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춤추는하프
그와 그의……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 가 보면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며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나가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머리가 꽤 길었는데 며칠 감지 않았는지 지저분하고 맨들맨들했다. 그리고 그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는데 마치 유명 연예인 조영남씨의 안경을 뺏어 쓴 것 같았다. 촌스러웠다. 그의 주변에는 먹고 남은 컵라면 용기와 몇 가지 과자봉지, 그리고 콜라가 담긴 1.5L 페트병이 있었다. 남자는 열심히 타자를 치다가 중간 중간 1.5L 페트병을 들고 그대로 입에 가져갔다. 그의 목젖이 꿀꺽 꿀꺽 움직일 때마다 페트병 안의 콜라가 크게 요동쳤다. 마치,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그는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자 하얀 한글 파일에 검은색 글자들이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놓는 십자수처럼 하얀 바탕에 검은색 실로 그는 수를 놓고 있다.
나는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그가 좋다. 그가 집중하고 글을 쓸 때면 잘 씻지도 않고, 밥도 잘 챙겨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그가 좋다. 글을 쓰고 있는 그는 시시각각 표정이 변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양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그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글이 잘 풀릴 땐 살짝 미소를 띠고 있는데 그 표정이 정말 예술이다. 나는 늘 이렇게 그를 지켜보다가 그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간다. 그럼 그는 내가 온 것도 모른 채 역시 컴퓨터 앞에 앉아 그의 캐릭터들과 시름 중이다. 한참을 그가 나를 볼 때까지 기다려도 그는 내가 자신의 옆에 와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참다못한 내가 ‘톡톡’하고 그를 살짝 치면 그제 서야 그는 나를 돌아본다.
“어? 달래구나. 언제 일어났어? 배고프지. 미안, 오빠가 밥 줄게 조금만 기다려.”
그가 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더니 드디어 한 시간 만에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그리곤 밥그릇에 밥을 담아 내 앞에 가져다준다. 오늘도 역시 참치다. 내가 이 집에 온 이후로 다른 것은 먹어보지를 못 했다. 이 집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가끔 영양 간식도 챙겨 먹고 엄청 귀하게 자랐는데 그와 함께 살게 된 이후로 그런 것들은 벌써 예전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함께하는 지금이 더 좋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으니까. 이런 것쯤은 하나도 싫지 않다. 충분히 견딜 수 있다.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또 다시 다다닥, 하는 키보드 소리가 들린다. 그는 늘 소설, 소설, 소설 이었다. 나에게 하는 말들 중에 절반 이상도 소설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 소설 줄거리 이야기, 이제 어떻게 전개하면 좋을까, 또 마지막 반전에 대한 이야기……. 그의 머릿속엔 온통 소설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나에 대한 관심은 요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1순위는 늘 소설이었으니까. 그래, 1순위를 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설에 대한 애정에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나의 애정으로 바꿔줄 수는 없는 걸까?
밥을 다 먹고 나는 다시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곁에서 그를 바라보는 거, 그것 밖에는 없으니까. 그래도 나는 그의 곁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행복하다. 그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좋다. 그를 만나지 못했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생명의 불빛을 꺼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죽었겠지.
‘Rrrrrrrr, Rrrrrrrr’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키보드 치는 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그가 저쪽 구석에 있던 핸드폰을 들고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전화를 받았다. 이젠 전화벨 소리가 끊겼다. 대신 그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야! 나 너네 집 앞인데 들어가도 되냐?]
“집에?”
[응, 그때 봤던 꼬맹이 선물도 사왔는데.]
“꼬맹이? …아, 달래? 그래, 와. 안 그래도 지금 잘 안 풀려서 쉬려던 참이야.”
[그럼 간다!]
엿들은 건 아니지만 워낙 조용한 집인데다가 그의 친구인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굉장히 커서 나는 그의 통화를 들었다. 누군가 이 집에 오려는 모양인데, 나를 알고 있는 걸 보니 저번에 봤던 굉장히 소란스러웠던 남자임에 분명하다. 나를 꼬맹이라고 부르며 계속 장난을 치던 그 남자!
그는 갑자기 온 연락에 분주해졌다. 컴퓨터 옆에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쓰레기봉투에 모조리 집어넣고 내가 먹은 밥그릇도 치웠다. 그리고 씻으려는지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를 따라 화장실 문 앞에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오빠 씻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가 화장실로 들어가고 나는 다시 내 침대에 누웠다. 아. 뭔가 뻐근한 게 피곤하다. 졸린 거 같기도 하고… 잠깐 그가 나올 때 까지만 누워 있어야겠다. 혹시 잠이 들더라도 분명, 그의 친구가 오면 시끄러워서 깰 수 있을 테니까.
