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어버이날 경로잔치
2023년 5월 9일 화요일
음력 癸卯年 삼월 스무날
산골의 날씨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영하 1도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지붕을 덮었다.
5월 초순의 막바지, 머잖아 중순인데
이 무슨 날씨의 변덕이란 말인가?
한창 예쁘게 꽃이 피었던 산철쭉은
마치 데쳐놓은 듯한 모습이 애처롭다.
이제 막 새잎이 돋고 꽃몽오리가 생긴
산목련 또한 냉해를 심하게 입고 말았다.
이 상태로 꽃이 피게 될런지 모르겠다.
이렇듯 산골의 봄은 너무나 처참함이다.
가혹하고 끈질긴 겨울 끝자락의 심술에
모든 식물들이 심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마을분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감자 새싹이
영하의 기온에 얼어 심한 냉해를 입었다고...
어찌되었거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산골의 날씨이고 특이한 기후현상이다.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마을 부녀회에서 경로잔치를 연다고 하여
일손돕기를 부탁해 아침에 인근 청태산 넘어
둔내에 있는 떡방앗간에 떡을 찾으러 다녀왔다.
떡방앗간이 봉평에도 있지만 기정떡은 둔내에
있는 집이 맛있게 하기로 유명하여 마을 행사가
있으면 맞춘다. 먹어보면 맛이 다르긴 다르다.
지금은 국도가 된 舊 영동고속도를 20여분 가는
도로는 그야말로 한적하고 주변 경관이 보기좋아
드라이브를 하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마을 경로잔치는 입장을 하기전에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 어르신들 연세가 70대와 8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65세가 넘으면 노인회에
가입을 하는 것이 우리 마을의 관례이긴 하지만
젊은층에 들어 촌부와 같은 60대 후반은 가입은
해도 노인회의 행사에는 참석은 하지않고 있다.
어제는 65세 이상은 어르신이라고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이었다. 달지않으면 안되냐고 했더니
무슨말이냐며 굳이 붙잡고 가슴에 달아주었다.
어르신들께서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되었냐고 하며
웃으셨다. 참 많이 쑥스럽기까지 했다. 얼마만에
달아보는 카네이션인지... 오래전 조카 딸내미가
초등학교 다닐때 색종이로 만든 꽃을 달아주었던
이후 처음이니까 아마도 거의 20년만인가 보다.
카네이션 단 것이 어색하여 곧바로 행사장에 들어
가지못하고 동네 한바퀴 돌고 한참 뒤에 들어갔다.
거의 이틀전부터 부녀회에서는 경로잔치 준비를
했다고 한다. 다른 마을도 그렇겠지만 우리 마을의
부녀회는 특히 남다른 경로사상이 아주 투철하다.
효부상을 받았던 마을 아우의 제수氏가 회장이고
이번에 새로 이장을 맡은 아우의 제수氏가 총무를
맡고 있다. 어르신들 한분한분 웃음으로 모셔와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좋았다.
이런 행사가 있으면 면장님을 비롯한 면사무소의
직원들, 유지급에 속한 단위농협조합장과 직원들,
그리고 관내에서 사업하는 많은 분들이 내빈으로
참석을 하는 것이 고장의 관례이고 풍속인 것이다.
모두 그냥 오지않고 어르신들께 필요한 물품이며
찬조금 봉투를 들고와서 축하를 해주는 모습들이
서로 돕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산골 고장 풍속도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루종일 먹고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마을 경로잔치를 치렀다.
저녁무렵 부녀회 총무인 제수氏가 이장을 비롯한
마을 아우들과 함께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서
카페에 올라왔다. 부득이 참석을 못하신 언니들과
뒷풀이를 겸해 청바지 클럽 모임을 해야겠다고...
아내와 처제가 사정이 있어 경로잔치에 못갔다고
제수氏가 챙긴 것이다. 또다시 한 상 똑 부러지게
차려놓고 잔치를 벌렸다. 이렇게 서로를 챙겨주는
고마운 마음들이 있음에 산골살이를 하는 보람과
재미와 감사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두세 시간의
즐겁고 신나는 산골스런 잔치를 또 벌였다.
그런데 밤늦게 안타까운 비보가 날아들었다.
멀리 고향 남해에서는 고종사촌 누님이 별세하여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멀리서 산다고 연락을 하지
않았단다. 마음이 좀 안좋았다. 좋은 곳에서 영면
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빌며 죄송한 마음을 달랬다.
또 한 분의 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안타까운
비보를 접했다. 같은 팀에서 일했던 동료분이 카톡
문자를 주셨다. 오래전 촌부가 조금 힘들었던 시절,
잠시잠깐 전공분야가 아닌 일을 하던 때 옆 팀에서
베테랑이던 누님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껏 교류와 소통,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다.
몇 해 전 병환으로 투병을 하셔서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자상하시고 정이 남달랐던 누님이셨는데
이렇게 황망하게 가셨다니 가슴이 저리고 마음이
아프다. 오늘 아침에 발인을 한다고... 누님 친구인
또다른 누님께 전화를 하여 알았다. 왜 미리 알려
주지않았냐고 했더니 알려줄까 망설이다가 멀리
사는 사람이라고 알리지를 않았다며 울먹이셨다.
누님의 연세는 아직은 가실 나이가 아니신데...
두 누님의 영면을 마음으로 기원하는 아침이다.
첫댓글 세상사
늘 좋은 일과
나쁜 소식이 공존하니
안타깝지만 받아 들이며 살아야겠지요
어버이날 행사가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지요. 답글 늦어 송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생과 사 ㅡ
경로잔치로 신명이 나다가 숙연해지는 아침입니다.
삶의 단면을 보는듯 하군요
화이팅! 해봅니다~~
생노병사는 우리가 겸허히 받아들여만 하는 것,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잠시 소풍나온 삶을 어떻게 잘 마무리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좋은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