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tip.daum.net/question/56010132새알림 1 통합검색 관심질문 전체 MY 질문하기 한국사 삼국시대 게시글 설정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에 관해서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를 장안성이라고 한다고 하던데 당나라의 장안성은 장안에 있으니까 장안성이 라고 하는것 이 이해가 되는데 왜 장안성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려주세요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와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과 장안성(평양)이 같은 곳 인지도 알려주세요? 고구려 장안성이 난공불락의 성인지도 알려주세요? 고구려 멸망당시의 장안성 안의 궁궐이 4개월이나 탔다고 하던데 그 궁궐의 규모를 알려주세요? 고구려 장안성의 크기를 좀 알려주세요? 고구려의 장안성과 당나라의 장안성 그리고 발해의 상경용천부 중에서 어느 성이 더 큰성인지 도알려주세요? 북한에 고구려의 여러 성들이 남아 있다고 하던데 혹씨 장안성도 혹시 남아 있나요 궁궐은 당시 불타 버렸으니 없겠지만 혹씨 남아 있는지 알려주세요? 2009.05.19수정됨 |조회 1907 starkgt| 피드백 주기 답변하기 답변2개 답변 골라보기 등록순 채택됨
홀기 은메달 장학생1게시글 설정 '장안(長安)'이란 말은 당나라 때의 수도 명칭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말 '서울'과 같은 '수도'란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장안성이 축성된 때는 당나라 대가 아닌 후한 때인 BC191년이라고 합니다. 고구려의 장안성이 축성된 때는 522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장안성은 당나라의 장안성보다 7백여년이나 늦게 축성이 된 것입니다. 장안이 당나라 수도였을 당시에 장안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당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했답니다.
고구려의 성이름을 '장안성'으로 불렀던 이유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만 수원화성의 북쪽문의 이름을 '장안문(長安門)'이라고 붙인 이유에 대해 '과거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한나라와 당나라의 서울이었던 '장안'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 의도'에서 그렇게 붙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평양성 이름은 '장안성'이라고 부른데는 특별한 의미없이 당시의 '서울도성'이란 뜻으로 그렇게 불렀거나 아니면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성인 장안성의 이름 딴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현재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성의 742년에 조사된 인구수는 196만명이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고구려 장안성은 106만명 정도라고 추정을 한다고 합니다. 두 성 모두 계획된 도시설계에 따라서 비슷한 축성기술로 축성된 성이라고 합니다. 2009.03.27 추천1 아하자 수한 0게시글 설정 장안성은 본성本城이고 평양성은 2개의 직할시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도읍을 옮기기 전에는 평양성이고 도읍을 이곳으로 옮기게 되면서 장안성이 되는 것이지요.
장안성은 한 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도읍으로 황도(皇都)나 왕도(王都)의 의미가 있고 평양성은 2개가 존재할 수 있는 반면 경(京)은 여러 개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수도는 평양성과 같고 서울은 황도(皇都)나 왕도(王都)와 같기 때문에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역사언어>로 설명해야 하는데 이것을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설명이 어렵습니다.
<서울의 의미>를 검색하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2009.05.19수정됨 추천0 답변하기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축성한 성이 평양시 대성구역에 았는 산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죠 그 당시에 그성을 장안성이라고 불렀다고 함 그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되였었고 내성안에 왕궁이 있었는데 안학궁이라고 불렸었죠 당나라 당시에도 수도를 장안성이라고 불렀었죠 당시에는 나라의 도읍을 이루는 성을 장안성으로 불렀다고 보입니다
@천하태평왜구들의 고대사 연구는 어쩌구! 한 놈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의 책을 내면 다른 놈이 출처를 대고 또 다른 놈이 그책을 출처로 방대한 거짓 역사를 수 십년 쓰고 있잖은가! 그런데도 사실에 입각한 메뚜기 출현에 대해 그런 말장난이 통하겠는기! 어리석은 자야! 그런 노력을 우리나라를 위해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 은걸 보니 답은 하나다. 바로 왜구와의 관계...
