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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안녕하십니까, 15-16시즌이 막 개막한 시점에 조금 뜬금없이(?) 브루클린 네츠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시리즈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지난 1월경에 보스턴 셀틱스의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시리즈를 연재한 뒤 근 10개월 만인데요, 그간 개인 사정 등으로 몇 달간 작업을 쉬어야 했고, 또 기본적으로 시간적 여유 자체가 잘 나지 않다보니 진행이 많이 지지부진해진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1년에 서너 프랜차이즈 정도는 연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1년에 두 프랜차이즈도 버겁네요.
무척 느린 연재 속도에 그다지 흥미로운 주제도 아니지만 나름 개인 취미로 삼아서 연재는 계속 진행해 볼 예정입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겠죠.
시리즈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래 랭킹부터 죽 선수를 소개하는 방식이고요, 역시 5개 포지션 별로 나누어 연재가 진행 됩니다. (PG > SG > SF > PF > C 순입니다.)
지난 보스턴 시리즈와 거의 비슷한 패턴의 글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요, 전 시리즈에서는 (각 프랜차이즈의 총 연차 / 5)까지 기본 랭킹을 매기고, 순위 밖의 선수들은 “Honorable Mention”, “Brief Mention” 등으로 구분해서 간단한 소개를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본 랭킹을 보다 확장하여 (각 프랜차이즈의 총 연차 / 5)까지 “메이저 랭킹”이란 명목으로 소개하고, 메이저 랭킹과 동수(同數)만큼 그 아래 순위를 “마이너 랭킹”이란 명목으로 소개하여 본 랭킹에 포함시켰습니다. 뭐 말은 거창하지만 기존의 “Honorable Mention”, “Brief Mention”에 해당하는 선수들까지 랭킹을 매겨서 좀 더 랭킹의 숫자를 늘린 정도에 불과합니다.
순위 매기기라는 것 자체가 필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될 수 밖에 없으며, 포지션 규정이라는 것 자체도 모호한 부분들이 많다보니 글 안에 잘못된 내용, 타당치 못한 주장들이 산재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류 및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아무쪼록 가감 없이 지적해주시면 적극적으로 피드-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브루클린 네츠는 ABA 시절인 67-68시즌부터 지난 14-15시즌까지 총 4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48 나누기 5를 해서(소숫점 이하는 버림) 1위부터 9위까지는 “메이저 랭킹”으로, 10위부터 18위까지는 “마이너 랭킹”으로 구분해 소개하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본 시리즈의 간단한 범례 및 네츠 프랜차이즈의 간략한 역사 소개를 통해 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범례
- 이 글의 랭킹은 기본적으로 아랫 순위부터 소개됩니다.
- 위 글 내의 모든 스탯(기본적인 신체 사이즈 포함)은 바스켓볼 레퍼런스(www.basketball-reference.com) 사이트의 정보를 기준으로 참고, 제시하였습니다.
- 스탯 정보는 주요 1차 스탯과 일부 2차 스탯을 기재하였습니다. 1차 스탯은 득점(PT), 리바운드(RB), 어시스트(AS), 블록슛(BK), 스틸(ST), 출장시간(MIN)의 총계 및 평균치, 야투성공률(FG%), 3점슛성공률(3PT%), 자유투성공률(FT%), 3점슛 성공개수(3PTM)까지 수록하였습니다. 턴오버, 개인파울, 오펜/디펜리바 등의 정보는 생략하였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차 스탯은 가장 대표적인 PER와 윈쉐어(WS)만 수록하였습니다.
- 주요 스탯 외에 해당 선수의 신체 사이즈(키와 체중), 포지션, 연차(Yrs), 출장경기수(Games), 활동한 시즌 기간(Season) 정보도 수록하였습니다. 포지션별 랭킹인데 포지션 정보가 중복해 들어간 이유는 두 포지션을 넘나드는 선수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즉 경우에 따라 세컨드 포지션까지 표시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즌의 표기는 파이널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예: 99-00시즌은 “00”으로 표기함)
- 선수들의 주요 수상경력도 기재하였습니다. 단, 올스타 MVP 등과 같이 직접적인 선수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상 실적은 제외했습니다. 이밖에 올스타 선정 횟수, 우승 횟수도 병기하였습니다.
- 각 스탯의 해당 프랜차이즈 내 랭킹도 첨부하였습니다. 이번 브루클린 네츠 프랜차이즈의 경우, 3점슛 개수 및 3점슛율은 Top12까지, 나머지 스탯들은 Top15까지 랭킹을 매겼습니다.
- 선수에 대한 소개는 해당 프랜차이즈 내에서의 활약상을 위주로 기술하였으며, 따라서 다른 팀에서의 활약상 등은 가급적 생략하거나 짧게 요약하였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랭킹이 올라갈수록, 마이너 랭킹보단 메이저 랭킹일수록 선수 소개의 분량이 많고 자세합니다.
- 랭킹 밖의 선수들은 “Honorable Mention”이란 명목으로 랭킹 소개 끄트머리에 이름만 간단하기 명기하였습니다.
브루클린 네츠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랭킹 소개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브루클린 네츠 프랜차이즈의 간단한 역사를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브루클린 네츠는 ABA 리그가 출범한 67-68시즌에 “뉴저지 어메리칸즈(New Jersey Americans)”란 이름으로 ABA에서 창단한 프랜차이즈로, 76-77시즌부터 NBA 리그로 편입되었으며, 지난 시즌까지 총 48년의 프랜차이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승 횟수는 ABA 시절에 2차례 있었으며, 아직 NBA에서는 우승 경력이 없고 준우승만 2회 했죠.
뉴저지 어메리칸즈는 창단 이듬해인 68-69시즌에 프랜차이즈를 인근 대도시인 뉴욕으로 옮기며 “뉴욕 네츠(New York Nets)”가 되었습니다. “네츠(Net)”라는 구단명은 농구골대의 “그물”을 가리키며, 또한 뉴욕에 소재한 기존의 메이저 스포츠 구단인 MLB의 뉴욕 메츠(Mets), NHL의 뉴욕 제츠(Jets)와 라임을 맞춘 것이기도 하죠.
