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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가르침
지난주 도쿄역 앞 책방 ‘마루젠(丸善)’에 들렀다.
마루젠은 문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도 자신의 소설 속에 언급한 근대 교양문화의 상징 같은 곳이다.
20세기 초부터 다양한 종류의 구미 서적을 팔던 ‘지성의 향연장’으로, 당대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가들
대부분이 즐겨 찾던 공간이다.
4층 건물 전체가 책방인 이곳에 들르면 일본의 현황이 한눈에 보인다.
1층으로 들어서자 일본어로 번역된 일론 머스크 전기가 높이 쌓여 있다.
‘시대의 이단자’란 타이틀과 함께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서 있다.
뭔가 창조적이고, 글로벌을 넘어 우주 차원으로 활동하며, 돈도 많고, 최근 체중 감량까지 성공한 인물이 머스크다.
지구인 대부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최절정에 선 인물이라고나 할까?
모두 박수를 치고 흠모하는, 명실상부 지구 최고 스타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왠지 필자에게는 멀게 느껴진다.
가령 초등학생이 ‘장래 꿈=일론 머스크’라고 말할 때 맞장구칠 자신도 흥미도 없다.
너무도 꼰대스러운 생각이지만 철학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작지만 인류의 영혼을 울릴, 참신한 그 뭔가가 빠진 느낌이다.
‘신 포도(Sour Grape)’ 심리라 비난할 듯하지만 본받거나 환호성과 함께 따라갈 생각은 없다.
100세 코너에서 발견한 스테디셀러
3층으로 올라가자 ‘100세 코너’라는 특별 전시대가 따로 설치돼 있다.
약 100권 정도의 책이 진열돼 있는데, 인생 100년을 살아가기 위한 육신·정신 개발서들이다.
지극히 일본적인 풍경이지만 100세 인생 스토리는 진시황의 불로장생 스토리에 한정되지 않는다.
주변 정리나 인적관계 청산에 관한 지침서나 안내서가 주류다.
‘깨끗이 죽는 법=100세까지 잘 사는 법’이란 식으로 통한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란 얘기다.
한국의 경우 100세 장수 준비라고 하면, 돈과 건강부터 떠올릴 것이다.
일본의 경우 조금 다르다.
70대 이후 새로운 취미 개발은 어떻게 하나, 죽으면 화장 후 재를 바다에 뿌릴까,
옷이나 소지품 정리는 언제부터 어떻게 할까,
배우자가 사라진 뒤의 새로운 황혼 출발이 가능할까 등등에 먼저 눈이 간다.
필자 판단이지만 100세 코너 책들을 보면 정글 속 1인 서바이벌 키트 같은 느낌이 든다.
가족, 사회, 국가가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100세를 준비하고 이겨낼 수많은 전략·전술이 전체를 채우고 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이하 ‘그대들’)’.
100세 코너에서 발견한 눈에 익은 책이다.
최근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선보인 애니메이션 제목이기도 하다.
원래 ‘그대들’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청소년 필독서였다.
1937년 요시노 겐자부로가 쓴 대화형식 소설로, 코페르라는 별명의 15세 소년과 외삼촌이 나누는 얘기가 주된 내용이다.
2017년에는 만화로도 만들어져 무려 250만부가 팔려나간 90여년 장기 베스트셀러다.
아무리 국민 교과서라 해도 10대들의 필독서가 100세 장수 코너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나 코너 한쪽에 새겨진 ‘10대부터 시작되는 삶의 변화’라는 문구를 보면서 이해가 됐다.
100세 장수 문제는 장년 이후부터가 아니라 10대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다.
‘길고 긴 여정’인 셈이다.
보톡스를 맞고 5㎞ 산행도 하면서 채소와 잡곡으로 이뤄진 삶이 100세 초상화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돈과 건강만이 아니라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필요하다.
죽음을 피하려는 장수가 아니라 삶을 지속해 나갈 ‘이유와 목적’으로서의 장수다.
당연하지만, 100살까지 이어질 내면용 정신영양제가 필요한 것이다.
10대들의 필독서 ‘그대들’은 장수시대로 이어질 정신영양제라 볼 수 있다.
실버세대가 청춘기를 생각하며 재음미하는 회고록이 될 수도 있고,
10대가 언젠가 닥칠 노년기를 생각하며 읽는 인생 나침반 같은 책이 될 수도 있다.
100세 코너에 ‘그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차지해야만 하는 이유라 볼 수 있다.
미야자키의 동명 애니메이션이 출시된 것은 지난 7월 14일이었다.
엄청난 광고나 그 흔한 이벤트 하나 없이 그야말로 소리소문 없이 영화관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과거 ‘슬램덩크’가 그러했듯이 광고나 이벤트가 없는 ‘매니아만의 축제’에 만족한다는 자세다.