장안성이 중국에서 먼저 사용했다는 근거가 없지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중국성은 전돌을 재료로 성을 쌓아요. 고구려 백제성은 석재로 성을 쌓지요. 중국성은 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고구려성은 반드시 치를 둡니다. 자금성과 장안성이 중국이 쌓은 성이 아닌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석성은 난공불락이라 장안성이라 할만 하지요. 중국이 후대에 고구려의 장안을 모방해 따라 사용했는지 밝힐 문제입니다. 성의 형태와 치를 설치한 것으로 보아 자금성과 장안성은 고구려성이 확실합니다. 위 기사는 일반적인 내용을 나열했지 한이 쌓은 성임을 압증하지 못합니다. 중국의 석성은 부재합니다. 저걸 답이라고 웃겨요.
중국을 중국이라 하면 안 될거 같습니다.?? 중국이란 국가명은 신해혁명이후 중화 인민공화국이 설립된 후에 등장하는 국가명이고 그 전에 역사서에 나오는 중국이란 명칭은 국가명이 아니라 조선의 중앙지역 내지는 경기 지역을 이르는 명칭인데 ... 명 이나 청 아니면 중공, 그것도 아니면 중공전국(중공 전 대의 나라) ... 따지고 보면 명이나 청도 한족의 나라가 아니고 ...
@화치한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DNA 분포로 이미 밝혀졌지요. 요 이후 우리로부터 독립해 나갑니다. 동이 서이로 민족이 갈러진 것이지요. 서이의 역사를 통칭해 개인적으로 중국이라 부릅니다. 물론 유목민들의 힘의 균형에 따라 주인공이 바뀝니다. 정통성이 존재하지 않지요. 우리 민족역사 계보는 그 통일성과 정통성이 뚜렷합니다. 중국은 정통성이 없으니 허물어지기도 쉽겠지요. 21세기에 붕괴가 필연으로 봅니다
얼마나 전문적이고 론증 고증된 자료나 이론을 가지고 갑을론박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기록이나 유물이라고 해서 다 그 당시의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것이라고 맹신하면 좀 힘들죠 기록물도 어디에서 기록했는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을 중국에서 기록한것과 고구려에서 기록한것과 신라 백제에서 기록한것이 서로 다 다르다는것이죠 하나의 기록으로 그것이 역사의 진실이라고 완전히 맹신하는것은 또다른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힘들죠 역사는 기록대로 진행되여 온것도 있지만 완전히 딴 방향으로 기록된것들도 있습니다 승자에 의해 왜곡되고 강점자 침략자에 의해 왜곡되고
첫댓글 장안성과 자금성을 구분못하고
중국 장안성과 고구려 장안성을 구분못하니..
어휴 바보야..당나라는 한참후에 나오는 나라란다...평원왕때는 수나라가 등장하기도 전이란다..
당나라가 고구려보다 늦게 건국한 나라인데 고구려보다 빨리 건축했다는 말은 틀리고 당나라 이전에 축조됐는데 당이 그 성을 접수해서 썼다면 말이 됩니다.
진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왕은 크게 두려워 하여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나옵니다..
그이유는 진나라수도 낙양과 장안은 지척에 있기때문이 아니라면 크게 두려워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축성한 성이 평양시 대성구역에 았는 산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죠 그 당시에 그성을 장안성이라고 불렀다고 함
그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되였었고 내성안에 왕궁이 있었는데 안학궁이라고 불렸었죠
당나라 당시에도 수도를 장안성이라고 불렀었죠
당시에는 나라의 도읍을 이루는 성을 장안성으로 불렀다고 보입니다
열등감 찌든 애들한텐 진실을 눈앞에 보여줘도 소용없어요
대동강 평양을 이야기하시는 것보니..세종실록도 못보신 것으로 보입니다..스스로 좀더 찾아보십시요..