뉴욕 네츠는 초창기에 슈퍼스타 릭 배리와 올스타 가드 빌 멜치오니, 건실한 센터 빌리 폴츠 등을 앞세워 71-72시즌에 파이널까지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그 후 배리는 NBA로 리턴했지만, 네츠는 73-74시즌에 슈퍼스타 줄리어스 어빙의 영입에 성공하며 프랜차이즈 커리어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죠. 신임 케빈 로어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네츠는 74 파이널에서 유타 스타스(Utah Stars)를 물리치고 감격의 첫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이듬해에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스피리츠 오브 세인트루이스(Spirits of St. Louis)에게 충격의 업셋 패배를 당하며 백투백 우승에 실패했지만, 절치부심하며 전력을 재정비한 네츠는 76 파이널에서 어빙과 존 윌리엄슨 등의 활약으로 덴버 너게츠를 누르고 징검다리 우승을 차지했죠.
한편 ABA가 NBA와의 경쟁에 밀린 끝에 결국 76년을 끝으로 해산해버리자, 네츠는 NBA로의 편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리그 가입금 및 뉴욕 닉스측이 요구한 무리한 프랜차이즈 사용료 부담에 시달리며 재정난에 허덕여야 했고, 결국에는 슈퍼스타 어빙을 필라델피아 76ers로 현금 트레이드해야만 했죠. 77-78시즌에는 연고지를 뉴욕에서 뉴저지로 옮긴 네츠는 70년대 말까지는 팀 성적이 신통치 못했으나, 80년대 초반에 벅 윌리엄스를 주축으로 전력을 갖추어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중상위권 팀으로 도약했고, 84 플레이오프에서는 디펜딩 챔프 필라델피아를 업셋하며 2라운드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후 80년대 후반에 잠시 암흑기에 허덕이다가 90년대 초에 들어 데릭 콜먼, 케니 앤더슨 등 드래프트로 지명한 영건들을 내세우며 동부의 신흥 강호로 떠올랐죠. 하지만 에이스 드라젠 페트로비치의 사망, 척 데일리 감독의 사임 등을 겪은 후 점차 팀이 와해되어버렸고, 90년대 중, 후반에는 다시금 성적 부진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01-02시즌을 앞두고 당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제이슨 키드를 영입한 후, 네츠는 일대 반전을 보여주며 동부 최강팀으로 거듭났죠. 그래서 02년과 03년에 연달아 파이널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02년에는 샤킬 오닐의 L.A 레이커스에게, 그리고 03년에는 팀 던컨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각각 패하며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죠. 이후 네츠는 키드와 리차드 제퍼슨, 빈스 카터 등을 내세워 동부에서 꾸준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 다시금 내리막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키드, 제퍼슨 등 주축 선수들을 팔아넘기며 리빌딩에 돌입하는 한편, 브루클린으로의 연고지 이전도 추진하게 되죠.
한편 러시아의 갑부 미하일 프로호로브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다시금 활기를 띤 네츠는 유타 재즈로부터 올스타 가드 데런 윌리엄스를 영입하며 등 팀 재건에 박차를 가했고, 12-13시즌에는 연고지를 본격적으로 브루클린으로 이전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형 트레이드와 FA 재계약 등을 통해 고액 연봉의 스타들로 구성된 쟁쟁한 로스터를 구성했죠. 그 결과 플레이오프 무대에도 다시금 발을 내밀게 되었지만, 구단주가 퍼부은 막대한 투자비용에 비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운 성과였습니다. 결국 현재 네츠는 현재 다시금 팀 정비에 나서며 사실상 리빌딩 모드에 돌입한 상태로, 오프시즌에 재계약한 에이스 브룩 로페즈를 중심으로 재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랭킹 소개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이너 랭킹 (18위~10위)
18위
#_10 / #_14 Clarence "Foots" Walker
4시즌(81-84), 231경기, 4.9득점, 1.8리바운드, 4.3어시스트, 1.2스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베테랑 플레이메이커 클레어런스 “풋츠” 워커는 80-81시즌에 트레이드로 뉴저지 네츠에 합류했습니다. 첫 해에는 부상으로 41경기 출전에 그친 그는 이듬해인 81-82시즌에는 건강하게 주전으로 뛰면서 5.9득점, 5.2어시스트를 기록했죠. 철저한 선패스 마인드를 지녔고 뛰어난 라커룸 리더이기도 한 그는 82-83시즌을 마치고 달라스 매버릭스로 이적했다가 이내 방출되어 다시 네츠로 돌아왔고, 한 시즌을 더 뛴 뒤 은퇴했습니다.
17위
#_5 John Bagley
2시즌(88-89), 150경기, 9.9득점, 2.7리바운드, 5.8어시스트(10th), 1.2스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수년간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었던 존 배글리는 트레이드를 통해 87-88시즌에 뉴저지 네츠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펄 워싱턴을 밀어내고 팀의 주전 1번 자리를 꿰차며 시즌 평균 12득점, 5.8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오프시즌에 네츠와 다년 계약도 체결했죠. 하지만 이듬해 그는 전문 수비수인 레스터 코너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고, 결국 시즌을 마치고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16위
#_1 Chris Childs
3시즌(95-96, 03), 143경기, 9.3득점, 2.2리바운드, 5.5어시스트(12th), 83.2% 자유투성공률(12th)
하부 리그를 전전하던 크리스 차일즈는 94-95시즌을 앞두고 뉴저지 네츠에 합류하며 리그에 데뷔했습니다. 뛰어난 외곽슈터이자 터프한 수비수였던 그는 95-96시즌에는 주전 포인트가드로 깜짝 발탁되어 평균 12.8득점, 7어시스트를 기록해 주가를 높였고, 결국 오프시즌에 뉴욕 닉스와 FA 계약을 맺으며 네츠를 떠났죠. 이후 뉴욕, 토론토에서 활약하던 그는 커리어 말년인 02-03시즌에 친정팀 네츠로 복귀해 잠시 뛰다가 은퇴했습니다.
