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직장인도 “의대 갈 기회”… 증원소식에 학원주말반 등록
증원시기-규모 확정되지 않았지만
2030직장인-대학생들 재도전 준비
입시학원들 “연말에 의대반 신설”
“정부, 증원발표 먼저해 혼란” 지적
“절호의 기회인 것 같아 일단 재수학원부터 등록했어요. 지금부터 준비해 늦어도 2026학년도에는 의대에 진학하는 게 목표입니다.”
명문대 자연계열을 졸업하고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송모 씨(26)는 “최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소식을 접하고 노량진의 한 재수학원 주말반에 등록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의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며 “목표를 위해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에 ‘열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 ‘반수’ 도전하는 이공계 대학생 늘어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방침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시기와 규모 등은 확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대학생뿐 아니라 2030 직장인 사이에서도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부터 입시 전반에 걸쳐 의대 진학 열풍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이공계 상위권 대학생 중에는 ‘반수’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입시 때 의대를 지망했지만 탈락하고 자연계열에 진학했다는 이화여대 2학년 재학생 A 씨(22)는 의대 정원 확대 소식을 접하고 교양과목 3개를 수강 취소했다. A 씨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 수업을 모두 비대면으로 바꾸고 인터넷 입시강의 업체 2곳의 수강권을 끊었다”며 “성형외과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겠다는 꿈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KAIST 이공계열에 다니는 3학년 B 씨(22)도 최근 반수 결심을 하고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B 씨는 “원래 연구직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의대 정원 확대 소식을 듣고 소아과 의사가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며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집 인근 독서실에서 열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는 중앙대 공대 1학년 김모 씨(20)는 수의대 반수를 고민하다 의대로 목표를 바꿨다. 김 씨는 “의대 정원이 1000명 이상 늘어날 거란 보도를 보고 상대적으로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아 의대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며 “내년부터는 주말 학원도 다니면서 복무 기간을 마치기 전 의대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입시업계 “의대 준비반 늘 것”
전문가들은 내년에 구체적인 정원 확대 규모 등이 발표될 경우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늦깎이 학생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 입시학원은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반수생 및 직장인 유입에 대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재수학원도 연말에 ‘반수생 전용반’을 신설한다는 방침을 최근 확정했다.
종로학원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에 진행되는 2025학년도 입시에서부터 의대 정원 확대가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학원업계에선 조만간 반수생이나 의대 진학 지망 직장인 등을 위한 반을 개설하거나 늘리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도 “의대 선호 현상이 여전히 강한 만큼 정원 확대 방침 발표로 의대에 도전하는 직장인과 대학생 등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가 세부 계획도 세우기 전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발표하며 의대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가급적 빨리 필수의료 인력 부족으로 증원이 필요한 과나 지역의 정원을 늘리겠다는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영 기자, 박경민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수료, 여근호 인턴기자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수료
‘킬러’ 배제-의대 광풍에… 올해 반수생 역대최고 9만명
수능 응시생 5명중 1명이 반수생
대학중도이탈자도 10만명 넘을듯
신입생 3명중 1명… 내년 더 늘어
다음 달 16일 실시되는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응시하는 반수생이 역대 최고치인 9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수생은 대학에 다니다 수능을 다시 보기 위해 2학기에 휴학을 하고 입시에 재도전하는 수험생을 뜻한다.
정부의 ‘킬러(초고난도 문항) 배제’ 방침과 의대 광풍으로 올해 반수생 규모가 커지면서 대학을 중도 이탈하는 학생 수도 1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22일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수능을 응시하는 대입 반수생 수는 8만9642명으로 추정된다. 이번 수능에 접수한 N수생 17만7942명에서 올 6월 평가원이 주관한 모의평가에 접수했던 8만8300명을 뺀 수치다. 2023학년도 8만1116명보다 8526명 늘었다. 평가원이 2011학년도 모의고사 접수 통계를 공개한 이래 최고치다. 올 수능 전체 응시자 수는 50만4588명으로, 응시생 5명 중 1명이 반수생인 셈이다. 반수생은 1학기 휴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통상 2학기부터 휴학을 하고 수능 준비에 돌입한다. 이 때문에 6월 모의평가에는 대체로 응시하지 않는다.
반수생 규모가 역대 최고치를 찍은 원인은 최근 의대 열풍으로 입시에 재도전을 하는 학생이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상위권은 의대 진학을 목표로 반수하고, 중하위권은 상위권대를 노린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다니던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도 반수의 장점으로 꼽힌다. 더구나 정부가 “올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선포했다. 최상위권 변별이 약해지면서 상위권 학생들의 반수가 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수로 입시 재도전에 성공하는 학생이 많아지면 연쇄적으로 대학을 중도이탈하는 학생도 증가한다. 올해 중도이탈 학생이 1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24학년도 전국 4년제대 모집 인원이 34만1576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학 신입생 3명 중 1명꼴로 중도이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을 중도이탈한 학생은 9만7177명으로 5년새 가장 많았다. 올 수능을 치는 반수생이 좋은 성적을 거둬 다른 대학으로 빠져나가게 되면 이는 올해 발생한 중도이탈자로 분류된다. 교육부가 올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중도이탈한 학생 수를 내년 6월 공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내년에는 반수생 수와 대학의 중도이탈 학생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반수뿐 아니라 편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들의 대규모 이탈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