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807
■ 3부 일통 천하 (130)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5장 두 사나이 (5)
임치성 서북쪽으로 획(畫)이라는 읍이 있다. 그 획읍(畫邑)에 한 현인이 살고 있었다.
왕촉(王蠋)이라는 사람이었다.그는 태부 벼슬을 하다가 제민왕의 폭정에 실망하고
고향인 획읍(畫邑)으로 낙향해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학식이 높고 어짊이 깊어 그 명성이 인근 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연(燕)나라 군대가 획읍 근처까지 남하했을 때였다.왕촉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는 악의(樂毅)가
군사들에게 명했다.- 획읍(畫邑)을 포위하되, 결코 30리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
왕촉(王蠋)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악의(樂毅)는 부하 장수를 보내 왕촉을 회유했다.
"듣기로 제나라 사람들은 선생을 몹시 공경한다고 합니다. 저는 선생을 연소왕에게 천거하여
만호(萬戶)의 영주로 삼아 함께 제나라를 다스리고자 합니다. 부디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왕촉(王蠋)은 사양했다."나는 늙고 병들어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소."
심부름 간 연나라 장수가 눈을 부라리며 위협했다."만일 선생이 응하지 않으시면
우리 연(燕)나라 군대는 이 획읍을 닭 한마리 남기지 않고 도륙내겠습니다."
왕촉(王蠋)은 갈등하다가 대답했다."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바꿔
섬기지 않소. 나는 여러 차례 제왕(齊王)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더 이상
보존하기 힘든 지금, 내가 무력에 굴복하여 연나라 신하가 된다는 것은 걸왕(桀王)을 도와
포악을 일삼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오."
"살아서 의로운 일을 못할 바에는 차라리 가마솥에 삶아져 죽는 것이 낫소."
그러고는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힘껏 죄어 스스로 죽었다.
악의(樂毅)는 왕촉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길게 탄식했다."내가 공연히 아까운 사람을 죽였구나."
그는 친히 왕촉을 장사지내주고 무덤 앞에 비(碑)를 세워주었다.제나라 충신 왕촉(王蠋)의 묘.
이때부터 악의(樂毅)는 5년여 간을 임치성 일대에 주둔하면서 제(齊)나라 성읍 70여 개를
모조리 함락하여 연(燕)나라 군현으로 귀속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된다.
"아직 하늘이 나를 부르지 않고 있다."
임치성에서 도망쳐나와 안평 땅에 피난살이를 하고 있던 전단(田單)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제나라 군대가 무력하게 패하는 것을 생생히 목격했다.
제민왕(齊湣王)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고, 군사들도 백성들을 팽개쳐두고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대실망이었다.안평 땅으로 피난나온 지 벌써 1년.들리는 소문으로는 악의(樂毅)가
제2차로 침공해와 제나라 성읍을 하나씩 점령해나가며 연(燕)나라 군현으로 귀속시키는 중이라고 했다.
조만간 안평 땅에도 연나라 군대가 몰아칠 것이 분명했다.전단(田單)은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명했다.
- 모든 수레바퀴의 굴대 끝을 쇠로 단단히 입혀라!집안 식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어째서 수레바퀴의 굴대에 쇠를 입히는 것입니까?- 이제 곧 알 것이다. 튼튼하게 테를 씌우도록.
이를 본 이웃 사람들이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전단(田單)은 어리석은 자다.
수레바퀴 굴대를 쇠로 입히면 수레가 무거워 어찌 빨리 달릴 수 있겠는가. 전단은 잡혀서
포로가 될 게 분명하다."아직 하늘이 나를 부르지 않고 있다."
라고 중얼거린 것은 바로 이러한 비웃음을 들은 직후였다.
자신의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마침내 연(燕)나라 군대가 안평을 향해 진격해온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안평에 피난나와 있던 백성들은 다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즉묵(卽墨) 땅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즉묵은 내(萊) 땅 깊숙이 있는 곳으로 지금의 산동성 평도현 동남쪽 일대다.
전단(田單)도 그 피난 대열에 끼었다.백성들은 다투듯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달렸다.
그런데 즉묵까지 가는 길은 몹시 험했다.온통 자갈밭이었다.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들이 그 험한 길을 오래 달릴 수는 없었다.
반도 채 가지 못해 수레바퀴 굴대가 부숴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추격해오는 연(燕)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혔다.
그러나 전단(田單) 집안 사람들만은 수레바퀴 굴대를 쇠로 입혔기 때문에 온전하게 즉묵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그제야 다른 사람들은 전단(田單)이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사람임을 알고
공경하기 시작했다.
808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08
■ 3부 일통 천하 (131)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5장 두 사나이 (6)
임치성을 비롯한 70여 개 성읍을 점령한 지 1년이 지났다.악의(樂毅)는 앙연히 외쳤다.
- 이제 두 곳만 남았다.제나라 동쪽 끝인 즉묵(卽墨) 땅과 남쪽 끝인 거현(莒縣).
이 두 성읍만 점령하면 제나라는 완전히 평정되는 것이다.악의(樂毅)는 느긋했다.
그는 군대를 둘로 나누어 일대(一隊)는 즉묵으로 보내고, 다른 일대는 거현으로 내려보냈다.
거현에는 제민왕(齊湣王)이 머물러 있었다. 악의(樂毅)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거현을 공략하리라
마음먹었다.임치를 떠나 거현(莒縣)으로 향하는 도중 급보가 날아들었다.
- 초경양왕(楚頃襄王)이 제나라를 돕기 위해 요치(淖齒)를 대장으로 삼아 20만 대군을 보내왔습니다.
초군은 지금 거현에 머물며 북진을 꾀하고 있습니다."악의(樂毅)는 긴장했다.
