유일한 집이다.
그대의 육체를 통해, 그리고 그대의 육체 안에서, 영혼은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이 되고 그대에게 사실적인 것이 된다.
그대의 육체는 지구에 머무는 그대 영혼의 집이다.
불가사의할 정도로 영혼과 육체가 일치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니지만, 육체는 이따금 그 사람의 내면 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은 깊은 관계가 있다. 육체는 영혼이 자신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코네마라 출신의 내 친구는 육체는 영혼을 지키는 천사라고 말했다.
육체는 영혼을 표현하고 보살피는 천사다. 그러므로 그대는 언제나 자신의 육체에 다정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육체는 자주 마음의 거짓과 독성에 희생양이 되어 왔다.
인간 본래의 순수성이 육체를 감싸고 있으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은 빛과 선함 또한 거기에 있다.
육체는 우리 삶을 지키는 천사다.
육체는 존재의 폭넓고 강렬한 집이 될 수 있다. 공연장이 좋은 예가 된다.
배우는 배역을 받아들여 자기 안에 완전히 머물게 할만큼 충분한 내면 공간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배역의 목소리와 마음과 행동은 배우의 육체를 통해 미묘하면서도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배우의 육체는 그 배역이 머무는 곳이 된다. 육체가 가장 풍부하게 자신을 표현할 때는 춤출 때다.
인간의 춤은 매우 아름답다. 춤은 유연하게 흐르는 조각품과 같다.
육체는 자극적이고도 장엄하게 텅 빈 세계에 형태를 부여한다.
아일랜드 문화에서 그것을 흥미롭게 보여 주는 것이 신 노스 춤이다.
그 춤에서 무용수는 전통 음악의 야성적인 흐름을 몸으로 표현한다.
육체는 많은 죄를 짓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환생에 토대를 둔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종교는 자주 인간의 육체를 악과 무지, 성적인 사랑과 유혹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되고 맞지 않는 말이다. 육체는 신성한 존재다.
육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그리스 철학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그리스 인들은 아름다운 사상가들이었다. 그들은 신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신이 그들 마음속에 끊임없이 떠올랐고, 그들은 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신을 비추는 거울을 찾기 위해 언어와 개념을 이용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육체가 가진 끌어당기는 힘을 예민하게 자각했으며, 육체가 신을 너무 지상 가까이로 끌어내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지상으로 이끌리는 것을 오해했으며, 그것이 신의 세계와 충돌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전생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환생에 대해서도 암시하지 않았다.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였을 때, 그 속으로 그와 같은 이원론이 들어왔다.
영혼은 아름답고, 밝고, 선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신과 함꼐 있고 싶은 갈망은 영혼의 본성이었다.
육체의 위험성만 없다면, 영혼은 영원 속에 계속 머물 수 있을 것이었다.
이처럼 육체에 대한 깊은 의심이 기독교 속으로 들어왔다.
영혼의 동반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