@천하태평 똥과 된장은 구별하며 사시기를....
○五年, 夏四月, 大旱. 秋八月, 蝗.
5년 여름 4월, 크게 가물었다.
가을 8월,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메뚜기떼는 중국대륙에만 나타 납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 모두 메뚜기떼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요..
조선왕조실록에서 메뚜기떼가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ㅎ ㅎ
그놈의 메뚜기 이야기
대체 몇십년째 써먹는거야...
@천하태평 반론을 하라고 미친 영감탱이야...조롱거리지 말고..
@하자하자 ㅋ ㅋ
@천하태평 왜구들의 고대사 연구는 어쩌구!
한 놈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의 책을
내면 다른 놈이 출처를 대고 또 다른
놈이 그책을 출처로 방대한 거짓 역사를
수 십년 쓰고 있잖은가! 그런데도 사실에
입각한 메뚜기 출현에 대해 그런 말장난이
통하겠는기! 어리석은 자야! 그런 노력을
우리나라를 위해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
은걸 보니 답은 하나다. 바로 왜구와의 관계...
장안성이 중국에서 먼저 사용했다는 근거가 없지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중국성은 전돌을 재료로 성을 쌓아요.
고구려 백제성은 석재로 성을 쌓지요.
중국성은 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고구려성은 반드시 치를
둡니다.
자금성과 장안성이 중국이 쌓은 성이 아닌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석성은 난공불락이라 장안성이라 할만 하지요.
중국이 후대에 고구려의 장안을 모방해 따라 사용했는지
밝힐 문제입니다.
성의 형태와 치를 설치한 것으로 보아 자금성과 장안성은
고구려성이 확실합니다.
위 기사는 일반적인 내용을 나열했지 한이 쌓은 성임을
압증하지 못합니다.
중국의 석성은 부재합니다.
저걸 답이라고 웃겨요.
중국을 중국이라 하면 안 될거 같습니다.??
중국이란 국가명은 신해혁명이후 중화 인민공화국이 설립된 후에 등장하는 국가명이고 그 전에 역사서에 나오는 중국이란 명칭은 국가명이 아니라 조선의 중앙지역 내지는 경기 지역을 이르는 명칭인데 ...
명 이나 청 아니면 중공, 그것도 아니면 중공전국(중공 전 대의 나라) ...
따지고 보면 명이나 청도 한족의 나라가 아니고 ...
@화치 한족이란 족명의 족속도 실재하는지 멸종되었는지 아리까리한 개념이고..
'일본은 없다' 가 아니라 '중국은 없다' 인데...
@화치 한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DNA 분포로 이미 밝혀졌지요.
요 이후 우리로부터 독립해 나갑니다.
동이 서이로 민족이 갈러진 것이지요.
서이의 역사를 통칭해 개인적으로 중국이라 부릅니다.
물론 유목민들의 힘의 균형에 따라 주인공이 바뀝니다.
정통성이 존재하지 않지요.
우리 민족역사 계보는 그 통일성과 정통성이 뚜렷합니다.
중국은 정통성이 없으니 허물어지기도 쉽겠지요.
21세기에 붕괴가 필연으로 봅니다
왜 상대를 하시나요? ?
얼마나 전문적이고 론증 고증된 자료나 이론을 가지고 갑을론박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기록이나 유물이라고 해서 다 그 당시의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것이라고 맹신하면 좀 힘들죠
기록물도 어디에서 기록했는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을 중국에서 기록한것과
고구려에서 기록한것과 신라 백제에서 기록한것이
서로 다 다르다는것이죠
하나의 기록으로 그것이 역사의 진실이라고 완전히 맹신하는것은 또다른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힘들죠
역사는 기록대로 진행되여 온것도 있지만 완전히 딴 방향으로 기록된것들도 있습니다
승자에 의해 왜곡되고 강점자 침략자에 의해 왜곡되고
기록자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