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훈장 받은 전통가요, 딱 맞는 제 이름 찾아주자
한국인에게 음악은 기록의 첫 페이지부터가 엘레지(elegy, 만가·挽歌 또는 애가·哀歌)다. 2000여 년 전 어느 새벽 한 남자가 흰머리를 풀어헤친 채 깊은 강물을 건너려다 최후를 맞는다. 끝내 남편을 붙잡지 못한 아내는 공후(箜篌·고대 현악기)를 타며 마지막으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부른다. 곡조는 전해지지 않지만 애절한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가수 이미자 씨가 21일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중음악인이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 훈장을 받은 건 처음이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래 64년 동안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그의 위상을 볼 때 때늦은 감이 있다. 오래 폄하됐던 전통가요(트로트)가 뒤늦게나마 제 대접을 받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 씨가 1964년 내놓은 ‘동백 아가씨’는 당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35주간 1위를 했지만 1년 만에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됐다. 일본의 엔카(演歌)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탓이다.
하지만 엔카와 전통가요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것은 당연했다. 성장기를 조선에서 보냈고, 아리랑을 편곡하기도 했던 엔카의 대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1904∼1978)가 “한국의 멜로디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건 잘 알려져 있다. 한일 양국의 민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시에 서양음악과 결합하면서 비슷한 양식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백제 미마지가 고대 일본에 기악무를 전했고, 정읍사 같은 백제 노래도 일본에 전해졌을 것이다. 이 씨의 노래에 대한 금지 조치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가 저자세 외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자 여론몰이 차원에서 내렸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전통가요는 옛 우리 노래의 적통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가요 ‘가시리’에서 김소월의 시로 이어진 절창(絶唱)이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동백 아가씨’)로 터져 나왔던 것이다. 많은 전통가요엔 우리 옛 노래와 마찬가지로 그리워하는 이의 하심(下心·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 담겨 있다.
대체로 자유로운 개인이 강조되는 K팝의 흥망과는 별개로 전통가요는 앞으로도 오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공무도하가에서처럼 기어이 물을 건너려 할 수밖에 없는 좌절(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과 그를 어찌하지 못하는(장차 임을 어이할꼬·當奈公何) 존재의 근원적 비극이 담겼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가요라는 명명은 엄밀해 보이지 않는다. 근대 들어 여러 나라와 접촉하며 변화 발전한 측면이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반대로 미국의 ‘폭스트롯’에서 기원한 ‘트로트’라는 말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면면히 이어 내려온 노래라는 걸 보여주지 못한다.
더구나 이 씨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에서 “전통가요를 이어가는 가수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요즘은) 트로트라는 장르로 잘 이어받고 있습니다만 지금의 활발한 리듬의 트로트와는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가요가 다시금 변화한 근래의 트로트와는 구별되길 바란다는 취지다. 전통가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딱 맞는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