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주일) 순종의 길에서 만나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창세기 22:1~14
오늘의 찬송(새 393장 오 신실하신 주)
* 아브라함의 결단 22:1~5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 아브라함의 순종 22:6~14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으로 갑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해 제단 위에 놓고 잡으려 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말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경외함을 인정하십니다.
* 아브라함의 결단 22:1~5
하나님은 때로 성도의 순종을 시험하십니다. 이삭 출생 후 아브라함 가정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갑자기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노년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묵묵히 하나님 명령을 시행합니다.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의 주체는 아브라함입니다(3절). 그가 가야 할 곳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입니다(2절).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처럼 (12:1), 하나님은 다시 모든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십니다. 모든 것을 주신 분이 순종을 요구하실 때, 우리는 순종을 결단해야 합니다.
*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해야만 할 때 내 마음은 어떨까요?
* 아브라함의 순종 22:6~14
순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표출입니다.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7절)라는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라고 답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바로 그 순간에야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경외하는 마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뿔이 수풀에 걸린 한 숫양을 제물로 바친 후 그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 (14절)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로 '이레'는 '준비하다'라는 의미 외에도 '보다' 혹은 '선택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준비해 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행동을 다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는 성도가 '코람데오'(Coram Deo) 곧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 '여호와 이레는 무슨 뜻인가요?
* 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 나를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가 기꺼이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가장 사랑하는 것을 묵묵히 내어드릴 때 비로소 '여호와이레'를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재촉하시는 걸음이 이해하기 어렵고 가혹하게 느껴지더라도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게 하소서.
첫댓글 이영란권사님 :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훈련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자기의 생명보다 이삭을 더 사랑 했을텐데 그 이삭을 드림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또 믿음은 때때로 모든것을 포기하게 하십니다.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죽이심 같이 각 사람도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어야 한다.하나님은 열매를 보신다.성령의 열매들~적당히는 할수 있으나 생명은 아무나 죽는데 내놓지 않는다.자기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아까워서 이다.하물며 백세에 얻은 아들~아브라함이 다시 살릴것을 믿으면서도 일단은 이삭을 죽여 불로 태워 죽여야 하는 것으로 잠못 이루지 않았을까?아무리 속썩이는 자녀여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결단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생명을 걸거나 받치라 하신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순종 누가 할까?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돌아서는 자들이 간다~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 나이 많아 나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있는 믿음이 있는자이기에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번제로 드리기로 결단하고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가라 하신곳으로 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대로 순종하며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는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신뢰하고 인정하므로 하나님이 이미나 수풀에 준비해놓은 숫양을 제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도 믿음이 견고한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고난을 주신것은 사람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순종하는가를 보기 위함이며 고난가운데 찿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갈때 이전보다 더 축복을 주심을 알게 하십니다
고난을 견듸는 훈련을 통해 날마다 깨어 말씀을 보고 듣고 견듸는 삶을 살아내는것이 우리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의 가정임을 알게 하십니다
이시대를 살아가면서 고난은 더욱 찿아올것이며 그고난앞에 끝까지 코람데오로 살아가는 믿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부르십니다. 이삭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입니다. 얼마나 힘든게 얻은 아들인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실텐데,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서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닌 이삭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의 마음에 하나님께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놓습니다.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사랑하느라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은혜의 시간을 뒤로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의 문제들 앞에서 염려하고 근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나도 하나님을 더욱 섬기며, 사랑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미 노쇠한 아브라함은 아버지로서는 어리고 젊은 독자 대신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드리고 싶었을 것이고, 이삭은 마음만 먹는다면 100세가 훨씬 넘은 아버지를 넘어뜨리고 도망가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테지만, 두 사람은 생명으로써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제사를 지낼 숫양이 준비되어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하나님과 그 명령을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였지만, 전능한 창조주임에도 자신이 속죄양이 되어 생명을 내어주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공통된 목적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시키기 위함이다.
나를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도 목숨을 내어주기 쉽지 않은데, 예수가 생명으로 대속하기 원했던 사람들은 조롱하거나 적대하며 생명을 빼앗고자 하였던 대상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믿지 않는 자에게 예수님을 전도하면 목회자나 성도들의 비도덕적인 언행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며 거부하는 목소리를 듣기 쉽다.
나 또한 예수가 아니라 전도하는 친구인 사람을 보고 시작한 신앙의 첫걸음은 이제 헤세드 사랑으로 인해 매일 사람이 아닌 주님을 보며 넘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여기까지 신실하게 이끄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 감정이 북받치거나 상처가 벌어져 쓰라릴때 주님의 조건없는 사랑과 구원이 저를 낫게하여주옵소서 주님께 받은것으로 저도 품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