……의 이야기
“어이! 친구! 나 왔다!”
“왔어?”
“꼬맹아! 오빠 왔다. 얼굴 좀 보자! 어? 자네?”
“자? 오늘 좀 일찍 일어난 거 같던데, 피곤했나보네.”
“지가 뭘 한다고 피곤해? 이 오빠가 가져 온 선물도 못 보고 말이야.”
“선물? 뭔데?”
“짠!”
“고양이 영… 양 간식?”
“요즘엔 다 이런 것도 먹고 한다더라. 넌 만날 참치만 준다며.”
“그래? 오늘 저녁에 줘야겠다.”
그와 그의 ……의 이야기
으음, 아. 깜박 잠들었다. 밖이 시끄러운 걸 보니 그의 친구가 왔나보다. 살금살금 밖으로 나갔다. 역시, 그의 친구가 왔다. 오늘은 날 얼마나 괴롭힐까. 그를 처음 본 날 그의 친구도 함께 있었는데… 그와 함께 살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그의 친구가 날 데려갔다면……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 달래 나왔네! 오빠가 너 보고 싶어서 선물까지 사왔는데 넌 자고 있냐! 치사하게!”
휴, 시작이다.
“크헤헤. 달래야! 와서 오빠한테 애교 좀 부려봐. 응? 앙칼진 목소리 있잖아, 왜. 냐아아아-옹-.”
심지어 내 목소리까지 따라한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때 너 나 아니었으면 죽을 뻔 했던 거 알지? 얘네 집 아파트 화단에 버려져 있는 너 발견한 게 나라니까! 얜 그냥 내가 너 키우라고 해서 키우는 거야!”
…그와의 첫 만남.
그를 만나지 못했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생명의 불빛을 꺼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죽었겠지.
“야, 근데 고양이 키우는 거 안 힘드냐? 혜진이는 고양이 사줬더니 고양이가 가구 다 긁어놨다고 사내라고 난리던데.”
“달래는 안 그래. 엄청 얌전해. 그냥 가만히 날 지켜보고 있고. 그래서 작업 할 때도 방해 안 되고 좋아.”
“그래? 근데 얘 왜 자꾸 너만 쳐다보냐? 주인이라고 알아보는 건가?”
“그렇겠지. 아무래도.”
“야! 얘 우는 거 같은데?”
“뭐?”
그와 그의 고양이의 이야기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으니까.……
버려진 고양이 주제에 그를…… 사랑하게 되어 버렸으니까.
그와 그의 고양이의 이야기. The end.
첫댓글 아아.. 달래가 고양이였구나..... 난 막 사람인줄......ㅋ 고양이는 사람 사랑하면 안되나..? 쨋든 재밌었어요! 잘 읽구 갑니다!
※ 숙원양님 감사합니다. ♡ 고양이랑 사람은 이뤄질수가 없잖아요ㅜ_ㅜ! 숙원양님, 감사합니다아-
우와........ 근데.. 달래가 고양이 였다니.. 안타까운 이야기 인데요?
※ 짠수니님 감사합니다. ♡ 넵! 안타까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용! 나름 반전이었는데ㅋㅋㅋㅋㅋ; 반전같긴했나여?! 감사합니다!!!!
전 달래가 강아지인줄 ㅋㅋㅋ 냐옹 에서 부터 고양이라고 생각이 바꼈음 ㅋㅋㅋ
※ 타코상님 감사합니다. ♡ 강아지는 사람을 원래 잘 따라서, 왠지 고양이가 더 뭔가...음.........<-ㅋㅋ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아.... 사람인줄 알았어요..... 고양이라니.. 슬프네요....
※ lucky88님 감사합니다. ♡ 슬프다고 느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ㅠ_ㅠ 감사해여!! 좋은 하루 보내세요^_^!!
아..........고양이였군요!!
※ 축하놔좌옹님 감사합니다. ♡ 으헤헹..나름반전이었답니당.!!!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_^
반전반전..*ㅁ*오호~!!!!잘보고갑니다>w<~
※ 루비즈님 감사합니다. ♡ 반전같긴한가여ㅋㅋㅋㅋㅋㅋㅋ허접한 반전이라...흄흄..ㅋㅋㅋㅋㅋ루비즈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