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노을 앞에서 / 박 난 서
강물소리가 나느냐 물으시었는지요
늘 강물소리가 나는 건 확실한데
때론 맑디맑은 강물이 흐르고 때론 탁하고 흐린 강물이 흘러
육신을 썩히기도 하지요
두물머리도 말죽거리도 아닌
강줄기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강물이 흐르는 듯합니다
서른이 되던 날의 여름 태양이 그 강에 잠기어
아직도 떠오르질 못 한 것 같습니다
언제쯤 소녀가 거뜬히 건져 올리려는지
닫고 닫았던 마음의 창을 열고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고 귀를 후비며
가슴이 콩닥이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향해 다시 웃을 때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겠지요
붉은 악마의 열기에 묻히던 날
소녀의 가슴에 강물이 메마르지 않았음을 알았지요
너무 빠른 경험에 놀라기도 여간이 아니었던
그때...
혼미한 육신은 결국 눕지 않는 정신을 이기지 못하더군요
다 씻어 낼 수 있어
매 순간순간 주문을 걸었었지요
그리하다보니...
소녀의 가슴에 강물이 다시 흘렀지요
그 소리에 몸이 하얗게 씻기어지고
맨질맨질해지고
다시 호흡이 정상인 걸음을 걸었지요
태양이 오직 소녀만을 위해 빛을 비춤이고
바람이 오직 소녀만을 위해 입김을 날려줌이고
땅의 모든 것이 오직 소녀만을 위해 일어서고 품고
향기를 그려댐이었지요
누구의 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누구에게 일으켜 달라 하지도 않았고
내 가슴이 밀어내지 않으면 내 것은 내 것인 거라고
비...
그때 보았던 비의 기억이
길게 내려지는 비의 사랑이 소녀의 심장을 적시고
가슴의 강바닥을 마름질하고
한 방울씩 한 방울씩 강물이 흐르게 하였지요
자연에게서 모든 것을 공짜로 얻은 몸이니
하늘에 땅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함인데
참지 못하는 죄와 만져보고 품의 욕망이
소녀의 눈을 흐리게 하고 가슴의 강물을 탁하게 합니다
어느 시간쯤이면 그런 허수아비 굴레에서 벗어날까요
어느 시간쯤이면 핑계 아닌 핑계를 잊을까요
신경을 바짝 썼더니 몸은 좀 쉬자 합니다
소녀에게 약을 먹고 지내느냐 물으시었지요?
무어라 대답을 하올까요
그냥 "밥 잘 먹고 잘 지냅니다^^"
이렇게만 말하고 싶음입니다
소녀가 님의 가슴을 느끼는 날에
소녀의 가슴에서 흐르는 강물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샘을 모으고 모은
강물소리가 흐르도록 빗기고 또 빗기겠습니다
하루아침에 샘이 이루어지거나 이끼를 자라게 할 순 없지만
드리워진 탁한 물을 입술로 마시고 마셔
다시 가슴으로 흐르게 하면 아니 되올런지요
붉은 노을이 가득한 당신의 강가에 서며
님의 꿈길을 보듬습니다.
푸른하늘 아래서 / 김 난 석
나는야
네 어깨에 묻은 손자국
그것은 외면하마
오직 청아한 눈빛 숨어 내 보일 듯
드러내어 감출 듯
천년을 두고 표정 하는
불변(不變)만 바라보마
억지로 끌려간 기구한 운명
그것은 외면하마
다만
길게 늘어 뺀 목을 오므릴 듯 열어
임을 부르는 지조만 들으려마
난야
네 주인이 사시장철 바뀌고 있음은
외면하마
오직
동가(東哥)에서도 서가(西哥)에서도 자기(磁器)일 뿐인
네 속내만 들여다보마
겨드랑이에 끼고 사타구니에 끼고
체온을 나누려 한들 데워지지 않는 냉랭함
그것을 투명한 눈망울로 응시하마
그러면 나는야
네 어깨엔 내 눈망울이
내 눈망울엔 청아한 네 어깨의 눈빛이 서늘하게 자리 할 게다.