구미 선진국의 흐름이지만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신인류의 흐름으로 정착되고 있다.
루이비통이 아니라 100엔숍 가방에 주목하는 식이다.
광고 하나 없었지만 ‘그대들’에 대한 반응은 지금까지도 폭발적이다.
지난 8월 중순 기준 이미 500만명 이상이 이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봤다고 한다.
엄청난 흥행수입을 올리면서 명장 미야자키의 인기를 재실감케 했다.
일본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도 곧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감독과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미야자키의 ‘그대들’은 개봉 두 달이 넘었는데도 그 흔한 외부 유출이 없다.
500만명이 본 영화라지만 여전히 내용이 베일에 싸여 있다.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소년 마키 마히토가 주인공으로 1944년 2차대전이 배경이다.
공습을 피해 도쿄 교외로 간 마키는 전쟁 공포와 더불어 어머니도 잃고 학교 공부에도 무심한 외톨이 소년이다.
요시노의 원작 ‘그대들’은 소년 마키가 애니메이션 속에서 읽는 감동의 책으로 등장한다.
미야자키의 ‘그대들’은 1930년대 요시노의 ‘그대들’에서 힌트를 얻고 원작을 오마주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크게 보면 비슷한 얘기가 될 수 있지만 거장 미야자키가 마키를 통해 그려낸 자서전이란 성격이 강하다.
미야자키의 인생 나침반 같은 책
미야자키는 1941년생이다.
요시노의 ‘그대들’은 미야자키 소년기의 기억에 선명히 남은 책이기도 하다.
실제 어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은 뒤, 평생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다고 한다.
과연 어떤 책이기에 출간 86년 만에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을 통해 부활할 수 있었을까?
‘그대들’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1930년대 도쿄를 무대로 15세 중학생 코페르가 숙부로부터 들은 얘기를 모은 것이다.
코페르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동생에게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형의 유언에 따라 코페르의 숙부는 삶에 관련된 다양한 조언을 편지 형식으로 전달한다.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코페르와의 대화를 통해 의문시되던 부분을 풀어나가는 식으로 알려준다.
결국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이다.
학교·우정·사회·사랑·우주에 관한 숙부의 생각과 지혜가 15세 소년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청소년용 인생지침서라 볼 수 있다. 결론은 ‘혼자 알아서 판단하라’로 집약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미야자키의 ‘그대들’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평화다.
원작의 코페르는 마키이며, 원작의 숙부에 해당하는 존재가 인간과 동물을 오가는 왜가리다.
둘의 신비한 대화를 통해 평화의 메시지가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 퍼져나간다.
다소 무거운 주제여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비와 상상에 기초한 애니메이션 특유의 부드러운 세계관을 통해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울려퍼진다.
불타는 눈빛으로 채워진 이데올로기나 주먹진 슬로건이 아니라 무지갯빛 환상의 세계를 통해 반전·반핵을 조용히 강조한다.
21세기 서구의 흐름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들이 ‘특히’ 열광한다.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아예 일본판 애니메이션 섹션이 따로 분류돼 있을 정도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1970년대 유럽 어린이 프로그램에 일본판 애니메이션이 매일 방영된 것이 한 배경일 것이다.
당시 유럽은 어린이용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따로 없었다.
유럽 전역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 본격화되면서, 저작권 무료에다 소년 소녀 눈에 맞춰진 일본
애니메이션이 유럽 텔레비전을 뒤덮었다.
그 결과가 21세기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장년층의 유년기 기억을 되돌려주는 추억의 부활인 셈이다.
유럽 곳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21세기 일본발 애니메이션의 왕은 단연 ‘원피스(One Piece)’다.
1997년 출간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106권(2023년 7월 4일 기준)짜리 만화의 줄거리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해적왕을 꿈꾸는 루피의 모험을 다뤘는데 혼자가 아닌 집단의 미덕이 배어 있다.
영화나 소설로도 선보이고 있지만, 고무인간 루피의 장대한 오디세이 스토리가 서구에 널리 퍼져 있다.
왜 ‘원피스’가 세계의 흥미거리로 떠올랐을까?
상상력이 넘치는 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크게 보면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적왕 스토리라는 점에서 기상천외한 스토리는 아니다.
10년 정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온 경력자라면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왜일까? 답은 필자의 베네치아 친구인 프란체스코가 던진 한마디를 통해 얻어낼 수 있었다.
“애매하지 않은, 구체적인 답과 결의가 대사 곳곳에 배어 있다. 인생의 모범답안이다.”
‘원피스’를 본 사람들이라면 느끼겠지만 대화 중 기억에 남을 명대사가 ‘반드시’ 등장한다.
액션이나 모험만이 아니라 인간 내면을 관통하는 감동 메시지가 애니메이션 ‘원피스’가 갖는 매력이자 특징이다.
