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 장림포구
장림포구는 계속된 도시화로 인해 공단 주변이 오염되었고, 장림피혁폐수처리장 약 1만5천km²가 2006년에 부산 최초의 악취관리구역으로 선정되었던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다.
그 후 장림포구 명소화 사업을 통하여 어항을 정비함과 동시에 해양보호구역 홍보관, 문화촌, 놀이촌, 맛술촌, 도시숲 등 관광객이용시설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조성된 장림포구 모습, 특히 수면에 떠있는 배와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섬과 닮았다하여 부산의 베네치아, '부네치아'로 불리며 SNS, 블로그상에서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부산 사하구 장림포구… 곳곳이 포토존…알록달록 이국적 정취 '부산의 베네치아'
영남일보 발행일 : 2022-03-25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선 긋고 벽 세우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구는 영 아리송하다.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가. 부산 사하에 들어 웅장한 낙동강과 아름다운 갈대들을 스치자 쓸데없는 생각이 집요해진다. 하구는 물류의 이동에도 좋고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낙동강 하굿둑과 연기 오르는 공단지역을 지나 을숙도 남단에서부터 넓고 넓게 펼쳐져 반짝이는 수면을 보고서야 결정을 한다. 이제 앞선 것은 바다, 뒤따르는 것은 강이라 하자. 장림교에서 바다로부터 돌아오는 선박들을 본다. 배들은 을숙도의 남단과 맹금머리등의 북단으로 물결을 보내며 머리를 치켜들고 당당하게 돌아온다.
김 생산지로 이름 날렸던 장림포구
산업화로 공장 들어서며 환경 오염
부산 첫 악취관리구역으로 지정
포구 되살리기 위해 재생사업 돌입
상하류 쪽에 나무 심어 숲 조성
천에는 수생식물 심고 습지 만들어
어구창고 색 입히고 안전시설도 보강
◆장림포구
장림교 아래에서부터 속도를 줄인 배들은 천천히 미끄러지듯 포구로 들어선다. 정박된 배들이 나뭇잎처럼 살랑거리고 마스크 속으로 바다 냄새가 파고든다. 포구는 내륙 쪽으로 직선으로 뻗어 있다. 직선의 끝에는 배수펌프장이 가로 서 있고 그 너머는 수풀이 우거진 장림천이다. 남동쪽으로는 아미산이 보인다. 그 산자락에서부터 산만큼 높은 아파트와 건물들과 집들이 차곡차곡 내려 서 있다.
포구의 양안은 대부분 공장이다. 몇 개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흐른다. 바이오 가스 발전 공장과 고래사, 새로미, 범포, 미도, 삼진, 영진 등 내노라하는 부산 어묵 업체들의 이름이 나열된 부산어묵전략식품사업단 건물이 눈에 띈다. 배들이 지나가고 평평해진 수면에 물새들이 노닌다. 하얀 새, 부리가 하얀 검은 새, 그리고 뺨이 붉은 새. 포구의 옹벽 사면에 동백꽃이 피었다. 장림포구다.
그리고 물가에 일렬로 늘어선 작은 집들이 사람을 홀린다. 정신이 까무룩해지는 장난감 가게처럼, 입 꼬리가 저절로 실룩대는 선물상자처럼. 물량장의 컨테이너 어구 창고들이 색색이다. 창고 위 뾰족 지붕의 집들도 색색이다. 뾰족 지붕 뒤로는 수목이 늘어선 산책로가 푸릇하다. 산책로 사이에서 풍차가 바람을 맞이하고 놀이터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시계탑이 지금을 알린다. 사람들은 이곳을 부네치아라 부른다. 부산의 베네치아라는 뜻이다. 부네치아는 베네치아의 부라노 섬을 닮았다고도 한다. 부라노 섬의 집들이 이곳처럼 파스텔 색이다. 그것은 겨울 안개가 짙은 날 바다로 나간 어부들이 집을 잘 찾아오라는 깃발과 같은 색들이다. 장림의 색은 그 의미가 다르다. 그것은 세신(洗身)이고 환탈(換奪)이고 재생이다.
