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념처경」(D22) 등의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수행 방법의 핵심도 나라는 존재를 몸身 ∙ 느낌受 ∙
마음心 ∙ 법法으로 해체해서 그중 하나에 집중samathā하거나 그중 하나에 대하여 무상 ∙ 고 ∙ 무아
를 통찰 하는 것이다 . 위빳사나의 문자적인 뜻도 ‘해체하기 vi- 보기 passanā'이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불교적 수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존재와 세상과 진리와 생사문제를 이
처럼 온 ∙ 처 ∙ 계 ∙ 근∙ 제 ∙ 연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 뭉쳐두면 속고 해
체하면 깨닫는다.
세계를 공空으로 보며는 것이 반야중관 般若中觀의 직관적인 시각이고 세계를 깨달음의 입장에서
아름답게 꽃으로 장엄하여 보려는 것이 화염 華嚴의 종합적인 시각일 것이다. 이에 반해 초기불교
는 세계를 법法으로 해체해서 봄으로써 깨달음을 실현하려는 해체적인 시각이다.
설혹 해체해서 보지 않고 직관만으로 나와 세상을 공空이라고 보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는 결국 해체를 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아비담마나 아비달마, 유식처럼 분석을 강조하든,
반야중관처럼 직관을 강조하든, 화엄처럼 종합을 강조하든, 그것은 불교적 방법론인 해체에 토대를
두어야 할 것이다. 해체의 토대를 튼튼히 한 뒤에 직관과 종합을 해도 늦지 않다. 직관이나 통합만을
강조해온 한국불교에는 초기불교의 해체적 시각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초기불교의 특징은 해체해서 보기이다.
무엇을 해체하는가?
개념을 법들로 해체한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해탈 ∙ 열반을 실현할 수 없다.
뭉쳐 두고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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