15위
#_1 Kevin Porter
1시즌(78), 74경기, 16.2득점, 2.7리바운드, 10.8어시스트, 1.6스틸
70년대에 패스의 달인으로 이름을 떨친 케빈 포터는 77-78시즌 초반에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서 뉴저지 네츠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발군의 패스 실력을 뽐내며 그 해 리그 어시스트 1위(평균 10.2개)에 올랐고, 대 휴스턴 전에서는 무려 29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종전에 밥 쿠지가 세운 기록(28개)을 경신하기도 했죠. (이후 이 기록은 스캇 스카일스가 30개로 경신함) 그는 네츠에서 단 한 시즌만 뛴 채 FA가 되어 친정팀 디트로이트로 떠났으며, 네츠는 대신에 보상 선수로 에릭 머니를 받았습니다.
14위
#_14 Kelvin Ransey
3시즌(84-86), 240경기, 8.6득점, 1.6리바운드, 4.5어시스트, 82.0% 자유투성공률
83-84시즌 트레이드로 뉴저지 네츠에 합류한 켈빈 랜시는 주전 포인트가드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이 약물 재활로 빠진 동안 주전 자리를 그럭저럭 메워주었으나, 이듬해 리차드슨이 완벽히 부활하자 다시 벤치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돌파력과 스피드가 장점이었던 그는 벤치 가드로 무난히 활약했지만, 주전에서 밀려난 후에는 점차 농구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죠. 결국 그는 85-86시즌을 끝으로 28살의 나이에 조기 은퇴했으며, 이후에는 종교에 귀의해 목회자로 활동했습니다.
13위
#_15 Lester Conner
3시즌(89-91), 199경기, 8.2득점, 3.4리바운드, 5.3어시스트(13th), 2.0스틸(8th)
88-89시즌에 뉴저지 네츠로 합류한 레스터 코너는 특유의 끈질기고 악착같은 수비력을 인정받아 존 배글리를 밀어내고 이내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한편 그는 오프시즌에 네츠와 다년 계약까지 맺었으나, 이듬해에는 루키 무키 블레이락과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여야 했죠. 결국 네츠는 무키를 주전 포인트가드로 낙점했고, 코너는 90-91시즌 도중에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리그 여러 팀에서 어시스턴트 코치직을 역임했습니다.
12위
#_15 Eddie Jordan
4시즌(78-81), 229경기, 11.8득점, 2.7리바운드, 4.9어시스트(15th), 2.5스틸(2nd), 총 562스틸(8th)
70년대 말~80년대 초에 뉴저지 네츠에서 주전급 포인트가드로 활약한 에디 조던은 발군의 스피드로 인해 “패스트 에디”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특히나 스틸의 달인이었던 그는 78-79시즌(평균 2.5스틸)과 79-80시즌(평균 2.7스틸)에 잇따라 리그 평균 스틸 2위에 랭크되기도 했죠.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2000년대 초반에 친정팀 네츠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내기도 했고, 이후에는 워싱턴 위저즈의 감독직도 역임했죠. 현재 그는 모교인 러트거스 대학의 감독으로 재직 중입니다.
11위
#_10 Mookie Blaylock
3시즌(90-92), 194경기, 13.0득점, 3.4리바운드, 5.9어시스트(9th), 2.2스틸(5th), 총 1,143어시스트(14th)
무키 블레이락은 오클라호마 대학을 졸업하고 89 드래프트에 참가, 전체 12번으로 뉴저지 네츠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2년차 때인 90-91시즌부터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맡게 된 그는 특히 수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죠. 하지만 네츠는 91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으로 지명한 케니 앤더슨을 미래의 주전 포인트가드 감으로 낙점했고, 결국 블레이락은 92-93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됐습니다.
10위
#_10 Sam Cassell
3시즌, 102경기, 19.5득점(9th), 3.1리바운드, 7.6어시스트(4th), 1.6스틸(12th), 86.0%자유투성공률(5th), 20.8PER(6th)
메이저 랭킹 (9위~1위)
9위
#_12 Darwin Cook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3 | 184 | PG/SG | 6 | 464 | 81-86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4,699 | 1,056 | 1,970 | 176 | 875 | 11,593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10.1 | 2.3 | 4.2 | 0.4 | 1.9 | 25.0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45.6% | 20.8% | 75.7% | 45 | 14.2 | 20.8 | |
Awards | All-Star | Champ.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AS 5th / ST 2nd / Gms 9th / MIN 14th | |||||
Average | ST 9th | |||||
Others |
다윈 쿡은 포틀랜드 대학을 졸업하고 80 드래프트에 참가해 4라운드 전체 70번으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이내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뉴저지 네츠의 부름을 받으며 가까스로 로스터에 합류했고, 루키 시즌에 평균 두 자릿수 득점(11.2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죠. 이후 그는 1, 2번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두루 백업하며 네츠 벤치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고, 주전 라인업에 공백이 생길 때 마다 종종 땜빵 스타팅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82-83시즌에는 주전으로도 제법 출장하며 평균 13.2득점, 5.5어시스트, 2.4스틸(리그 5위)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기도 했죠. 그는 “Sparkplug (점화 플러그)”라는 별명답게 늘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앞 선에서 빼어난 스틸 솜씨를 자랑하며 한 경기 9스틸을 기록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데뷔 후 네 시즌 동안 단 1경기만 결장했을 정도로 꾸준했던 그는 프랜차이즈 역대 최장인 319경기 연속 출장 기록도 가지고 있죠.