애초 초(楚)나라를 동맹에 가입시키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그는 진군 속도를 늦추고 언제 있을지 모를 초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 살았다.
제민왕(齊湣王)은 초군 대장 요치(淖齒)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달려오자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그자리에서 회수(澮水) 이북 땅을 내주고 요치를 제나라 재상에 임명했다.
그런데 이 요치라는 자가 제민왕에게는 오히려 불운이었다.
요치(淖齒)가 거현에 당도하여 사세를 살피니 제(齊)나라는 거의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제민왕이 거느린 군사도 군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요치(淖齒)의 생각이 달라졌다.'지금 연(燕)나라는 파죽지세다. 공연히 그들과 맞서 싸우느니
연군과 연합하여 아예 제(齊)나라를 멸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어느 날 밤이었다.요치(淖齒)는 심복 부하를 불러 비밀리에 지시했다.
"연나라 장군 악의(樂毅)에게로 가서 내 말을 전하라. 우리 초(楚)나라가 제왕을 죽일 터이니
제나라 영토를 반씩 나누어 가집시다, 라고 말이다."
요치의 밀사는 몰래 거성(莒城)을 빠져나와 악의의 진중으로 달려갔다.
은근히 초군의 북진을 걱정하던 악의(樂毅)는 요치의 뜻밖의 제안을 받고 매우 기뻐했다.
"좋은 말씀이오. 요치(淖齒) 장군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는 불멸의 공적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오."
악의(樂毅)는 요치를 잔뜩 부추기고 나서 초(楚)나라와 비밀 동맹을 맺었다.
요치는 신바람이 났다.거현에서 멀지 않은 고리(鼓里)라는 땅에 군대를 집결시켜놓고 제민왕에게 청했다.
"임치성으로 진격하고자 합니다. 사열(査閱)하십시오."
제민왕은 멋도 모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리 땅으로 나갔다.그것이 요치(淖齒)가 노리던 바였다.
제민왕(齊湣王)이 수레에서 내리는 순간 초나라 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에워싸고 포박을 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이 결박을 풀지 못할까?"
그때 요치(淖齒)가 저편에서 나타나 제민왕을 굽어보며 크게 꾸짖었다.
"제왕(齊王)은 들어라. 천지신명은 제나라가 망해야 할 세 가지 징조를 이미 보여주었다.
하늘에서 피비가 내린 것이 그 첫 번째 징조이며, 땅이 갈라져 물이 솟아난 것이 그 두 번째 징조이다."
"또한 관문에서 곡성(哭聲)이 일어났으니 이것이 세 번째 징조이다.
이처럼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제(齊)나라를 버렸는데, 그대가 어찌 더 이상 살기를 바라는가.
나는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대신하여 그대의 목을 거두어 들이겠노라!"
제민왕(齊湣王)이 겁에 질려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수행 신하인 이유(夷維)가
요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이놈 요치야! 네가 우리를 구원하러 와놓고 이렇게 배신해도 되는 것이냐?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그러나 요치(淖齒)는 대답 대신 좌우 군사들을 향해 목을 베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이유(夷維)의 목을 쳤다.피가 하늘에 뿌려졌다.
이를 본 제민왕(齊湣王)은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제왕을 장대에 매달아 군중(軍中) 한복판에 세워두어라."
제민왕(齊湣王)은 높은 장대에 매달린 채 물 한 모금 얻어마시지 못하다가 사흘 만에 늘어져 죽었다.
재위 41년.폭정에 죽음마저 처참하다 하여 '민(湣)'이라는 시호가 붙었다.
민은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제민왕의 죽음을 확인한 요치(淖齒)는 그 후 거성으로 돌아가 세자 법장(法章)마저 잡아죽이려 했다.
그러나 법장은 태사인 교(敫)의 도움을 받아 재빨리 백성의 옷으로 갈아입고 교(敫)의 고향인
무귀(無歸) 땅으로 달아나 숨었다.요치(淖齒)는 굳이 법장을 찾아낼 마음이 없었음인지
제민왕이 머물던 궁으로 들어가 자신이 그 곳 주인 행세를 하였다.
악의에게 사람을 보내 제민왕의 죽음을 통보했음은 물론이다.세자 법장(法章)을 모시고 도망쳐온
태사 교(敫)는 철저히 법장의 신분을 숨겼다. 언제 초군이나 연군이 들이닥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바꿔주었다.
- 왕립(王立).
또한 태사 교(敫)는 법장을 임치성에서 피난온 사람으로 가장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일꾼으로 삼아 농사 일을 시켰다.집안 사람들에게조차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인근 마을 사람은 물론 그의 집안 식구마저 그가 세자 법장(法章)인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임치에서 피난온 왕립(王立)인 줄로만 알았다.
태사 교(敫)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하루는 그녀가 밭에 나갔다가 땅을 파고 있는 세자 법장(法章)을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반짝였다.'참 잘도 생겼구나. 저렇듯 귀하게 생긴 사람이 일꾼 노릇을 하다니 아깝도다.'
그 날 이후로 태사 교(敫)의 딸은 세자 법장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때때로 몸종을 시켜 옷과 맛있는 음식을 갖다주기도 했다.
세자 법장(法章)도 그녀의 눈빛을 읽었다. 어느덧 두 젊은 남녀는 서로에게 정을 느꼈다.
달이 밝은 어느 날 밤, 세자 법장과 태사 교(敫)의 딸은 수수밭에서 몰래 만났다.
법장(法章)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마침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태사 교(敫)의 딸은 너무 놀랐으나, 이미 그를 연모하는 마음이 너무 컸다.
그 날 밤, 두 남녀는 서로 정을 통하고 평생 헤어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세자 법장(法章)은 5년간 그 곳에서 살았으나, 아무도 두 남녀의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809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