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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질을 당하는 나무는 쓰러지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
김진송, 「오리무중 플라타너스」
나무를 자르기 전에 이미 쓰러뜨려야 할 방향을 정해놓는다. 그리고 쓰러뜨릴 방향과 그 반대 방향으로 번갈아가며 나무에 톱질을 하는데, 어느 정도 잘라내도 좀처럼 넘어지지 않는다. 만일 꼿꼿이 서 있는 나무라면 나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삼분의 이 이상을 잘라내도 끄떡하지 않는다. 그만큼 나무 자체가 균형을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톱날이 반도 안 들어갔는데도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난리를 친다. 일하는 위치며 톱날의 방향이며 몸동작 하나에까지 소리를 지르며 간섭을 하니 도무지 시끄럽고 정신이 사나워 오히려 사고가 날 지경이었다. 단 십 분이면 끝날 일을 삼십 분이 넘도록 승강이를 하여 겨우 넘어뜨리자 악머구리 같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트럭에 실을 수 있게 여섯 토막을 내어 옮기는데, 플라타너스가 그렇게 무거운 나무인 줄 미처 몰랐다. 집으로 가져와 차고에 쟁여놓는 데만 다시 하루가 걸렸다.(중략)
한 토막을 작업실로 가져와 톱을 대보니 쉽게 잘라진다. 도끼를 대면 뚜두둑 떨어져나가고, 대패를 대면 젖은 나무인데도 우두둑 대팻밥이 깎인다. 무겁기는 경치게 무거운 것이 부러지기는 쉽게 부러진다. 게다가 대 충 켜놓고 말린 나무는 여지없이 쩍 하고 갈라져버린다. 한여름 며칠을 고생하여 차고 안에 가득 쟁여놓은 나무가 다 쓸모없게 되었단 말인가?
플라타너스가 안 좋은 나무일 리는 없다. 세상에 좋지 않은 나무란 없다. 각각 제 나름의 품성과 성질대로 쓰임이 있게 마련이다. 아마 나무를 베어내는 시기가 좋지 않았고 건사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 모양이 되었을 게다. 어쨌든 이 나무들이 다 마르기를 기다리는 건 별 무소용이었다. 이걸로 무얼 만들려면 그 굵고 큰 나무를 둘째로 써야 할 텐데, 그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플라타너스 한 토막을 다시 꺼내어 손을 대보았다. 플라타너스의 껍질은 마치 군복처럼 얼룩얼룩한 무늬다. 껍질도 매끄러워 여는 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껍질의 두께가 사오 밀리미터를 넘지 않는데, 목피가 찰싹 달라붙어 있어 완전히 마르지 않는 한 껍질을 벗겨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속살은 회색빛이 도는데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토종 목재가 아니어서 그런지 목질 또한 매우 다르다. 목재는 단단하지만 섬유질이 매우 짧은지 자르기와 켜기가 별 차이가 없다. 젖은 나무를 켜 각재로 만들어도 잘 부서져 목재로 치면 나왕과 흡사하다.
아무리 보아도 장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는데, 마르면 뒤틀리지는 않아도 잘 터질 것 같다. 하지만 목질은 질겨질 것이다. 냄새는 무미한 편이다. 젖은 나무에서는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나고 마른 나무는 약간 매캐하다.
플라타너스는 도무지 무얼 만들 때의 두께며 길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토종 목재와 성질이 달라서 그런지, 어느 정도 두께라야 힘을 버티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 토막을 통째로 깎아내어 의자를 만들어 몇 달이 지나자 예상했던 대로 가운데가 갈라지고 말았지만 만들 때 고생했던 품을 생각하니 그저 버릴 수는 없었다. 꺾쇠를 박아 더 이상 갈라지지 않도록 이어주고 다듬어 모습을 지탱하고 보니 좀 기괴한 의자가 되고 말았다.
▶ 작가_ 김진송 – 목수. 평론가. 1959년 서울에서 출생.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했고, 평론 기획 출판 일을 하다가 사십이 가까워서 나무먼지를 마시기 시작했다. 목수일과 글 쓰는 일을 병행하는 동안 둘 중 한가지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장미와 씨날코』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 『목수일기』를 펴냈으며, 나무로 깎은 작품으로 여섯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 낭독_ 최광덕 – 배우. ‘만다라의 노래’, ‘맥베드21’ 등에 출연.
▶ 출전_ ☜『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시골생활)
▶ 음악_ Backtraxx-mp3/ piano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김진송,「오리무중 플라타너스」를 배달하며
멀쩡한 플라타나스 나무에 톱질을 할 때부터 목수는
겉만 보고 알 수 없는 나무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꼿꼿이 서있는 나무는 뿌리가 깊고,
깊은 만큼 결이 단단하여, 톱질을 한 방향으로 해서는 쓰러뜨리기 어렵다는 것,
밑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소리치지만, 톱날이 파고드는 나뭇결의 저항을 통해
쓰러질 때를 이미 감으로 알고 있다. 토막을 내어 트럭에 실을 때는
의외의 무게에 당황하기도! 대패질과 도끼질에 어이없이 갈라져버리며,
젖었을 때는 비릿한 내음, 말랐을 때는 매캐한 냄새가 난다는 것까지 알게 되지만
이 나무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는 오리무중이다.
나무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목수에게 가르쳐주었다.
가다보면 목표 자체가 불쏘시개가 되는 수도.
문학집배원 서영은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