(졸시 '청자, 그 빛과 그늘' 전문)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게 있다
떼어내려 해도 떼어낼 수 없는 게 있다
내 흔적, 내 살점인 것을
모두 다 외면해야 하나, 다 함께 사랑해야 하나
그것이 고민일 때가 있다
다 가지려해도 다 가질 수 없는 게 있다
모두 사랑하려해도 모두 사랑할 수 없는 게 있다
그래서 괴로울 때가 있다
세상엔 모두가 내 것인 것은 없고
모두가 내 것이 아니랄 것도 없으니
그것은 내남없이 마찬가지여서
삶의 주체가 혼이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좋으리라
그 혼이란 것이야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허허하게 존재하는 것일 테니까
소녀야
나는 이렇게 허공에 대고 말할 뿐이지만
허공도 허공만은 아니니
이젠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아도 좋으리라
거기엔 주인이랄 것도 주인이 아니랄 것도 없으니
밀려드는 검은 구름은 하얀 손으로 밀어내면서
파아란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아도 좋으리라
그러다가
싹이 터져 나올 것들을 가만히 뿌려놓고
다시 하얀 구름으로 덮어놓은 뒤에
또 바라보아도 좋으리라
둘이 마주보는 것이나 둘이 함께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인고로.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놀라운 것이 이 세상에 둘이 있으니
하나는 가슴 속의 성성한 이성이요
또 하나는 머리 위에 별이 총총한 하늘이라 하느니
(임마누엘 칸트)
의지의 날개 잃은 새여!
애착은 또 다른 새의 날개를 꺾는 것이라네.
강가에 피어난 장미를 바라본다
뜨거운 여름의 담금질을 이겨내서인지
가을의 찬 서리를 예비해서인지
꽃잎은 온통 진홍으로 붉다
잎에 올라 앉은 저 볕들을 툭툭 떨어내어
하얀 보자기에 늘어놓으면
어느 것은 석류알 처럼 반짝이기도 하고
어느 것은 루비알 처럼 빛나기도 하겠지만
또 어느 것은 서러움에 가시바늘로 솟아오르리라
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이의 생각일 뿐
장미는 홀로 하늘을 바라볼 뿐이거나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오로지 장미임을 노래할 뿐이다
무엇을 움켜쥐려 할 것도 없이 나를 지키며
이렇듯 맑은 날엔 빈 하늘을 바라보자
그러다가 강물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 보내자
꽃잎 하나에 그리움도 싣고
꽃잎 하나에 아쉬움도 싣고
멀리 저 멀리로...
첫댓글 난석님~
강가에 피어난 장미처럼 아름답고 숭고한 시에서
뜨거운 여름의 담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꽃잎 하나에 그리움과 아쉬움을 보내야만 했네요.
네에 그랬답니다.
이제 여름맛이 나네요.
난석 선배님의 귀하고 아름다운 글속에
,자연을 보고 느끼고 사랑을 찿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건필을 바랍니다
고마워요 민정여사.
목이나 어서 낫길 바랍니다.
참 아름다운글 제맘에도 강물이 흐르는듯합니다 ^^
부끄럽습니다.^^
난석님
멋진글에 퐁당 빠젔다가갑니다
아이구우 고맙습니다.^^
특히나 장미에대한 글
너무 아름답게 쓰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무엇을 움켜쥘 것도 없이 나를 지키며
이렇듯 맑은 날에 빈하늘을 바라보자
그러자 강물에 몸을 맡기며 떠내려 보내자
꽃잎 하나에 그리움도 싣고
꽃잎 하나에 아쉬움도 싣고
멀리 저 멀리로...'
글이 너무 아름다워 옮겨봅니다
이리 살기를 기원하면서...
늘 건강하세요
네에 낭만님 글은 얼마나 좋은데요.^^
아름다운 글에
풍덩 빠져서 잠시 머물다 갑니다~~^^
고마워요.
앞으론 빠질것같으면
시스루룩 말고 두터운 청바지를 입어요.
나야 괜찮지만 남들ㅇ보기에~^^
어흠!!
칸트의 묘비명에 있다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 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평생을 살아도
근처에 이르지 못할
위대한 철학자의 말...
다방면의 인문학을
두루 섭렵하시는 난석 님은
별과 도덕률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실까?
완전 우문현답을 드려 봅니다~^^
글을 따라가긴 힘들지만
잘 읽어 봅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두용님..
칸트가 그렇게 위대한 말을 남겼다지만
저는 칸트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ㅎ
칸트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재고 재고 하다가
결혼도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 결혼도 하고, 풋내 나는 사랑도 하고 있으니까요.
이건 뭐 웃자고 해본 소리랍니다.
또 짱돌 날아올라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