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임종 시 왕생보다 어렵고
내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임종 시 극락왕생하기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 그럴까? 사람이 일생 중에 지은 죄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죄는 그만 두고라도 어려서부터 고기 먹고 살생한 죄만도 정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므로 대자비심을 일으켜 극락왕생을 구해야 한다. 부처님을 뵙고 도를 얻거든 다시 그런 중생들을 제도 해탈시켜야 한다. 그럼 부처님의 자비의 힘에 의지해 그런 빚을 갚을 필요가 없게 된다. 만약 내생에 사람이 되기를 구하고 큰 도심(道心)이 없다면 설사 수행공부가 좋더라도 그대의 공덕은 한계가 있게 된다. 이는 범부의 인아심(人我心)으로 한 공덕이기 때문에 큰 공덕이 있을 수 없다. 하물며 그대는 무량겁 동안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지었는지 몰라 과거의 업장이 한 번 나타나면 삼악도를 벗어나기 어려워 다시 사람이 되고 싶어도 천만번이 어려운데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서방극락세계 왕생을 구함이 내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구함보다 쉽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 힘의 가피를 입기 때문에 전생의 악업이 쉽게 소멸되고 설사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는 못하더라도 부처님 힘의 가피에 의지하기에 업보를 갚지도 않게 된다.
하물며 거위도 왕생했는데
운남성의 장졸선의 차녀가 시집갈 때 사위 쪽 집안에서는 거위 두 마리를 전안례(奠雁禮)로 보냈다. 장졸선은 이 두 마리 거위를 화정산 운서사에 방생했는데 지금 3년이 되었다. 이 거위들은 스님들이 아침저녁마다 대웅전에 가 예불할 동안 대웅전 밖에서 목을 길게 빼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절의 유나가 거위들에게 ʻʻ왕생하기를 구해라. 세상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ʼʼ고 가르쳤다. 그런 다음 거위들을 위해 염불을 수십 번 했는데 거위들이 세 바퀴 돌더니 두 날개를 한 번 파닥거리고는 곧 죽었다. 장졸선은 이 일로 쌍백아왕생기를 지었다. 정말 기이한 일이다!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거위도 이러한데 우리 사람들이 도리어 거위만도 못하겠는가? (인광대사문초정화)
참으로 극락세계에 가는 길은 쉽건만 가는 사람이 없구나
참으로 극락세계에 가는 길은 쉽건마는 가는 사람이 없구나! 저 아미타불의 정토인 극락세계는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며, 아미타불의 원력을 의심 없이 믿기만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자연히 이끌려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될 터인데, 어찌하여 세상일을 뒤로 미루고 부지런히 성불의 공덕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영원히 한량없는 수명을 얻고 지극한 즐거움이 한이 없다.
누구든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그지없이 기뻐하여 아미타불을 다만 한 번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큰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알라. 바로 이것은 위없는 공덕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아난아, 누구든지 극락세계에 태어난 중생들은 모두 32상(相)을 갖추었고, 지혜가 충만하여 모든 법의 이치를 깊이 깨달아 묘법을 밝히고 신통이 자재하며, 눈과 코 등 6근(根)이 청정하고 밝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둔한 사람이라도, 법문을 듣고 깨닫는 음향인(音響忍)과 진리에 수순하는 유순인(柔順忍) 이 두 가지 인(忍)을 얻게 되고, 근기가 수승한 사람은 본래 생멸이 없는 실상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또한 저 극락세계의 보살들은 성불할 때까지 지옥, 아귀, 축생 등의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신통이 자재하며 과거를 사무쳐 아는 숙명통을 얻는다. 그러나 자신의 서원이, 오탁악세의 말세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이는, 마치 내가 일부러 사바세계에 태어나듯이 자재하게 다른 국토에도 태어난다. (무량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