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解와 파열 /
흔들리는 문에 기대어 생각한다.
비열을. 비열이 비열한 자들의 통행증*이라는 말을. 관성을. 저녁을. 평온이 평온한 자들의 영원성일 것이듯이.
호흡이 이어지는 날들의 주머니 속 지폐를.
달걀 프라이가 놓여 있는 식탁과.
티브이를 켜두고 외출한 사람들이 돌아갈 때의 양손. 늦게까지 열려 있는 베이커리의 위치와. 틀린 정산을 자책하며
마감을 미루고 있을 점원을.
녹슨 쇠의 냄새가 가시지 않는
희미한 잠들을.
*
쇠못 두 개가 바닥에 놓였었다.
박혔다 빠진 못이 두 개가 놓였었다.
길을 잘못 들어선 가난한 여행자처럼
어리석어 보이는 두 개의 굽은 못이
거기 자고 있었다.
표정과 조언의 습기가
관을 둘러싼 유령처럼 떠돌고
잡을 수 있는 손 없이 해명할 입 없이
그저 놓인 못이 인간처럼 누웠었다.
그 방이 빠지는 데에는
한나절도 걸리지
않았었다.
*
돌아오며 적는다. 결국 외출은 탈의가 불가능한 피곤을 겹쳐 입고 끝나는 것이라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기 위해 힘주며 끝내는 것이라고.
겹쳐서 적는다. 우리는 어째서 서로와 더불어 희귀해지지 못했는가. 회답을. 비열을. 비열의 또 다른 범주들을.
또다시 시작되는 겨울과
닥쳐오는 말일들을.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녹슨 쇠못의 손가락을.
*베이다오北島, 「회답」
계약 /
트렁크를 끌고서
켄트 씨가 걸어온다.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한 적은 없었다.
연락이 가끔 더뎠고
계좌에 잔액이 줄었다.
일을 구하는 것이 늦어지고 있었다.
유리문 밖에는 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다 돌길을 걸어
사라지고 있었다.
켄트 씨는 그런 춥고 느린 장면들이
함박눈이 내리는 길고 긴 오후의 인상처럼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었다.
천천히 낙하하는 눈을
좋아하는 켄트 씨는
자신의 트렁크 안에 비가 내린다고 했다.
열면 멈추지 않고 우는
신들의 얼굴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한 신들 역시
끌어안을 것을 모두 놓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했다.
주소를 쥐고 /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기다리면 되니까. 하차한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사람들이 지나간다. 마주할 일이 있다고 하면 겁을 먹기도 하면서. 더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견주면서. 거대한 밤과 통로.
폭죽을 터뜨리고 싶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지 상관이 없다는 게 어떤 선을 그어대도 괜찮다는 뜻인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 안내견과 그의 주인이 지나가고. 동행인의 옷깃을 쥔 노인이 천천히 지하도로 사라지고.
멀다.
나는 계속 기다린다. “왔구나”라는 말을 대신할 말을 찾으면서.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는지 건너편 플랫폼을 살피기도 하면서.
겨울을 여기서 맞는다면 커다란 커튼을 살 것이다. 창을 다 덮고도 바닥까지 늘어뜨려지는. 닦거나 감싸거나 누군가 잠시 숨겨줄 수도 있는.
왔구나.
왔구나.
손을 쥐었다 펼쳐본다. 한번 죽어본 사람처럼. 여기에도 새가 산다. 여기도 새가 살고. 밤이 되면 어둡다.
가방을 끌어안고 벽에 기대 조는 아이.
아이와 인사를 주고받고 싶다.
윤은성 시집 『주소를 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