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805
■ 3부 일통 천하 (128)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5장 두 사나이 (3)
BC 284년(연소왕 28년, 진소양왕 23년, 제민왕 40년)이 되었다.
그동안에도 연소왕(燕昭王)은 한시도 지난날 제나라로부터 배신을 당해 멸망 직전까지 간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때마침 제민왕(齊湣王)이 천자인 체하며 교만할대로 교만해져 폭정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더욱이 맹상군마저 추방당했다고 했다.'지금이야말로 복수할 기회가 아닐까?'
연소왕(燕昭王)은 악의를 불러 물었다."제나라를 치고 싶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가(可)합니다. 하지만 제(齊)나라는 패업의 업적이 있는 나라이며,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
연(燕)나라 단독으로는 공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일 왕께서 기필코 제나라를 정벌하고자 하신다면
조ㆍ위ㆍ한ㆍ 진나라 등과 힘을 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연소왕(燕昭王)은 매우 기뻐했다.
"경의 말이 옳소!"별안간 연나라 도읍인 계성(薊城)은 분주해졌다.
사방 성문이 열리며 각국으로 향하는 사자들의 수레가 먼지를 일으켰다.
악의(樂毅)는 조(趙)나라로 가 조혜문왕을 알현했다.- 연합을 청합니다.조혜문왕은 쾌히 승낙했다.
조나라 한단에서 진(秦)나라 사신을 만났다.악의(樂毅)는 진나라 사신도 설득했다.
- 바라던 바입니다.극신(劇辛)은 위나라와 한나라로 들어가 연합을 청했다.
초(楚)나라는 워낙 남쪽에 치우쳐 있어 연합에서 제외시켰다.위소왕(魏昭王)과 한리왕(韓釐王)의
답은 똑같았다.- 연왕의 뜻에 따라 제(齊)나라를 정벌하겠소.
삽시간에 제나라를 상대로 연ㆍ조ㆍ한ㆍ 위ㆍ진 5개국 합종 동맹이 결성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군대를 일으키는 일뿐이었다.
- 상장군(上將軍).악의에게 내려진 직위였다.5개국 연합군 총사령관이 된 것이다.
조혜문왕(趙惠文王)은 여기에 조나라 재상직까지 더해주었다.그는 이제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어디로 갈 것인가?'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천하 제일의 병권 소유자가 되었다.
- 천하(天下)를 움직여보고 싶다.어릴 적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악의(樂毅)는 5개국 연합군을 거느리고 제나라를 향해 쳐들어갔다.당연히 제나라에서도 방어군이
출동했다."건방진 놈!"제민왕(齊湣王)은 친히 북채를 잡았다.대장에는 한섭(韓聶)이라는 장수를 임명했다.
5개국 연합군과 제군(齊軍)은 제수 서쪽 초원에서 격돌했다.
악의(樂毅)는 조무령왕으로부터 익힌 기마술을 발휘하며 맨 앞쪽에 서서 달렸다.
"나를 따르라."그동안 창설하여 조련한 기마대는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더욱이 연나라 산(産) 말은 튼튼하고 빨랐다.5백 기마대는 삽시간에 제(齊)나라의 병차대를 궤멸시켰다.
이에 힘을 얻은 다른 나라 군사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군 영채를 향해 돌진했다.
쓰러지는 것은 제나라 군사들뿐이었다.
제군 대장 한섭(韓聶)은 악의의 동생 악승(樂乘)의 칼에 맞아 병차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위를 5백 기마대가 덮치고 지나갔다.한섭은 시체를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채 죽어갔다.
금소리가 울렸다.제민왕(齊湣王)이 두드리는 퇴각의 신호였다."와아!"
5개국 연합군 진영에서 승리의 환성이 울려퍼졌다.
악의(樂毅)는 4개국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장군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제(齊)나라를 이겼소.
장군들께서는 이제 인근 성을 점령하여 적당히 챙길 것을 챙긴 후 각자 도읍으로 돌아가셔도 좋소."
조나라 장수 염파(廉頗)가 물었다."상장군께서는 어찌할 작정이십니까?"
악의(樂毅)가 결연히 대답했다."나는 제(齊)나라 임치성까지 진격할 작정이오."
806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06
■ 3부 일통 천하 (129)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5장 두 사나이 (4)
단 한 번의 싸움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참패당한 제민왕(齊湣王)은 체면이 영 말이 아니었다.
연(燕)나라가 연합의 주도국이었다는 것이 더욱 그를 분노케 했다.- 보복하리라!
그는 임치성으로 퇴각하자마자 신하들을 불러 명했다.
"속히 초(楚)나라로 가 구원군을 청해 오라. 대가로 회수(澮水) 이북 땅을 내주겠다고 하라."
다행히 연합군은 더 이상 진격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초나라 군대가 당도하는 대로 북진하여 연(燕)나라를 초토화시키리라 결심했다.
그럴 때 또 다른 급보가 날아들었다."연나라 장수 악의(樂毅)가 우리 나라 영토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제민왕(齊湣王)은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떴다."연(燕)나라가 감히.......!"
그러나 이번에는 그다지 놀라지도, 서둘지도 않았다.'연(燕)나라쯤이야,'
제민왕은 아직까지 이런 마음이었다.그런데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화(禍)를 불러일으켰다.