◆산업시대 회색항, 부산지역 최초의 악취관리구역
장림(長林)은 숲이 우거지고 아미산 둘레에 길게 늘어선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원래 아미산 기슭까지 하천 유역이었고 마을 한쪽에는 갈대가 무성한 장림 늪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다대포진영이 장림포에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과 조선 수군의 4차 출정 기간 중 첫 번째 전투인 장림포 해전이 이곳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기록에 남아 있는 마을 입향조는 평강채씨 할머니다. 때는 1686년으로 병자호란도 다 끝난 이후다.
오랫동안 장림포구는 가덕도로 이어지는 연안 어장을 중심으로 어업 위주의 생활을 영위했고 내륙지역에서는 농업을 병행했던 평화롭고 한가로운 포구였다. 개항 후에는 김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바닷물과 강물이 합쳐지는 하구에서 생산된 '장림김'은 맛이 독특해 부산지방 김의 대명사이자 특산물로 각광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김 양식으로 많은 부를 쌓았고 그들이 물러난 이후에는 마을 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화시대를 맞아 장림항 인근에 공업단지가 조성되었다. 포구 상류의 장림천은 오염되었고 김 양식은 위기를 맞았다. 공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포구는 점점 회색빛이 되어 갔다. 1981년에는 포구 일대가 매립되었다. 인구가 늘어나고 집값과 땅값이 오르는 등 장림은 급격하게 도시화되었다. 피혁이나 도금 업체들이 들어오면서 악취와 분진 등 환경오염이 늘어났다. 1984년 집중강우 시 저지대 배수량 조절 목적으로 설치된 장림유수지는 산업단지에서 나오는 오폐수와 생활하수 등으로 인해 악취 및 해충 발생지로 변했다. 2006년 4월에는 신평, 장림 피혁 폐수처리장과 장림유수지 주변 1만5천㎡가 넘는 구역이 부산지역 최초의 악취관리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장림이라는 지명에 포구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장림천은 부산지역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인식되었고 장림포구는 '냄새 나는 곳'이라 불렸다.
◆'장림생림(長林生林)'을 통한 항구 재생
장림포구에 악취는 나지 않는다. 물길에는 새들이 노닌다. '창고에 색칠하고 명소가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장림포구를 되살리기 위한 시작은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먼저 장림항에서 장림유수지 간 1.5㎞ 수로 양옆의 도로와 옹벽 등을 정비해 유휴공간을 확보하고 장림천 상류 쪽에 메타세쿼이아 224그루, 하류인 장림항 쪽에는 팽나무 425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라일락과 치자 등 향기 나는 관목류 등 10여 종 3만640여 그루의 나무를 식재해 숲을 만들었고 천에는 수생식물을 심고 습지를 조성했다. 숲은 바람길이 되어 악취를 날려 주었고 습지는 천을 정화해 새들을 불렀다. 이것이 2009년에 있었던 '장림생림(長林生林)' 프로젝트다.
포구에 색을 입히고 테마 거리를 조성한 것은 2012년 '장림포구 명소화 사업'을 통해서였다. 낡은 포구를 재정비하고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장림어촌계 어업인들이 사용하는 1층 어구창고 외관을 알록달록하게 색칠했다. 뾰족지붕의 집들은 '맛술촌'이다. 청년창업자와 어묵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탄생한 '맛술촌'에서는 부산의 대표 어묵을 맛볼 수 있고 악기체험, 청소년 직업체험, 드론 체험, 비즈공예, 전통민화 등 다양한 교육과 체험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맛술촌 뒤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장림생림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도시 숲의 일부다. 회화나무, 은행나무, 왕벚나무, 금사철, 홍가시, 꽃댕강, 애란 등이 자라고 있다. 시계탑 옆에는 해양보호구역 홍보관과 장림포구 어촌계가 자리하고 그 옆으로 어구창고와 횟집·식당이 있다. 식당에서 '직접 잡은'을 강조하는 게장 백반을 싹싹 비우고 따수운 선창을 걸어 포구 입구의 '부네치아 선셋 전망대'로 간다. 가장 근래에 지어진 건물이다. 1층 수산식품 판매장에서 어묵을 종류대로 사고, 2층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들고 옥상 전망대에 오른다. 먼 데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과 함께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뒤돌면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띄엄띄엄 바다로부터 선박들이 돌아오고, 띄엄띄엄 맛술촌에 불이 켜진다. 장림포구에는 현재 170여 명의 어민들이 어로와 김 양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장림포구 위치도
장림포구 안내도
장림포구 부네치아 선셋 전망대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