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은 예전 한 방송에서 하루 바짝 많이 웃기는 건 쉬운 일이지만, 매일 매일 조금씩 꾸준히 웃기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경규는 1981년도 MBC 개그콘테스트 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26년간 온 국민들을 웃기고 울렸다. <청춘만만세>나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그는 특유의 눈알 굴리기 묘기와 엉터리 중국어를 선보였고, 쿵후 솜씨를 곁들여 이소룡 흉내를 선보이며 단역치곤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가 본격적으로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된 것은 1989년 주병진과 함께 <일밤>에 출연하면서부터였는데, 점잖은 신사 이미지를 고수하던 주병진의 옆에서 그는 정치 풍자의 악역을 하기도 하고 토크쇼의 감초 역할을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1991년, 사회적 명사와 스타들을 골탕먹이던 '몰래카메라'로 명실공히 <일밤>의 심장이 된다. 서태지에서부터 조경철 박사까지 직업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대중들에게 친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속이던 '몰래카메라'에서 그는 특유의 짖궂으면서도 영민한 이미지를 획득한다. 정통 코메디에서 KBS에 밀리던 MBC는 <일밤>을 시작으로 버라이어티 쇼에서의 우위를 선점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이경규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행자가 주병진에서 최수종으로, 최수종에서 이문세로 바뀌며 떠나가는 동안에도 이경규는 <일밤>을 잠시 떠났다가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각종 영화들을 마구잡이로 패러디하던 '시네마 천국'에서 그는 발군의 연기자였고, 패러디 코메디의 최전방에 서서 가능성을 시험했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던 영화 <복수혈전>이 처절하게 실패한 이후 이경규는 와신상담 끝에 <일밤>으로 돌아와 '이경규가 간다'라는 코너를 선보인다. 양심냉장고를 내걸고 교통신호부터 이웃을 돕는 일까지 전 국민을 상대로 계몽캠페인을 벌였던 이 코너는 자칫 사소한 것 하나 하나를 트집잡는 밉상스러운 코너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양심냉장고의 첫 주인공은 열심히 사는 장애인 부부였고, 시청자들은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감동을 찾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 후의 행보를 더 말해 뭐하겠는가. 영동대로 14차선에서 어떻게든 신호를 지키겠다고 용을 쓰는 사람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가슴 졸였고, 정지선 앞에서 사람들은 농담처럼 '이경규 있나 봐라'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 이후에 도래할 수많은 교양오락 프로들 - <21세기 위원회>, <칭찬합시다>, '신장개업', '러브하우스', 'GOD의 육아일기', <느낌표!> 같은 - 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게 된 계기가 바로 '이경규가 간다'였던 것이다. 훗날 월드컵 시즌마다 축구장을 찾아가 분석과 응원을 겸하는 코너로 바뀐 '이경규가 간다'는 이경규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코너가 되었고, '몰래카메라'에 이어서 이경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코너가 되었다. 물론 비슷한 포맷의 코너는 많다. 하지만 이경규가 호들갑을 떨어가며 '엠, 비, 씨' 라고 말할 때 시청자들로 하여금 '친숙한' 그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활약은 <일밤>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오늘은 좋은 날>에서 새카맣게 어린 후배들 사이에 끼어 바가지 머리를 하고 '별들에게 물어봐' 코너에서 영구와 맹구에 필적할 만한 바보연기를 선보인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 시절의 꽁트 코메디를 다시 시도하며 이경규는 자신을 정상으로 올려놓은 코너 '몰래카메라'에서 보여줬던 영민하고 약삭빠른 이미지를 철저하게 배반한다. 몸에 꽉 끼는 반바지에 색동줄무니 티셔츠를 입고 '별뜨레게~무러봐!' 라고 외치는 이경규는 시청자들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코너는 대성공이었고, 이경규는 자신이 명성을 얻기 전 몸담았던 꽁트 코메디의 영토를 수복하는데 성공한다. 인생의 오점이자 돌이킬 수 없는 실패처럼 여겨졌던 <복수혈전> 후 그는 더욱 더 능수능란해졌고 지능적으로 변했다. 그리곤 돌연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더 깊어지고 더 풍부해진 개그의 폭을 자랑하던 이홍렬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걸까. 1998년 11월. 그는 '예림이'와 '예림엄마'를 한국에 남겨둔 채 일본으로 떠났다. 