제민왕(齊湣王)이 임치성에 들어앉아 연나라 군대를 깔보고 있을 즈음, 악의(樂毅)는 제나라
영토 깊숙이 침입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임치성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燕)나라의 진군 속도는 의외로 빨랐다. 각 성을 지키고 있던 제나라 장수들은 태풍처럼
몰아쳐오는 연나라 군대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다투듯 항복해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 연군(燕軍)은 임치성 30리 밖에까지 이르렀다.
제민왕(齊湣王)은 비로소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이유(夷維) 등 측근 심복만을 거느린 채
성문을 빠져나가 위(衛)나라를 향해 달아났다.이때 위(衛)나라는 제나라 속국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공호(公號)도 쓰지 못하고 겨우 군호(君號)를 썼다.이 무렵 위나라 군주는 위회군이었다.
위회군(衛懷君)은 쫓겨온 제민왕을 맞아 신하의 예로써 영접했다. 궁까지 내주어
제민왕을 머물게 했다.그런데 제민왕의 태도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패하여 쫓겨온 처지임에도 위회군(衛懷君)과 그 신하들에게 여간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순행(巡行) 나온 천자처럼 행세하며 매일 조례(朝禮)를 강요했다. 이에 분노한 위회군과
신하들은 한밤중에 제나라 치중(輜重: 군수품)을 훔쳐다 모두 감춰버렸다.
이튿날 아침, 제민왕(齊湣王)은 조반상을 기다렸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아침밥상을 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복 신하들이 와서 아뢰었다."어찌된 일인지 요리 재료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위(衛)나라 신하들이 훔쳐간 모양입니다."제민왕(齊湣王)은 분노하여 소리쳤다.
"위회군을 당장 들라 해라."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위회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저녁 무렵이 되었다.그때까지도 제민왕(齊湣王)은 밥을 먹지 못했다.배가 몹시 고팠다.
그제야 겁이 더럭 났다.'이것들이 나를 잡아다 연(燕)나라에 바칠 작정인가?'
그 날 밤, 제민왕(齊湣王)은 어둠을 틈타 위나라 궁에서 달아났다. 그들 일행은 노(魯)나라를
바라보고 달렸다.그런데 노나라 임금이 이미 각 관문에 통지를 내린 뒤였다.
- 공연히 연(燕)나라의 미움을 살 필요 없다. 관문을 굳게 닫아걸고 결코 제나라 왕을 들여보내지 말라.
제민왕(齊湣王)은 노나라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는 추(鄒)나라로 갔다,마침 추나라는 임금이 죽어 국상 중이었다.
제민왕의 측근 신하인 이유(夷維)가 먼저 추나라 궁으로 들어가 말했다.
"천자께서 특별히 조문을 하려 하오. 추나라 세자는 마땅히 천자를 알현하는 예(禮)에 따라
계단 아래로 내려가 북쪽을 향해 곡(哭)을 하시오. 그러면 천자께서 계단 위에 올라
남쪽을 굽어보고 조상하실 것이오."추나라 신하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우리 추(鄒)나라는 조그만 나라요. 너무 황송해서 천자의 조문을 받을 수 없소.
그러니 다른 나라로 가시오."추나라에서도 거절당한 제민왕(齊湣王)은 갈 곳이 막막했다.
"이 넓은 천지에 이 한 몸 갈 곳이 없단 말인가!"이유(夷維)가 안을 내었다.
"거현(莒縣)은 남쪽에 치우쳐 있어 연나라의 침공을 받을 염려가 없습니다.
또한 초(楚)나라와 가까우니 그리로 가시어 후일을 도모하심이 좋을 듯싶습니다."거현은 춘추시대에는
거(莒)나라였으나 전국시대 초기에 멸망하여 제나라 영토로 편입되어 거현(莒縣)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결국 제민왕(齊湣王)은 거현으로 내려가 연나라에 대항할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다.
- 임치성 포위.그러나 그 포위는 나흘도 채 가지 않았다.
제민왕(齊湣王)이 도망가고 없는 마당에 임치성 군사들이 기를 쓰고 농성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齊)나라 군사와 백성들은 성문을 열고 나와 각자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대부분의 임치성 사람들은 동쪽 안평(安平)으로 피난을 갔다.안평은 지금의 산동성 치박시
동북편 일대다.악의(樂毅)는 텅 비다시피한 임치성 안으로 들어갔다.무혈입성(無血入城)이었다.
왕궁에는 많은 보물과 재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악의는 그것들을 모두 수레에 실어 연나라 도읍인 계성(薊城)으로 보냈다.
- 임치성을 점령했습니다.악의(樂毅)의 승전 보고에 이어 수십 대의 수레에 실려온 제(齊)나라
재화를 본 연소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내 친히 악의(樂毅) 장군의 공을 치하하리라."
그러고는 제수(濟水)가로 나가 악의를 불러냈다.
소와 돼지를 잡아 삼군(三軍)을 배불리 먹이는 한편, 악의에게 군호(君號)를 내렸다.
- 악의를 창국군(昌國君)에 봉하노라.창국은 제나라 읍으로 산동성 임박시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 땅을 악의에게 내리고, 그 곳 영주로 봉한 것이었다.이때부터 사람들은 악의(樂毅)를
창국군이라 불렀다.연소왕(燕昭王)은 다시 악의에게 명했다.
"과인은 제나라를 아예 평정하고자 하오. 아직 항복하지 않는 제(齊)나라 성읍을 마저 공격하시오."
악의(樂毅)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는 군례를 올리고 난 후 즉시 군대를 남쪽으로 돌렸다.
제(齊)나라에 대한 2차 침공이다.
80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