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으로 인해 아픔을 느끼는 사람은
어떡해서든 그 병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병을 이겨낼 수 있는 온갖 방법이며
병원, 의사, 약을 찾아 나서죠.
모든 약들도 다 먹어보고 치료도 받아보고
이것저것 다 해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병이 낫지 않을 때쯤이면
절망을 하게 되죠.
이쯤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절에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당연히 절에서 스님들은
치유사나 의사가 아니다 보니
몸에 대한 치료법을 알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병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병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에 치유법을 말씀해 드리곤 합니다.
쉽게 말하면
병에 걸렸을 때의 마음공부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치유명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말하면 솔깃한 마음으로
마음공부를 하면 병도 나을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이 말하는 치우명상에 귀를 기울이면서
무언가 큰 기대를 하겠죠.
그런데 어쩌면 좀 힘이 빠지고 조금은 어이없게도
스님들이 말씀해주시는 치유명상이랄 것이
사실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고요,
다소는 좀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 갖고
과연 저 방법이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나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마음공부에
근원과의 연결이랄까요,
본연에 자연 그대로에 완전함과의 연결이 있습니다.
가장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무위의 마음공부야 말로
가장 강력한 자연 치유의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죠.
그, 방법 아닌 방법,
자연 그대로의 방법,
너무도 쉬워서 어려운 방법,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병이 나를 찾아 왔을 때
온전히 그 병으로 인해서
아파해 주라는 것입니다.
나를 찾아온 그 병을
있는 그대로 허용해주고,
받아들여 주고,
그것과 함께 잠시 있어주는 것이죠.
병에 대해 이런 생각과 해석, 판단을 하지 말고
그저 그 병을 판단 없이 지켜봐 주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치유명상이고요
병으로 인해서 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명상법입니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병으로 아파하는 시간을 갖지 않습니다.
어떡하든 병에서 벗어나야 되겠다는 생각만 하고요,
나을 생각만 하느라고
나를 찾아온 병과 함께 있어주기는커녕
그 병을 거부하는 것이죠.
병을 허용해주고 사랑해주고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는 것이 아니라
병을 거부하고 미워하고
쫒아낼 궁리만 하고 살았던 것이죠.
그러나 병은 인연 따라 온 겁니다.
진리로서 온 것이죠.
어떻게 그것이 진리로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지금 내가 아프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현실이 바로 진실입니다.
삶이라는 주어진 현실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을 보여줍니다.
삶 자체가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장이구요,
현재가 곧 실재이고
지금이 곧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병이 우리를 찾아오는 이유는
아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병과 함께 있어주고
아파해 주는 겁니다.
그 병속으로 뛰어들어
마음껏 아파해 주기를 선택해 보세요.
충분히 받아들여 아파해 주면
아파해 줬기 때문에 머지않아 그것은 떠나갑니다.
그런데 아파해 주지 않고 거부하게 되면
아픔이 흡수될 때까지
계속해서 아픔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병이 더 오랜시간 계속 되는 것이죠.
병과 아픔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그것이 경험되는 것을 통해서
해소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괴로운 것들은
풀려나기 위해서 찾아옵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업장 소멸되기 위해서 찾아왔다라고도 말합니다.
아픔은 아픔으로 경험되기 위해 찾아 왔기 때문에
그 아픔을 충분히 받아들여 경험해 주면
머지않아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에
쉽게 떠나갑니다.
다만 그렇게 병과 함께 있어 주되
빨리 나아야 한다거나
더 악화되면 어쩌나 하고 고민하거나
그런 모든 생각들은
허망한 허상임을 알아서
그 병에 대해
그 어떤 생각, 판단, 해석, 고민을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그저 완전히 근원에 내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병과 함께 있어주되
결과는 완전히 내 맡겨 버리는 것이죠.
어디에 내 맡기는 것일까요?
병이 나온 자리에 다시 돌려서 내 맡기는 것이죠.
그러면 병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금에 나 자신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나의 근원, 병이 나온 자리,
그 내면의 참된 자성에 모든 것을 내 맡기고
이제부터는 마음 편하게 즐겁게
삶을 누리며 즐기며 살기만 하면 됩니다.
병이 있다는 생각,
병으로 고생한다는 생각,
병이 더 커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런 모든 생각들이 없다면
당신은 더욱 행복하고 평화로울 겁니다.
그런 깨끗한 마음일 때
질병도 아픔도
더 빨리 사라져 가게 될 것은 분명하겠죠.
병으로 한 번 아프고
병에 대한 생각으로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아파할 필요는 없습니다.
첫 번째 화살인 병은 왔더라도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마음공부를 통해
병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병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결과는 완전히 내 맡기며 산다면
병은 훨씬 빠르게 우리를 지나쳐가게 될 것입니다.
삶이란 이토록 단순합니다.
현재는 언제나 진실입니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고 받아들여 주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치유이고 명상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병원도 가지 말고 약도 먹지 말라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으면서도
병을 대하는 마음자세랄까요
병이 찾아온 그 현재를 다루는 방법을 말씀드리는 것이죠.
사실은 치료하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 근본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야 말로
더 근원적인 치유법입니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고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는 말처럼
사실 물질적인 세계나 이 육신의 모든 문제 또한
그 근원에는 마음이 다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몸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공부가 더 근원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공부의 방법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해야 할 것도 없지만
가장 강력합니다.
사실 참된 치유는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워지는 것이고,
지금 이대로의 현재라는 가장 강력한,
모든 것이 완전한 지금 이 순간의 공간과
만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자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했고요
부처님께서도 무위법(無爲法)이라고 말했듯이
참된 진실은 바로 무위법이고 무위입니다.
무위란 곧 함이 없이 행한다는 겁니다.
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무위의 실천이
곧 모든 것을 애써서 다 행하는 것 그 이상의
참된 실천행이 깃들어 있습니다.
삶은 언제나 단순합니다.
일어나는 바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는 것이
모든 삶에 해결책입니다.
피해 다니고 거부하려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고, 살아주고, 느껴주고,
직면해주어 보십시오.
삶이 제 스스로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부처이구요,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은 곧 진리이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 바로 모든 답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그대로에
여러분의 삶에 접속하기만 하면
그 모든 가능성과 힘과 지혜와 모든 답이
충분히 우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 출처 :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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