한편 네츠는 86 드래프트에서 13픽으로 시라큐즈 대학의 포인트가드 펄 워싱턴을 뽑고 싶었지만, 앞서 12픽을 쥐고 있는 워싱턴 불레츠도 그를 노린다는 소식을 듣고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불레츠는 자신들이 펄 워싱턴을 뽑지 않는 조건으로 대신 네츠에게 쿡을 내줄 것을 요구했죠. 이로 인해 6년간 정든 네츠를 떠난 쿡은 이후 NBA 여러 팀과 이탈리아 리그 등을 전전했고, 은퇴 후에는 대학에서 어시스턴트 코치직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유소년 농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8위
#_34 Devin Harris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3 | 192 | PG/SG | 4 | 212 | 08-11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3,747 | 645 | 1,473 | 44 | 284 | 7,277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17.7 | 3.0 | 6.9 | 0.2 | 1.3 | 34.3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42.4% | 29.2% | 81.9% | 188 | 18.4 | 15.3 | |
Awards | All-Star | Champ. | ||||
1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AS 8th | |||||
Average | PT 14th / AS 6th / MIN 15th | |||||
Others | PER 11th |
데빈 해리스는 달라스 매버릭스에서 데뷔한 후 주전과 후보를 두루 오가며 유망주 가드감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한편 2000년대에 네츠는 01-02시즌부터 6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동부의 대표 강팀이었으나, 07-08시즌에는 전반기에 9연패를 당해 팀 분위기가 침체되며 플레이오프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죠. 리빌딩의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 네츠 프런트는 슬슬 노쇠화의 기미가 보이던 간판스타 제이슨 키드를 매물로 딜을 추진했고, 달라스의 4년차 신성 가드 데빈 해리스를 그 타겟으로 노렸습니다. 결국 07-08시즌 도중 네츠가 키드를 달라스로 보내는 대신에 해리스와 두 장의 미래 1라운드 픽을 얻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대형 트레이드가 일어났죠.
키드를 대신해 네츠의 주전 포인트가드로서의 중책을 맡게 된 그는 이듬해인 08-09시즌에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본래부터 걸출한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자랑하던 그는 공격에서 좀 더 많은 롤을 부여받게 되자 과감한 돌파와 활발한 속공 가담을 바탕으로 한층 향상된 득점력을 뽐냈죠. 평균 21.3득점, 6.9어시스트를 기록한 그는 생애 첫 올스타 선발의 영예를 안았으며, MIP(기량 발전상)를 두고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대니 그레인저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나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09-10시즌 네츠는 개막 후 18연패의 수렁에 빠지는 등 겨우 시즌 12승에 그치며 리그 바닥권으로 추락했고, 해리스 역시 어깨와 발목 부상에 시달리며 지난 시즌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결국 리빌딩의 항로를 다시 짜기로 한 네츠는 10-11시즌 도중에 검증된 스타 포인트가드 데런 윌리엄스를 데려왔고, 대신 해리스와 루키 데릭 페이버스, 2개의 미래 1라운드 픽을 유타로 보냈습니다. 이후 그는 유타, 애틀란타를 거쳐 현재는 친정팀 달라스에서 백업 가드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7위
#_20 Michael Ray Richardson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5 | 189 | PG/SG | 4 | 208 | 83-86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3,357 | 1,029 | 1,410 | 68 | 552 | 7,018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16.1 | 4.9 | 6.8 | 0.3 | 2.7 | 33.7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45.9% | 23.2% | 75.1% | 51 | 17.5 | 16.3 | |
Awards | All-Star | Champ. | ||||
1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AS 9th / ST 9th | |||||
Average | AS 7th / ST 1st | |||||
Others |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은 80년대 초에 뉴욕 닉스에서 뛰면서 세 번이나 올스타에 오른 당대의 라이징 스타였습니다. “슈거 레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빼어난 돌파력과 기발한 패싱 센스를 자랑했으며, 락다운 디펜더이자 스틸의 달인이기도 했죠. 그는 팬들의 이목을 끄는 스타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멘탈에 문제가 많은 사고뭉치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82-83시즌 도중 뉴저지 네츠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슬리피 플로이드, 미키 존슨을 내주는 대가로 이 말 많고 탈 많은 올스타 가드를 영입했죠. 하지만 그와 네츠의 만남은 초장부터 꼬였습니다. 네츠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첫 시즌을 마친 후 그는 코카인 중독임이 밝혀졌고, 이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재활을 거듭하다가 여의치 않아 중도에 팀에서 방출되기도 했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재활을 마치고 다시 네츠와 계약을 맺어 83-84시즌 도중 컴백한 그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네츠가 디펜딩 챔피언 필라델피아 76ers를 상대로 기적같은 업셋을 연출하는 데 1등 공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84-85시즌, 그는 평균 20.1득점, 8.2어시스트, 3스틸(리그 1위)을 기록하며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완전히 회복한 듯 보였고, 올스타 선발 및 올해의 복귀 선수 상(Comeback Player of the Year) 수상이라는 영광도 안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커리어는 끝내 비극으로 끝을 맺고 말았죠. 85-86시즌 도중 그는 코카인에 손을 대었다가 적발된 뒤 한 달간의 재활을 마치고 다시 팀에 복귀했지만, 이윽고 코카인에 취한 채 별거중인 부인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80년대 NBA는 선수들의 잇따른 마약 복용 파문으로 인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데이빗 스턴 총재는 이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강경한 대응에 나섰죠. 결국 세 번이나 코카인 복용으로 적발된 리차드슨은 마약 문제로 인해 리그에서 영영 퇴출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하부리그와 유럽 등지를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해 하부리그인 CBA 및 캐나다 리그 등에서 감독직을 역임했죠. 현재 그는 옛 동료 오티스 버드송과 함께 유소년 농구 캠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6위
#_33 Stephon Marbury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2 | 180 | PG | 3 | 172 | 99-01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3,963 | 525 | 1,398 | 23 | 221 | 6,672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23.0 | 3.1 | 8.1 | 0.1 | 1.3 | 38.8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43.7% | 32.2% | 80.8% | 234 | 21.7 | 19.2 | |
Awards | All-Star | Champ. | ||||
All-NBA 3rd Team (1) | 1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AS 10th | |||||
Average | PT 4th / AS 2nd / MIN 3rd | |||||
Others | 3PTM 11th / PER 3rd |
스테판 마버리는 90년대 중후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케빈 가넷과 함께 뛰며 신흥 영건 듀오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팀의 중심이 되고 싶어 했던 마버리는 가넷의 보조자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며 트레이드를 요청했죠. 결국 98-99시즌 도중 미네소타와 뉴저지 네츠, 밀워키 벅스 간에 서로 주전 포인트가드를 맞바꾸는 것을 골자로 복잡한 삼각 딜이 일어나, 미네소타의 마버리는 네츠로, 네츠의 샘 카셀은 밀워키로, 밀워키의 테럴 브랜던은 미네소타로 각각 이적했습니다. 마버리는 폭발적인 운동능력과 스피드, 현란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1:1 능력만큼은 당대 최고였죠. 또한 타고난 에이스 기질과 높은 프라이드를 바탕으로 클러치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는 강심장이었습니다. 다만 뛰어난 슈터가 아님에도 슛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고,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동료들을 단합시키는 리더 타입은 못되었죠.
