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으리라, 그러나(막스 루돌프 램버그)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은 이유
우리의 삶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의미가 생긴다. / 셔터스톡
영원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죽은 뒤에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영원은 있다.
그리고 이때가 내가 영원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간,
살아있을 때 내가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나는 결코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부싯돌을 만들어 최초로 불을 켠 사람,
최초로 옷감을 짜거나 씨를 심은 여자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이름이나 내가 한 행위가
기억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기억된다 해도
영원히 기억되진 않으리라.
그러나 내가 한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
파괴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으리라.
그 점에서
그것은 영원한 것이 되리라.
책이나 어떤 발견,
어떤 말, 심지어는
스쳐 지나가는 말이라도..
또한 관대한 행위 한 가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 영원한 것이 되리라
이 시는 얼핏보면 허망해보입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으리라가 제목이니까요. 이는 삶의 의욕을 꺾는 말입니다. 물론 극히 예외인 누군가들은 이 말에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보통 사람인 우리는,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단어 앞에 서면 수그러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원 앞에서 우리는 하나의 점도 못 되니까요.
그런데 영원과 무의미 앞에 허물어지려던 우리는 '그러나'라는 반격 앞에서 문득 정신이 듭니다. 이 반격은 무엇을 말할까요?
시인은 말합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나는 결코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고. 왜냐하면 내가 한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 세상의 한 부분이 되니까요.
세상의 한 부분이 되면 그건 파괴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 부분이 되면 파괴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지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니까요. 그것이 비록 한 마디 말이더라도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면 그 사람을 또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테지요.
사람들은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6명만 거치면 모르는 이가 없다고들 할까요. 나는 나의 가족에게 영향을 주고, 나의 가족은 내게 영향을 줍니다. 나 그리고 나의 가족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줍니다. 친구나 상사, 부하, 동료, 그리고 제자에게 영향을 줍니다.
내가 해온 일이나 책, 어떤 발견, 그 모든 것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의미는 여기서 생겨납니다. 나와 가까운 이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말 한마디에서. 그러므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혹은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이라는 면에서요.
흔하고 흔한 말이 우리를 영원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정말로 그러합니다.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