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괴수 용가리
최용현(수필가)
자전거를 타고 20리 길을 통학하던 중학교 시절, 읍내에 진입하면 극장 앞을 지나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영화에 관심이 많던 나는 늘 유화로 그려진 극장의 간판그림을 보면서 그 앞을 지나다녔다. 그때 본 간판그림 중에서 ‘007 골드핑거’의 온몸에 황금 칠을 한 여체와 ‘월하의 공동묘지’의 소복 입은 여자귀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2학년 어느 날, 공룡처럼 생긴 거대한 괴수(怪獸)가 입에서 불을 뿜는 그림이 극장 간판 위로 높다랗게 걸려있었다. 영화 제목이 ‘대괴수 용가리’였는데, 그 그림이 붙어있던 기간 내내 용가리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상영 마지막 날 하굣길에 극장에 들어갔다.
미남배우 오영일과 원조 트로이카 중 한 명인 남정임이 주연을 맡아 연인으로 나오고, 남정임의 남동생 역을 맡은 소년 이광호도 주연에 버금가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원로배우 이순재와 7080 통기타 가수 김세환의 아버지 김동원이 조연을 맡아 한창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판문점 부근에서 원인모를 지진과 폭발이 일어나더니 얼마 안 있어 서울 인왕산 부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고 땅이 갈라지면서 땅 속에 있던 전설의 괴수 용가리가 땅위로 올라온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용가리가 괴성을 지르며 활보하면서 중앙청과 서울시청, 국회의사당 등을 마구잡이로 때려 부수고 서울을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국군이 탱크와 미사일, 전투기 등을 동원하여 공격을 해보지만 용가리는 끄덕도 하지 않고 뿔에서 발사하는 레이저광선으로 지프차를 두 동강내고, 입에서 강렬한 화염을 내뿜어 탱크를 태워버린다. 이에 재해대책본부장(김동원 扮)은 서울시민들에게 속히 외곽으로 대피하라는 경보발령을 내리고, 서울시민들은 보따리를 사서 허겁지겁 피난을 떠난다.
이때 과학자인 일우(오영일 扮)는 용가리의 행태를 살펴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용가리를 향해 접근하고, 그의 애인(남정임 扮)과 그녀의 초등학교 5학년 동생 용이(이광호 扮)도 일우를 따라간다. 혼자서 계속 용가리를 미행하던 용이는 용가리가 어느 정유공장에서 불타는 기름을 흡입하는 것을 보고 용가리가 기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된다.
광호가 이 사실을 알려주자, 일우는 암모니아 화합물을 원료로 한 용가리 퇴치 가루약을 개발해낸다. 일우 일행이 헬기를 타고 한강인도교 부근에 있는 용가리에게 그 가루약을 대량으로 살포하자, 용가리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면서 마침내 상황이 종료된다.
‘대괴수 용가리’는 ‘맨발의 청춘’을 감독한 김기덕(1934~2017)이 ‘고지라’(1950)를 제작한 일본 특수촬영 팀의 도움을 받아 1967년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SF영화이다. 당시로서는 거액의 제작비를 투입했으며, 11만 3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서도 성공을 했을 뿐 아니라 해외에 수출까지 했다.
1933년에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킹콩’이 판타지 장르의 새 지평을 열자, 1950년대 일본에서 ‘고지라’라는 괴물 시리즈를 만들어 상당히 재미를 보았다. 이에 자극을 받은 김기덕 감독이 동양의 상서로운 동물인 용(龍)과 고려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쇠를 먹고 산다는 상상의 괴물 불가사리를 합친 우리 토종 괴수 용가리를 형상화하여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판문점이나 서울의 모습들, 즉 인왕산, 중앙청, 서울시청, 한강 인도교 등은 세트장을 짓거나 축소모형을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주요건물의 미니어처와 용가리의 형상이나 표정, 움직임 등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어 도저히 봐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또 용가리를 공격하기 위해 출동한 탱크들은 일본 탱크의 모형이고, 전투기들도 일본 자위대에서 쓰던 기종의 모형이라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 6.25가 끝난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김기덕 감독의 정부기관에 대한 따끔한 질책, 자조 섞인 비판의 시선과 함께 우리문화에 대한 따뜻한 애정도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재해대책본부에서 연일 용가리를 막을 대책을 숙의하고 회의를 하지만 군을 동원하는 것 외에는 별 신통한 방법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기관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따끔한 질책에 다름 아니다.
또, 피난을 가지 않고 우선 먹고 보자는 식의 식탐에 빠진 중년남자들, 마치 종말이라도 온 듯 유흥업소에서 춤을 추는 젊은이들, ‘예수를 믿어라’는 팻말을 들고 다니는 광신도의 모습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회 주류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자조 섞인 비판의 시선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보호하기 위해 헬기를 띄워 용가리를 다른 쪽으로 유인하는 장면, 쓰러져 잠든 용가리가 용이가 비춘 손전등 불빛에 눈을 뜨더니 아리랑의 음률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등은 우리 문화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여유가 느껴져서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도 있다. 용가리를 살펴보기 위해 정찰을 나가면서 일우의 애인과 비행사(이순재 扮)의 부인이 함께 헬기를 타고 가는 것은 불을 뿜고 레이저를 쏘는 용가리를 생각해볼 때 위험천만한 일이다. 마지막에 가루약을 뿌릴 때도 두 여성에다 용이까지 헬기에 태웠는데, 참으로 어이없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 EBS에서 방영하는 ‘대괴수 용가리’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중학생 시절 보던 때가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뜬금없이 나타나 뜬금없이 서울거리를 누비다가 뜬금없이 죽는 우리 토종 괴수 용가리,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1999년에 심형래에 의해 다시 ‘용가리’로 리메이크되면서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괴수로 정착하게 된 것 같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엄연히 우리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대괴수 용가리’는 전에 미국에 수출했던 영화 DVD를 역수입한 것으로, 영어 더빙에 우리말 자막을 넣은 외국(?) 영화라는 점이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