네츠에서 마버리는 본인이 바라던 부동의 1옵션 에이스로 활약하며 매 시즌 평균 22득점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네츠의 성적은 썩 좋지 못했는데, 주전 센터 제이슨 윌리엄스가 다리 부상으로 조기 은퇴한 데에 이어 유망주 케리 키틀즈마저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는 등 부상의 악령이 계속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죠. 99-0시즌에 평균 22.2득점, 8.4어시스트의 활약으로 올-NBA 서드팀에 선발된 그는 이듬해인 00-01시즌에는 생애 첫 올스타에도 뽑히는 등 개인적인 영광은 충분히 누렸지만, 부상병동인 팀 네츠의 성적은 여전히 바닥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결국 반전을 꾀한 네츠는 01-02시즌을 앞두고 과감하게 마버리를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하는 대신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인 제이슨 키드를 영입했죠. 이후 피닉스, 뉴욕 닉스 등에서 활약한 마버리는 말년에 기량 저하와 동료들과의 불화로 맘고생을 많이 겪기도 했습니다. 08-09시즌을 끝으로 NBA 커리어를 청산하고 중국의 CBA 리그로 진출한 그는 소속팀 베이징 덕스를 세 번이나 우승으로 이끌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고, 지금도 현역으로 뛰면서 만족스러운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5위
#_8 Deron Williams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3 | 200 | PG | 5 | 277 | 11-15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4,609 | 875 | 2,078 | 83 | 314 | 9,470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16.6 | 3.2 | 7.5 | 0.3 | 1.1 | 34.2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41.8% | 35.8% | 83.6% | 485 | 18.5 | 24.6 | |
Awards | All-Star | Champ. | ||||
1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AS 4th | |||||
Average | AS 5th | |||||
Others | FT% 10th / 3PTM 4th / PER 10th / WS 13th |
2000년대 후반에 유타 재즈에서 뛰면서 크리스 폴과 함께 리그 탑 포인트가드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데런 윌리엄스는 10-11시즌 도중 제리 슬로언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급기야 슬로언이 사임하는 사태까지 일어나자 그 역시 트레이드 블록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리빌딩을 위해 슈퍼스타가 필요했던 뉴저지 네츠가 데릭 페이버스+데빈 해리스+2개의 미래 1라운드 픽을 내주며 그의 영입에 성공했죠. 이적 첫 해에는 손목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던 그는 이듬해인 11-12시즌에는 평균 21득점, 8.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클래스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대 샬럿 밥캐츠 전에서는 프랜차이즈 기록(ABA 시절 제외)인 한 경기 57득점을 넣기도 했습니다. 한편 오프시즌에 FA가 된 그를 두고 원 소속팀 네츠와 그의 홈타운인 달라스 매버릭스 간에 치열한 영입 경쟁이 벌어졌죠. 마침 연고지를 브루클린으로 옮긴 네츠는 새로운 팀을 대표할 간판스타가 꼭 필요했기에 데런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공격적인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네츠는 애틀란타 호크스의 에이스 조 존슨의 영입에 착수하는 한편, 내부 FA인 제럴드 월러스와의 재계약도 동시에 추진하며 데런에게 강하게 어필했죠. 결국 데런은 네츠에 잔류하며 5년 100mil 규모의 맥시멈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편 데런의 잔류와 조 존슨 영입 등으로 전력이 강해진 네츠의 성적은 수직 상승했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데런은 발목 부상에 시달리며 개인 기량이 수직 하강하고 말았죠. 12-13시즌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발목에 집중 치료를 받은 그는 후반기에 일시적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끝내 완치되지 못한 발목은 계속 이상을 일으키며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본래 훌륭한 체격 조건과 운동능력, 슈팅력, 볼핸들링 기술을 두루 갖췄으며, 영리한 리딩과 에이스로서의 득점 본능까지 겸비한 엘리트 포인트가드였죠. 하지만 발목 부상 이후로는 공수에서 위력이 반감하며 그저 평범한 포인트가드로 전락해버렸습니다. 13-14시즌 후에 발목 수술까지 받았음에도 끝내 클래스를 회복하지 못한 그는 14-15시즌에는 중도에 재럿 잭에게 밀려 잠시 벤치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며, 라이언 홀린스 감독과도 극심한 불화를 보였죠. 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남은 2년 43mil의 계약을 바이-아웃하며 끝내 네츠와 결별했고, 이후 달라스 매버릭스와 새로이 2년 10mil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4위
#_7 Kenny Anderson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0 | 168 | PG | 5 | 304 | 92-96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4,655 | 1,026 | 2,363 | 57 | 476 | 9,962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15.3 | 3.4 | 7.8 | 0.2 | 1.6 | 32.8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40.9% | 32.5% | 81.0% | 183 | 17.4 | 23.0 | |
Awards | All-Star | Champ. | ||||
1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AS 3rd / ST 11th | |||||
Average | AS 3rd / ST 13th | |||||
Others | WS 15th |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미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케니 앤더슨은 조지아 공대를 2학년만 마치고 91 드래프트에 참가해 전체 2번으로 뉴저지 네츠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는 무키 블레이락의 백업을 맡았던 그는 블레이락이 트레이드되자 2년차인 92-93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꿰찼죠. 평균 16.9득점, 8.2어시스트로 성공적인 주전 데뷔를 한 그는 안타깝게도 후반기에 손목 부상으로 시즌-아웃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93-94시즌 건강하게 컴백한 그는 평균 18.8득점, 9.6어시스트(리그 4위)의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팀 동료 데릭 콜먼과 함께 팬 투표로 동부지구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했죠. 어린 시절 뉴욕 뒷골목에서부터 연마한 그의 드리블 스킬은 그를 당대 최고의 왼손잡이 볼 핸들러로 불리게 만들었고, 오른손잡이 최고 볼 핸들러인 팀 하더웨이와 종종 병칭되곤 했습니다. 그는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를 헤집으며 골밑을 뒤흔들었고, 돌파 도중 뿌리는 날카로운 킥-아웃 패스로 동료들에게 많은 어시스트를 제공해주었죠. 또한 압박 수비에 능한 준수한 스틸러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와 데릭 콜먼은 리그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가드-빅맨 듀오로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한껏 받았죠.
