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제사가 있었다
원래는 평일이지만 애들 제사 지내고 늦게 갈 때 혹여 차 사고를 염려해
무조건 제사 날짜가 든 전 일요일을 택했다.
그리고 식구들이 장정 10여명이 넘어 집이 좁아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 혼을 모신 하남 마루공원인 봉안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내맘대로 정한 나이롱 제사다.
그런데 막상 제사인 제 날짜가 되니 난 남편이 마음에 걸린다.
봉안당에서 소란스럽기만 했는데 어쩌나...
그래서 작은 내 방에서 다시 있는 음식을 놓고 밤 늦게 또 향을 피웠다.
사진이나마 남편과 둘이 마주 앉으니 감회가 서린다.
마음이 담담하다. 지금 내 나이 80살. 징그럽게 많은 나이다.
세월이 이렇게 빠른가 생각하니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내가 남편을 만난 것은 풋풋한 나이 20살 때다.
그는 나를 보면 그윽히 바라보는 눈길로 입꼬리만 조금 올라갔다.
그래도 그의 미소로 나는 산이 웃고 구름이 웃고 들이 웃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호수가 된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 동심원으로 무뉘져 한없이 퍼졌다.
가난한 연인,
남편과 나는 서울 왕십리에서 살았기에 데이트 장소가 늘 뚝섬 한강이었다.
강 건너엔 지금의 잠실이었다. 강물엔 여기 저기 물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그 사이를 "찌거덕 찌거덕" 노를 젓는 나룻배가 스르르 지나가면
풀이 흔들려 그리는 곡선이 고왔다. 그리고 일렁이는 물결이 재미있는지
바라보는 두 청춘의 모습은 강과 함께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었다.
저녁이 되어 돌아갈 때는 식사를 위해 포장마차로 갔다.
포장마차는 미리 삶아서 재여 놓은 찬 국수를 뜨거운 장국에 토림하고
그 위에 아부라기(유부) 썬 것을 얹어 단무지 몇조각과 함께 주었다.
불어터진 국수지만 맛이 있었다. 가격은 200원이었다.
둘이 보냈던 하루는 신바람으로 에너지가 넘쳐나 마냥 즐거웠고 행복했다.
몇년 후 나는 두 아들을 두었고 세번째로 또 배가 남산만 했다.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난 큰 배를 두드르며 " 여보 딸 낳아드릴까요
아들 낳아드릴까요." 한다. 남편은 " 아들이 둘이니 딸이 좋겠지" 한다.
애기 가질 때마다 하는 질문이고 대답이다.
난 바로 " 걱정말아요. 틀림없이 딸 낳아드릴께요" 하고 큰소리를 쳤다.
이번엔 정말 아주 예쁜 여자 아기다. 피부가 배꽃같이 고왔다.
경이로운, 빛나는 나날들로 꿈결같이 보낸 나의 소중한 지난 세월이었다.
지금 나는 제사를 지낸다.
늦은 밤. 향 냄새가 가득한 방안은 어느 신전처럼 조용하고 엄숙하다.
촛불의 불꽃은 종묘의 제례 때 추는 팔일무처럼 붉게 일렁인다.
저를 울리며 열심히 절을 하고 제를 끝낸다.
제대로 날자를 찾아 제사를 지내니
남편에 대한 예의를 다한 것 같아 마음이 개운하다.
저승과 이승 사이지만 한번 맺은 인연은 이렇게 영원한가
남편의 혼을 만나 마음을 위로받은 나는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한다.
하늘을 본다.
너울 너울 하늘나라로 올라가던 남편의 혼이 나를 뒤돌아볼 것 같다.
오로라 같은 붉고 푸른 기운이 가득한 밤하늘에 선명하지 않지만
남편이 평소에 입었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고 또는 남편의 혼이 새가 되어
날아가는지 가늘고 긴 깃털이 흔들리는 것을 나는 지금 본다.
그리고 남편의 순한 눈길이 나에게 눈물 고여오는 세월이 오더라도
내가 있으니 믿고 잘 견뎌내라는 하나의 종교로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지금 난 마음눈으로 저 아득히 먼 곳의 그를 한없이 서서 본다.
감동적인필력에, 지그시눈이 감겨집니다.
많은생각과 감동을 주는 낭만님의글......!!
아직~살아있는 프로급 글솜씨 속에 한참~머물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