정상의 자리에 서 있을 때였고, 김국진, 김용만과 함께 MBC 예능을 책임지고 있던 때였다. 스스로 한계라고 느꼈을까. 그는 자리를 비우며 김용만이 MBC의 간판스타가 될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우리가 그를 잊어버리기 전에 돌아왔다. 1년 만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만 그를 위해 변명하자면, 한국 예능프로그램이 일본 프로그램을 베껴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칭찬합시다'로 MBC 예능국의 간판스타가 된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도입한 '자막' 역시 일본에서 먼저 시작하던 것 아닌가. <일밤>의 '요리왕'이라거나, <황금어장>도 일본의 <스마스마>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고, 국민 예능프로그램이 되어버린 <스펀지> 역시 표절 시비에 시달렸다. 어디 일본 뿐이겠는가. 근래엔 <웃찾사>의 '나몰라 패밀리'가 미국의 <데이비드 샤펠 쇼>를 표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남자 셋 여자 셋>, <순풍 산부인과>, <뉴욕 스토리> <뉴 논스톱>, <세 친구>, <똑바로 살아라> 등에서 멋대로 표절한 <프렌즈> 에피스드들만 모아도 두 세 개 시즌 정도는 거뜬히 재구성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경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들만큼은 그 표절 시비에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이경규가 간다>가 일본 TBS의 <전파소년>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양한 아이템과 그 변용으로 인해 그 지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일본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그는 '아이디어'를 얻었고, 이는 외국 프로그램을 습자지에 대고 그리는 것처럼 똑같이 베끼는 여타 프로그램들의 몰지각함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돌아온 그는 <전파견문록>에서 여러 코너를 진행하다가 아이들과의 선문답같은 퀴즈로 정착한다. 아이들을 한없이 어리고 무지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늘 눈높이를 맞추고 (그는 실제로도 아이들과 대화할 때 무릎을 꿇고 실제 눈높이를 맞춘다!!) 그들의 시선에서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멋쟁이 신사의 이미지와, 조형기와 주영훈을 놀리고 게임의 룰을 멋대로 조율하는 장난꾸러기의 두 가지 이미지를 번갈아 보여주며 이경규는 '이경규 없으면 안되는 프로'를 또 하나 만들어냈다. 상상해보라. 전파견문록에 조형기가 없을 수도 있고, 주영훈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경규가 없다면 그 프로그램은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반면 <일밤>에서 '건강보감'을 진행하며 건강에 목숨 건 중년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더니, '한다면 한다'와 '배워봅시다'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컨셉의 코너였던 '대단한 도전'을 선보이며 김용만과의 찰떡호흡을 맞추며 온갖 종목의 체육을 섭렵했다. 그는 '건강보감'에 이어 이 코너에 이르기까지의 행보에서 그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바로 '날방'을 외치며 몸을 사리고,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해 한참 아래인 동생 김용만과 바보처럼 티격태격 싸우는 '위기의 중년'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경규의 '외유'가 시작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영화로의 외유가 아니라, 고향과도 같던 MBC에서의 외유였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MBC 예능 오락프로그램의 무게 중심은 김국진 김용만의 황금콤비로 이동해있었다. <테마게임>에서 단순한 개그가 아니라 정극연기에 대한 가능성까지 발굴해 낸 김국진과 재간둥이 김용만의 콤비 플레이는 <21세기 위원회>, 그리고 독립해서 나온 <칭찬합시다>를 이끄는 힘이었다. 이경규는 후배들이 자리를 차지한 MBC 오락에서 자신의 자리를 억지로 넓히기보단 KBS로 눈을 돌렸다. 그 때 KBS의 간판 코메디언은 심형래의 뒤를 이을 주자로 손꼽히던, 서세원의 직계 심현섭이었다. 이경규는 심현섭과 함께 <이경규, 심현섭의 나이트쇼>, 그리고 그 후신이라 할 수 있을 <이경규, 심현섭의 행복남녀>를 진행했다. 