하지만 네츠의 영건 듀오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93-94시즌을 마친 후 명장 척 데일리 감독이 사임하고 부치 비어드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앤더슨과 콜먼은 시즌 내내 비어드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분란을 초래했죠. 집안싸움으로 엉망이 된 분위기 속에 팀 성적은 하위권으로 추락했고, 급기야 콜먼은 필라델피아 76ers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앤더슨도 구단의 연장 계약 요청을 거부하며 앞으로 네츠와 함께 할 뜻이 없음을 천명했죠. 결국 95-96 시즌 도중 네츠는 오프 시즌에 그냥 FA로 팀을 떠날 것이 확실한 앤더슨을 샬럿 호네츠로 트레이드하는 대신에 켄달 길, 칼리드 리브스를 영입하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후 앤더슨은 포틀랜드, 보스턴 등 여러 팀들을 떠돌았지만 네츠 시절의 포스는 결코 보여주지 못한 채 평범한 커리어를 보내다가 04-05시즌을 끝으로 NBA 커리어를 마쳤죠. 안타깝게도 그는 고급차를 수집하는 사치스런 취미와 자산 관리 실패 등으로 인해 선수시절 번 돈을 거의 탕진했다고 합니다.
3위
#_14 Brian Taylor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2 | 185 | PG/SG | 4 | 271 | 73-76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3,804 | 811 | 1,002 | 70 | 500 | 8,887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14.0 | 3.0 | 3.7 | 0.3 | 2.4 | 32.8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49.9% | 30.7% | 75.4% | 54 | 14.8 | 22.0 | |
Awards | All-Star | Champ. | ||||
All-ABA 2nd Team (1) | 2 | 2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ST 10th | |||||
Average | ST 3rd | |||||
Others | FG% 12th |
프린스턴 대학 출신의 브라이언 테일러는 3학년만 마치고 얼리 엔트리로 프로 진출을 선언했고, NBA의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72 드래프트에서 그를 2라운드 23번으로 지명했습니다. 하지만 뉴저지 토박이인 그는 홈타운과 가까운 ABA의 뉴욕 네츠와의 계약을 선택했죠. 당시 네츠에는 올스타 포인트가드 빌 멜치오니와 올-루키 퍼스트팀 경력의 2년차 존 로체라는 쟁쟁한 가드진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키 테일러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탄탄한 수비력을 인정받아 제법 많은 출전시간을 얻어내며 시즌 평균 15.3점, 2.8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신인왕 수상의 영광도 안았죠. 이듬해인 73-74시즌, 그는 멜치오니를 벤치로 밀어내고 당당히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차지하며 그 해 네츠의 첫 우승에도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74-75시즌 그는 ABA 리그 스틸왕(평균 2.8개)에 올랐으며, 올스타 및 올-ABA 세컨드 팀, 올-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선발되면서 일약 리그의 스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죠.
테일러는 물샐 틈 없는 강력한 대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백코트 디펜더로 이름을 날렸으며, 아울러 발군의 스피드와 볼 핸들링 기술을 자랑했습니다. 또한 준수한 슈팅력도 겸비하여 당시 보기 드물게 3점 슈터로도 활약했죠. 75-76시즌, 그는 부상으로 30경기를 결장해야 했지만 여전히 올스타 및 올-디펜시브 퍼스트팀에 뽑혔고, ABA 리그 3점슛 성공률 1위(42.1%)에도 올랐습니다. 그리고 네츠가 그해 파이널에서 덴버 너게츠를 물리치고 징검다리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그는 두 번째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죠. 한편 그 시즌을 끝으로 ABA 리그가 재정난으로 해산하자, 네츠는 NBA 리그에 입성하며 팀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테일러와는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오프시즌에 네츠가 캔자스시티 킹스의 올스타 가드 네이트 아치볼드를 영입하기 위해 그와 짐 어킨스, 2개의 미래 1라운드 픽을 묶어 트레이드를 감행했기 때문이죠. 이후 덴버, 샌디에이고 클리퍼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 그는 NBA에 3점슛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79-80시즌 이후에는 리그의 몇 안 되는 대표 3점 슈터로 활약했습니다. 81-82시즌 도중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서른 살의 나이에 프로에서 은퇴한 그는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으로 돌아가 남은 학업을 마치며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로는 교육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죠. 명문인 하버드-웨스트레이크 고교에서 10년간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현재 피닉스에 소재한 텔리오스 프리패러토리 아카데미의 전무 이사로 재직 중입니다.
2위
#_25 Bill Melchionni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1 | 165 | PG | 7 | 502 | 70-76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6,230 | 1,082 | 3,044 | 20 | 172 | 15,337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12.4 | 2.2 | 6.1 | 0.1 | 0.9 | 30.6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46.5% | 23.6% | 81.9% | 37 | 14.0 | 27.9 | |
Awards | All-Star | Champ. | ||||
All-ABA 1st Team (1) | 3 | 2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PT 13th / AS 2nd / Gms 6th / MIN 5th | |||||
Average | AS 8th | |||||
Others | WS 12th |
처음에는 NBA의 필라델피아 76ers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빌 멜치오니는 그가 루키였던 66-67시즌에 필라델피아가 우승함에 따라 행운의 반지를 따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는 1968년에 신생팀 피닉스 선즈로부터 확장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으나, 낯선 서부 도시로 가길 꺼려하며 NBA를 떠나 하위 리그인 EPBL에서 1년간 뛰었죠. 그러던 중 ABA의 뉴욕 네츠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아 69-70시즌부터 ABA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입단과 함께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꿰찼습니다. 그는 70-71시즌에는 평균 17.6득점 8.3어시스트(리그 1위)를 기록하며 올스타에 뽑혔고, 이듬해인 71-72시즌에는 평균 21득점 8.4어시스트(리그 1위)로 2년 연속 리그 어시스트왕을 차지하며 올-ABA 퍼스트팀에도 선발되었죠. 한편 그해 네츠는 에이스 릭 배리를 앞세워 파이널까지 진출했으나 끝내 인디애나 페이서스에게 2-4로 무릎을 꿇고 말았는데, 당시에 팀의 2옵션 멜치오니가 발목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게 뼈아팠습니다.