당연하지만, 인터넷에 들어가 ‘원피스’ 관련 정보를 찾아보면, 가슴에 새길 ‘명대사’ 시리즈가 넘쳐난다.
‘원피스’ 매니아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유명한 대사들을 보자.
“살고 싶다” “인간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두 번 다시 패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감 없이는 성장도 없다”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그때 나를 친구라 불러줄 수 있겠는가”
“네가 못할 경우 내가 행하고, 내가 못할 경우 네가 행하면 된다”
“친구 사이니까 이유가 따로 필요 없다”
“세상에 태어나 혼자 고립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환상의 보물섬, 그냥 놓칠 경우 일생 동안의 후회가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끝판왕 ‘원피스’의 명대사들
서방 가치관에 따르면, 개인의 삶에 개입될 만한 얘기나 조언은 피해야만 한다.
가까운 친구라도 무겁고 심각한 얘기는 피하려 한다.
학교는커녕 부모조차도 자식의 삶을 결정할 언어를 피하는 시대다.
굳이 조언이나 방향을 얻고 싶다면, 돈을 내고 전문가와 만나는 것이 최선의 방법 중 하나다.
어른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어른이 나설 수 없는 시대가 21세기다.
문제는,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자유·자율·자발이라지만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주의 중심은 나라고 믿고 행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는 사람도 넘쳐난다.
결국 모두가 가는 길에 떠밀려 빠져들 뿐, 주체적인 판단이나 생각 자체가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등장한 해법 중 하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이지만, 구체적인 차원에서의 교훈성 대사가 넘친다.
환상적인 장면도 많지만 기억에 남을 구체적인 감동 대사가 일본 특유의 집단의식을 배경으로 울려퍼진다.
‘원피스’, 나아가 미야자키의 ‘그대들’은 그 같은 교훈성 메시지로 채워진 애니메이션 작품들 중 하나다.
21세기 할리우드발 슈퍼 히로어 영화의 특징이지만 혼자가 아니라 집단으로 나선다.
적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지만, 21세기 슈퍼 히로어는 십여 명의 무리가 기본이다.
일본에도 히로어 영화가 넘쳐난다.
할리우드와 달리 20세기 때부터 ‘이미’ 집단으로 나서 적과 싸워온 영웅들이다.
자세히 보면, 미국 히로어 영화와 크게 다른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할리우드 집단 슈퍼맨 스토리를 보면 교훈성·감동성 대사가 별로 없다.
영화의 핵심은 강력한 슈퍼맨들의 파워에 집중된다. 슈퍼맨들끼리의 불화도 적지 않다.
일본은 반대다. 일본 히로어는 강하기보다 약하다.
약하지만 모두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 일본판 슈퍼 히로어의 특징이다.
가슴에 새겨질 감동 대사나 교훈성 대사는 ‘약한 히로어’를 응원하는 메시지로 ‘적극’ 활용된다.
관객 입장에서 본다면 할리우드 슈퍼맨보다 일본의 ‘약한 히로어’에 빠질 것이다.
‘원피스’ 역시 마찬가지다.
파워를 보여주는 모험극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을 합쳐 이겨내는 약한 히로어들의 스토리다.
부모조차도 자식에게 말 걸기가 어려운 시대라지만 애니메이션을 통한 ‘부드러운’ 감동과 교훈이 전 세계에 울려퍼지는 식이다.
미야자키가 은퇴를 번복한 이유
미야자키는 올해 82살이다.
70세이던 2011년 당시 은퇴를 공식선언하면서 애니메이션 세계를 떠났다.
체력적 한계가 이유다. 필자는 은퇴 당시 미야자키의 생각을 120% 이해한다.
나이 앞에 장사는 없다.
대략 60세부터 시작되지만 시력은 물론 집중력·기억력이 하루가 다르게 퇴화한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23년, 미야자키는 ‘그대들’을 출시하면서 은퇴선언을 철회한다.
은퇴를 번복하는 정치가나 연예인이 넘치는 시대라 오해할지 모르겠다.
82세 미야자키의 은퇴선언 철회는 돈·명예와는 무관하다.
일본에는 칼을 든 ‘부시(武士)’에 맞서는 존재로, 펜의 ‘분시(文士)’라는 존재가 있다.
칼 하나에 목숨을 걸 듯이, 펜 하나에 인생을 거는 자세다.
일본 문학계 풍경이지만 ‘평생 작가’가 많은 이유도 ‘분시 문화’라는 배경하에서 이해할 수 있다.
82세 미야자키의 재출발은 분시로서 목숨을 건 여정일지 모르겠다.
재삼 강조하지만 어른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른이 나설 수 없는 시대가 21세기다.
애니메이션 ‘그대들’에는 어른의 생각과 목소리가 곳곳에 투영돼 있다.
인터넷이란 자유의 바다로 나아갈수록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해답에 한층 더 매달리게 된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