결과가 그닥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이후 그를 다른 방송사에서 보는 것이 한결 덜 어색해진 것이 사실이다. <테마쇼 인체여행>, <夜 한밤에>, <그랑프리쇼 여러분>이라거나(이상 KBS), <이경규의 거짓말 잡아내기>, <이경규의 굿타임>, <유쾌한 두뇌검색>, <도전 성공시대> 등의 (이상 SBS) 프로는 이경규에게 썩 잘 맞는 옷은 아니었지만, 그가 그저 MBC에만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엔 모자람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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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여기 저기에서 이경규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웃는 데이>의 실패도 그렇거니와,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꼭지였던 '이경규의 이미지 서바이벌', <일요 스타워즈> 등의 부진은 확실히 그의 시대가 점차 지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밤>에서 선보인 '상상원정대' 역시 별 다른 아이템 없이 코메디언들의 '짤방'만 생산해내다가 비난 속에 막을 내렸고, 그 스스로도 <무한도전>이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등에 패널로 출연해 '너희들도 이제 한 코너 가격에 세 코너 하게 될 날 그리 멀지 않았다'며 농담처럼 자신의 부진을 시인한 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한국같은 방송 환경에서 26년간 생존한 코메디언이 누가 있는가? 故 이주일 선생과 故 김형곤 선생 이후 이렇게까지 긴 세월 동안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하고 있는 현역은 없다. 전유성은 더 이상 방송에 나오지 않으며, 김미화는 시사정보프로그램과 토크쇼를 진행하며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꿈꾼다. 심형래는 영화에 미쳐 몇 년 째 <디-워>에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현역이라 할 만한 사람은 최양락인데, 그 역시 이경규의 아성엔 미치지 못한다.
이경규는 <복수혈전> 이후에 오히려 더 빛나는 별이 되었고, 정상이라 생각될 때 일본 유학을 감행한 후 자신이 이루었던 최전성기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최근엔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몰래카메라>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이번 월드컵 때 월드컵의 다양한 표정들을 가장 잘 잡아낸 코너는 <이경규가 간다>가 아니었던가. 난 이경규가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의 부진을 금새 이겨낼 거라고 기대한다. 후배 양성을 위해 물러나란 말은 그에겐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현역인 시절, 최고이던 시절에 이미 강호동과 김용만을 키웠고, 심지어는 연결고리가 호통말고는 보이지 않는 박명수조차 그의 수제자를 자처한다.
물론 부진을 씻는 데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위기의 중년 이미지는 재미있지만 대중들이 '사랑'하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유재석과 같이 패널들을 감싸안고 가는 힘이 그에겐 없다. 말재간으로야 쌩쌩한 김제동, 탁재훈을 이기겠는가. 이경규는 단독으로 나와서 프로그램을 장악할 때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고, 확실히 근래에 사랑받는 타입의 예능인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가 패널의 자리를 덤덤히 수용한 <무한도전>과 <놀러와>는 또 얼마나 빛나던가. 어쩌면 '패널로 등장했을 때 가장 빛나는 예능인'으로의 변신은 이경규가 다시 정상을 되찾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다른 패널들과의 화음을 이루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가 예전같지 않다고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몹시 서운하긴 하겠지만, 그는 MC라는 위치에서 보여줄 수 있는 수많은 모습을 지치지 않고 보여줬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인이 보여준 것이라고 믿기엔 놀랄 정도로 방대한 스펙트럼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이경규가 진행자의 자리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패널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한다면, 그의 방송 인생은 지금껏 이루어놓은 것만큼이나 오래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경규를 더 오래 보기를 원하는 나같은 시청자들은 그가 오래 오래 우리 곁에 있단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우리에겐, 아니 적어도 나에겐 아직 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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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경규 팬카페 회원이긔~ㅋㅋ넘 조아
저도 회원인데 몇달간 안들어갔어요. 내일 들어가 볼까 생각중..
왜 하필 내일이냐규 ㅋㅋ 지금 들어가면 안되냐규 ㅋㅋ
경규아저씨 진짜 좋아요~
오래오래 방송나와주세요
진짜 최고 ㅋㅋ
저 대단한 도전 성룡나온거 웃다 쓰러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