재빠르고 영리한 플레이메이커였던 멜치오니는 자신보다 늘 팀을 우선시하는 이타적이고 모범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으며, 정교한 외곽 슈터로도 이름을 날렸죠. 한편 72-73시즌에 수비가 좋은 루키 가드 브라이언 테일러가 점차 두각을 보여주자 멜치오니의 팀 내 비중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급기야 73-74시즌부터는 테일러에게 스타팅 자리까지 내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벤치 롤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을 희생했고, 라커룸에서 젊은 선수들을 잘 도닥이는 멘토 역할에 더욱 충실히 임했죠. 네츠는 새로 가세한 슈퍼스타 줄리어스 어빙의 압도적인 기량과 팀의 정신적 지주 멜치오니의 탁월한 리더쉽 등을 앞세워 74 파이널에서 유타 스타스를 누르고 프랜차이즈 첫 우승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75-76시즌에는 선수 겸 어시스턴트 코치로 뛴 그는 그해 또 한 번 우승의 기쁨을 맛본 뒤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곧바로 네츠의 경영진에 합류해 단숨에 GM 자리까지 올랐죠. 하지만 당시는 ABA의 파산으로 네츠가 NBA 리그로의 편입을 준비하며 한창 자금난에 허덕이던 시기였기에, 결국 그는 구단주의 로이 보우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어빙을 필라델피아 76ers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받는 대가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네츠의 GM 자리에서 물러난 후 금융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며, 현재는 은퇴하여 플로리다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죠. 한편 그의 등번호 #25은 은퇴 직후인 1976년에 네츠에서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1위
#_5 Jason Kidd
HT. | WT. | Pos. | Yrs | Games | Season | |
6-4 | 205 | PG | 7 | 506 | 02-08 | |
Total | PT | RB | AS | BK | ST | MIN |
7,373 | 3,662 | 4,620 | 135 | 950 | 18,733 | |
Average | PT | RB | AS | BK | ST | MIN |
14.6 | 7.2 | 9.1 | 0.3 | 1.9 | 37.0 | |
Others | FG% | 3PT% | FT% | 3PTM | PER | WS |
39.7% | 34.2% | 80.7% | 813 | 19.4 | 56.6 | |
Awards | All-Star | Champ. | ||||
All-NBA 1st Team (2), 2nd Team (1) All-Defensive 1st Team (2), 2nd Team (4) | 5 | |||||
Franchise Career Leader Ranking | ||||||
Total | PT 5th / RB 5th / AS 1st / ST 1st / Gms 5th / MIN 2nd | |||||
Average | AS 1st / ST 10th / MIN 5th | |||||
Others | 3PTM 1st / PER 9th / WS 2nd |
제이슨 키드는 90년대 말에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서 명성을 떨쳤고, 소속팀 피닉스 선즈를 매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습니다. 한편 뉴저지 네츠는 올스타 포인트가드 스테판 마버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팀 성적은 수년간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죠. 반등을 노린 네츠는 00-01시즌을 마치고 마버리와 키드, 두 올스타 포인트가드 간의 대형 스왑 딜을 성사시켰고, 키드는 엉겁결에 리빌딩 팀의 선장 역할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01-02시즌, 키드는 발군의 경기 조율 능력과 리더쉽을 바탕으로 팀의 젊은 코어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며 전년도 26승에 불과했던 팀 성적을 그 두 배인 52승으로 향상시켰고, 덕분에 네츠는 정규 시즌 동부지구 1위 자리에 등극했죠. 네츠의 놀라운 약진을 이끌며 평균 14.7득점, 7.3리바운드, 9.9어시스트를 기록한 키드는 강력한 MVP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아쉽게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팀 던컨에게 MVP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키드는 평균 득점을 5점 가까이 향상시키며(평균 19.6득점) 네츠를 파이널까지 이끌었지만, 안타깝게도 괴물 센터 샤킬 오닐이 이끄는 L.A 레이커스에 일방적인 스윕 패를 당하고 말았죠. 이듬해인 02-03시즌, 키드는 커리어-하이인 평균 18.7득점을 기록하며 네츠를 2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시켰지만, 이번에는 팀 던컨의 샌안토니오를 만나 2-4로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키드는 함께 뛰는 동료들의 능력을 십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죠. 그는 네츠의 얼리 오펜스를 전두 지휘하며 케년 마틴, 리차드 제퍼슨 등 젊고 운동능력 넘치는 속공 피니셔들에게 날카로운 어시스트를 뿌려줬고, 이들이 펼치는 쇼-타임 농구는 팬들의 이목을 한층 즐겁게 했습니다. 또한 백코트의 세 포지션을 다 막을 수 있는 특급 전천후 수비수였던 그는 올-디펜시브 팀에 단골로 이름을 올렸고, 포인트가드이면서도 여느 빅맨 못지않은 출중한 리바운드 능력을 뽐내며 리그 최고의 트리플-더블 제조기로도 불렸습니다. (통산 107개, 역대 3위) 다만 슈팅력이 다소 약해 “Ason Kidd(Jason에서 점프슛을 상징하는 ‘J’를 뺀 것)”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기도 했으나, 그래도 아크 너머에서 찬스가 나면 주저하지 않는 과감한 외곽슈터였죠.
