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3. 큐티
마태복음 14:13 ~ 21
오병이어
관찰 :
1) 빈들로 가신 예수님
- 13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셔서 따로 빈들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마음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긍휼과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 이후의 보다 더 급진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시는 사역을 준비하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따로 빈 들로 가신 것입니다.
- 1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 주님을 따르는 무리가 주님이 계시는 빈들로 따라 나왔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자신을 따르는 큰 무리를 보셨습니다. 그 무리들의 숫자는 남자만 5000명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무리 전체는 대략 25000~30000가량의 대단히 많은 무리였습니다. 이 정도 숫자를 보시고도 놀라시지 않으시고, 이들을 불쌍히 대하시면서 태연히 그 중에 있는 병인들을 고쳐 주시는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 15절.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나오면서 준비한 약간의 식량은 떨어지고 어둑해지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나아와 예수님께 대책을 강구하고자 했습니다. 즉, 이들을 마을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사먹게 하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 줄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전대에 있는 돈으로 이들을 먹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고, 무리들에게 먹을 것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형편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솔루션을 제시한 것입니다.
2)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 1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 주님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듯이 보입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제자들이 수만 명의 무리들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 17절.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 주님의 이러한 요구에 안드레가 한 아이의 도시락을 가져왔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반찬으로 먹는 짠지 같은 소금에 절인 멸치 같은 것)와 보리떡 다섯 개(넙적하고 큰 덩어리가 아니라 아이가 한 끼에 먹을 만한 작은 덩이 다섯 개)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손을 놓고 있었지만 안드레는 그나마 이것이라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수만 명의 배고픔을 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고, 나머지는 주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 18절.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 19절.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 주님은 그것을 가져오게 하시고, 무리를 빈들의 풀들 위에 먹을 준비를 하고 기대게 하시고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프닝입니다. 수만 명이 배를 곪고 있는데 고작 오병이어를 가지고 무리로 하여금 식사자세를 취하게 하시고 기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하늘의 기적이 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 주님이 나눠주신 물고기와 떡을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제자들로부터 받은 물고기와 떡을 무리들은 또 다른 무리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나눠주고 또 나눠주는데, 오병이어는 계속해서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나눠주었고, 수만 명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 20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 주님의 기적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먹는 것이 미안해서 자기들의 먹을 것을 한 사람 두 사람 내놓음으로 먹을 것이 풍성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리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의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가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만 명이 먹은 것은 빼고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를 차게 남겨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제자들이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것으로 제자들이 주는 형태로 일하는 것을 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 수만 명의 무리가 먹고 남았습니다.
- 21절.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아마도 그 들판에 100만 명이 있었다하더라도, 천만 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수십, 수백억의 인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먹고 더 많이 남는 역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저 수만 명이 있었기에 그 정도로 끝났을 뿐입니다.
가르침 :
1) 주님은 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에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비밀을 좀 더 열어주시는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즉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들을 먹이시고 살리실 수 있으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이고, 이 때 오병이어의 떡과 물고기를 먹은 이들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향후에 성령님이 오셔서 예루살렘에 있었던 부흥,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번졌던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을 시기에, 이 때 들판에서 떡과 물고기를 먹은 이들로 인해서 이 부흥이 불길같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분으로 생각해서 왕으로 삼고자 하는 우매한 행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을 체험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예수가 누구이신가를 분명히 아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2)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복음은 그렇게 제자들에게, 제자의 제자들에게, 무리에게, 무리가 무리에게 넘겨지고 전달되는데, 그것이 모두가 풍성하게 누려도 남고 또 남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말씀의 능력은 제자에서 제자로, 무리에서 무리로 넘어가면서도 그 은혜가 줄어들지 않고 더욱 놀랍게 역사되어지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생각해보면 주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이런 역사가 이어지게 될 것을 아시고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달하고 나누고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서 또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전달되고, 나누어지고, 먹고, 마시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줄 것을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것으로 보여주실 것을 이렇게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적용 :
1) 무리들은 최소한 자신들이 굶주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뾰족하게 없었습니다. 여비가 있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무리들을 나 몰라라 하면서 자기만 배를 불리는 것이 미안하고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주변의 동네에 친척이나 아는 이가 있다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함께 가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큰 민폐인지를 알았기에 함부로 그렇게 요구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주님이 무리를 지어서 앉으라 하고 주님이 오병이어를 축사하실 때 인내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는 상황에서 무리가 흩어져 삼삼오오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명하시는 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하심으로 그 많은 무리들이 고작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배부르게 되는 인류 역사 초유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솔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잔머리가 아니라 순종함이 주님의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주님과 더불어 행할 때, 그 수많은 무리들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임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주님의 복음 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내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의 빛,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 외에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보고, 주님께 순종하면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언제나 문제는 불신과 불순종입니다. 주님이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주님이 하셨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명령의 크기와 능력에 대해 믿고 따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크기와 능력을 믿고 순종하며 따름이 중요합니다.
3) 지금 제 컨디션으로는 땅 끝은 커녕 제 앞가림하기도 어려운 마음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회복하게 하시고 저를 통해서 오병이어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기대합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