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십년이란 세월이 상당히 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십년을 긴 세월이란 의미로 쓰여진 단어나 문장이 많이 생겨난 것 같다.
오랫동안 공부했다는 뜻의 ‘십년공부(十年工夫)’, 장기 구상이란 뜻의 ‘십년지계(十年之計)’, 흉년만 지던 논에 어쩌다 풍년이 진다는 ‘십년일득(十年一得)’, 오래 사귄 벗을 말하는 ‘십년지기(十年知己)’, 무척 놀라움을 표현하는 ‘십년감수(十年減壽)’,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매진했다는 뜻의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 십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십년이면 한 시대 옛날이란 의미의 ‘십년일석(十年一昔)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紀十年 江山變, Ten years can bring a lot of changes)’는 유명한 속담이 오랫동안 널리 쓰여지고 있다. 회갑까지 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10년이면 뽕밭이 푸른 바다로 바뀐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일어났으며, 이런 변혁을 60 평생에 여섯 번 경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같이 90세까지 산다면 이런 상전벽해의 변화를 아홉 번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대와 같이 개발과 발전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십년이 아닌 더 짧은 기간 안에 강산이 변하고 있다. 바다를 매립하고 하천을 변경하고 도로를 건설하고 새 도시를 건립하는 데 십년이면 족하다. 그런데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변화보다 훨씬 빨리 바뀌는 것은 사회적 변동이다. 체제와 제도, 문화와 문명, 사상과 의식 등은 십 년이 아니라 일 년이 다르게 바뀌고 있다.
나는 대학교 교수 출신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한국 말을 점점 못 알아듣는 상황이 심해지고 있다. 신문과 TV 및 라디오의 기사․보도․광고, 저서와 논문 및 보고서의 내용, 강연 및 행사의 발언, 가로의 간판, 젊은이들과의 대화 등을 보고 듣고 하면서 못 알아듣거나 이해 못하는 단어나 문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확연히 느끼고 있다.
현 시점에서의 나의 이해력은 전체 대상의 약 80% 정도가 아닌가 한다. 아마 머지않아 50%, 즉 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오래 공들인 일이 허사가 된다는 의미의 속담에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 된다’는 말이 있는데, 평생 공부하고 연구했다는 지식인이 남의 이야기를 반 밖에 이해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100세가 되고 천수(天壽)가 된다면 아마 사람의 말과 글을 거의 모두 그 뜻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백세까지 아니 천수인 125세까지 살게 해달라고 신불(神佛)께 간곡히 빌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줄 것 같아 그 축원을 거두어야 할 것 같다. 나 같은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나 이외에는 단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와 같은 빠른 변화를 다시 표현한다면, ‘1년이면 사회가 바뀌고 5년이면 강산도 변하며 10년이면 상전도 벽해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위시한 모든 동물과 식물은 주변의 변화에 적응해 가며 살아야 한다. 특히 사람은 새로운 시대와 장소에 잘 순응해야만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입향순속(入鄕循俗)’이란 사자성어는, 어떤 다른 곳에 가면 그 곳의 풍속을 따르라는 말이다. 또한 군자도 시속(時俗)을 따라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하는 격언들이 있다. 따라서 나처럼 가만히 앉아서 시대에 떨어진 낙후자(落後者)가 되지 말고 새로운 변화에 적극 순응하면서 시공간(視空間)에 동행해 가는 현대인이 되어 주기 바란다.
여기 조선조 중종(中宗) 때의 송순(宋純, 1493~1583)이 1533년인 중종 28년에 지어 ≪면앙정잡가(俛仰亭雜歌)≫에 실린 시조(時調) 한 수를 소개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여내니 나 한 간 청풍(淸風) 한 간 달 한 간에 맛져두고 강산(江山)은 들일 되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