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의 여정
새벽 일어나 강론 쓰기전 일별해보는 인터넷뉴스와 동영상 제목입니다. 특히 동영상 제목만 봐도 국내외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몇가지 눈에 띈 제목입니다.
“탈영, 병역기피 5만명, 러, 심상치 않은 분위기”
3년째 계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의 무의미한 전쟁에서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음은, 살고 싶음은 젊은이들의 너무나 당연한 욕구입니다.
“시카고 등장한 오바마부부, 연설천재 사자후에 열광, 미셸 오바마 ‘더 높이 가자!’”
미국은 대선 열기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고 오바마 부부의 열정적 연설은 군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습니다. “더 높이 나가자!” 정말 멋진 미셸 오바마의 구호이자 좌우명입니다. 주님께 불림 받은 우리도 주님을 향해 날마다 더 높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밖에도 무수한 국내외 동향을 알리는 제목들이지만 이만 생략합니다.
정말 쏜살같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입니다. 모두가 지납니다. 휴가 떠난 형제들도 순식간에 돌아오고, 2주 단위의 머리깍기도 순간입니다. 1주일도, 한달도, 봄-여름-가을-겨울 1년도 순간입니다. 흡사 기차타고 떠날 때 창밖 지나는 풍경처럼 그렇게 세월은 흐릅니다. 며칠전 서울 대교구 젊은 사제가 57세병환으로 선종했다는 소식이었는데, 어제 또 38세의 젊은 사제가 병환으로 선종했다는 소식입니다.
오랫동안 정주의 삶을 살다보니 세월의 흐름도 보입니다. 36년이 훌쩍 지나니 많은 형제자매들이 세상을 떠났고, 젊었던 수도형제들도, 꽃같이 젊었던 봉사자 자매들도 노년의 가을, 또는 겨울 인생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새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죽어야 하나? 자문하게 됩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정말 소중한 선물이자 동시에 과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삶의 지침이 됩니다.
“몸의 평안함은 애써 추구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착한 본성에 따라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다.”<다산>
“좋은 맛을 구하고, 미색을 구하고, 편안함을 구하는 것은 본성이다. 하지만 지켜야 할 천명이 있으므로, 군자는 본성이라 하지 않는다.”<맹자>
한마디로 각자 주어진 성소에, 천명에 충실할 때 저절로 몸의 평안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결코 특히 믿는 우리들의 삶은 우연이 아니라 섭리 여정중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말그대로 삶은 선물이자 과제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따라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의 목표와 방향은 뚜렷합니다.
역설적으로 성소에 충실히 응답하여 주님을 닮아갈수록 참나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참나로 익어가는 삶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세월의 흐름은 정직하고 자연스러워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니 배밭에서도 서서히 과일 익어가는 푸근하고 넉넉한 열매 향기가 납니다. 봄의 꽃향기보다 더 그윽하고 깊은 열매 익어가는 가을 향기입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입니다. 계속되는 성인 기념일입니다. 엊그제의 성 베르나르도, 어제의 성 비오 10세, 그리고 오늘은 동정 마리아, 모두 선물이자 과제 인생을 100% 성공적으로 살아낸 성인들이며 오늘 기념하는 성모님은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의 유래를 나눕니다. 모후란 임금의 어머니를 말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임금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이심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이시고 성모 마리아는 왕의 어머니가 됩니다. 1954년 비오 12세께서 제정하고 반포한 교서의 내용입니다.
“‘그의 아들이 왕이 되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된다.’고 했던 천사의 말씀과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부른 성경 구절을 기초로할 때, 이 두가지 성경은 당신 아들의 왕권 때문에, 마리아 역시 그에 상응하는 위대성과 탁월성을 갖고 계심을 보여준다.”
1925년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지정된 이후부터 성모 마리아가 왕의 어머니시라는 축일도 정해져야 한다는 요청이 쇄도했고, 비오 12세는 “하늘의 여왕께” 라는 회칙을 통해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했고, 1954년 성모성년의 폐막식을 기념하여 선포한 축일로 교황 비오 9세가 1854년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마리아 대축일’을 선포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참으로 당신 성소의 선물을 100% 과제의 완성으로 살아냈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어제에 이어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어제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였고, 오늘은 혼인잔치의 비유입니다. 새삼 우리 인생을 혼인잔치 하늘 나라 축제인생임을 깨닫습니다.
고해인생이 아닌 축제인생입니다. 그런데 오늘 축제인생 혼인잔치에 초대 받은 이들은 무지에 눈이 멀어 한결같이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고 혹자는 초대 사절로 온 종들을 때리고 죽입니다. 주님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을 뜻하지만 우리일수도 있습니다. 초대받은 은총의 사실을 잊고 마구 되는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받았다고 보장된 구원이 아니라 날마다 하루하루 하늘 나라 초대 잔치에 응답하여 축제인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선인과 죄인이 함께 공존하는 하늘 나라 우리 교회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하늘나라 교회 공동체내에 몸담고 있다하여 무조건 구원이 아니니 바로 혼인잔치 예복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임금이신 주님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이에게 말합니다.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물으신후,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속으로 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우리에겐 바로 죽음이 심판과 구원의 갈림길입니다. 이때는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기도하라, 회개하라, 사랑하라 연장되는 삶이요, 살아있을 때 기도요 사랑이요 회개이지 죽으면 다 끝입니다.
혼인예복이 상징하는바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의 책임인 과제입니다. 밀렸다 한꺼번에 과제 다 못합니다. 하루하루 넘어야 하는 첩첩산중의 삶처럼, 하루하루 과제를 다하며 넘어야 하는 산같은 인생입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선물인생에 충실한 과제 이행으로 응답한 이들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택 역시 우리가 스스로 책임의 과제를 다할 때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부르심에 따른 성사의 은총이 우리를 돕기에 도저히 핑계댈 수 없습니다. 에제키엘서에서 약속한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실현되고 있으니 용기백백하여 하루하루 책임의 과제를 이행할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아멘
첫댓글 아멘!~~~ 묵상 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