키드는 02-03시즌을 마친 후 FA가 되어 한 때 샌안토니오 이적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결국 6년 맥시멈으로 네츠에 잔류하며 의리를 지켰습니다. 이후 그는 매 시즌 팀을 플옵에 올려놓았고, 04-05시즌 도중에는 슈퍼스타 빈스 카터가 합류하며 이른바 키드-카터-제퍼슨의 백코트 삼각 편대가 결성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후 네츠의 팀 성적은 계속 답보 상태에 머물렀고, 천하의 키드도 어느덧 노장이 되어 슬며시 노쇠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네츠는 리빌딩을 위해 07-08시즌 도중 그를 달라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시켰고, 대신 젊은 유망주 포인트가드 데빈 해리스를 영입했죠. 키드는 네츠에서 7시즌 동안 5번 올스타에 뽑혔으며, 올-NBA팀에 3차례(퍼스트2, 세컨드1), 올-디펜시브 팀에 6차례(퍼스트2, 세컨드4), 리그 어시스트왕에 2차례(02-03시즌, 03-04시즌) 이름을 올렸습니다. 10-11시즌에 달라스의 우승으로 생애 첫 반지를 차지하기도 한 그는 12-13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 곧바로 친정팀 브루클린 네츠의 감독으로 부임했죠. 초짜 감독임에도 팀을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이끌며 그 지도력을 인정받은 그는 현재 팀을 옮겨 밀워키 벅스의 감독으로 재직 중이며, 그의 등번호 #5은 2013년에 네츠에서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Honorable Mention
: Willie Somerset, Tiny Archibald, Pearl Washington, Keyon Dooling, Jordan Farmar, Jarrett Jack
종합 랭킹
Rnk. | Name | Yrs | Game | PT | RB | AS | BK | ST | WS | Season | All-star | Champ. | All-NBA/ABA Team | Main Awards | Uniform |
1 | Jason Kidd | 7 | 506 | 14.6 | 7.2 | 9.1 | 0.3 | 1.9 | 56.6 | 02-08 | 5 |
| 1st (2) 2nd (1) | All-Def. Team (2/4) | #_5 |
2 | Bill Melchionni | 7 | 502 | 12.4 | 2.2 | 6.1 | 0.1 | 0.9 | 27.9 | 70-76 | 3 | 2 | 1st (1) | #_25 | |
3 | Brian Taylor | 4 | 271 | 14.0 | 3.0 | 3.7 | 0.3 | 2.4 | 22.0 | 73-76 | 2 | 2 | 2nd (1) | ROY All-Def. Team (2/0) | |
4 | Kenny Anderson | 5 | 304 | 15.3 | 3.4 | 7.8 | 0.2 | 1.6 | 23.0 | 92-96 | 1 |
| |||
5 | Deron Williams | 5 | 277 | 16.6 | 3.2 | 7.5 | 0.3 | 1.1 | 24.6 | 11-15 | 1 |
| |||
6 | Stephon Marbury | 3 | 172 | 23.0 | 3.1 | 8.1 | 0.1 | 1.3 | 19.2 | 99-01 | 1 |
| 3rd (1) | ||
7 | Michael Ray Richardson | 4 | 208 | 16.1 | 4.9 | 6.8 | 0.3 | 2.7 | 16.3 | 83-86 | 1 |
| |||
8 | Devin Harris | 4 | 212 | 17.7 | 3.0 | 6.9 | 0.2 | 1.3 | 15.3 | 08-11 | 1 |
| |||
9 | Darwin Cook | 6 | 464 | 10.1 | 2.3 | 4.2 | 0.4 | 1.9 | 20.8 | 81-86 | |||||
10 | Sam Cassell | 3 | 102 | 19.5 | 3.1 | 7.6 | 0.3 | 1.6 | 10.9 | 97-99 | |||||
11 | Mookie Blaylock | 3 | 194 | 13.0 | 3.4 | 5.9 | 0.5 | 2.2 | 6.7 | 90-92 | |||||
12 | Eddie Jordan | 4 | 229 | 11.8 | 2.7 | 4.9 | 0.4 | 2.5 | 8.7 | 78-81 | |||||
13 | Lester Conner | 3 | 199 | 8.2 | 3.4 | 5.3 | 0.1 | 2.0 | 11.0 | 89-91 | |||||
14 | Kelvin Ransey | 3 | 240 | 8.6 | 1.6 | 4.5 | 0.1 | 1.0 | 9.2 | 84-86 | |||||
15 | Kevin Porter | 1 | 74 | 16.2 | 2.7 | 10.8 | 0.2 | 1.6 | 4.0 | 78 | |||||
16 | Chris Childs | 3 | 143 | 9.3 | 2.2 | 5.5 | 0.1 | 1.1 | 7.1 | 95-96, 03 | |||||
17 | John Bagley | 2 | 150 | 9.9 | 2.7 | 5.8 | 0.1 | 1.2 | 3.0 | 88-89 | |||||
18 | Foots Walker | 4 | 231 | 4.9 | 1.8 | 4.3 | 0.1 | 1.2 | 9.4 | 81-84 |
Epilogue
네츠의 포인트가드 랭킹은 1, 2위는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3, 4위간의 경쟁이 좀 치열했는데 앤더슨도 한창때 대단했지만 네츠에서 마지막 2년 동안 좋지 못한 애티튜드를 보여주었고, 테일러는 주로 ABA에서 활약하다보니 인지도는 앤더슨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2차례의 우승 때 주전 포인트가드로서 세운 공적을 높게 사서 앤더슨보다 위에 랭크시켰습니다.
이렇듯 네츠는 프랜차이즈 자체가 ABA에 뿌리를 두었고 또 ABA 시절에 우승 경력도 있다 보니 앞으로도 ABA에서 활동했던 다소 생소한 선수들이 종종 랭킹에 등장할 예정인데요, 이는 어디까지나 네츠 “프랜차이즈”의 랭킹이므로 ABA와 NBA 시절 간에 서로 차별을 두는 일 없이 되도록 공평하게 기준을 세워서 랭킹을 매기고자 했습니다. 오히려 ABA 시절이 프랜차이즈의 황금기다보니 더 프리미엄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구요. 이점 아무쪼록 양지해주시길 바랍니다.
네츠의 포인트가드 뎁스는 그럭저럭 훌륭한 편입니다. 랭킹 1위부터 8위까지가 모두 올스타에 뽑혔을 정도니까요. 중하위권에도 제법 좋은 선수들이 포진해있죠. 다만 얼짱형님이 메이저 랭킹에 들지 못한 게 아쉬운데 단기간의 임팩트는 훌륭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식스맨으로 꾸준히 활약한 다윈 쿡을 제치기에는 조금 모자라지 않나 싶었습니다. 사실상 카셀이 제대로 뛴 건 한 시즌에 불과하니까요. 뭐 2년 뒤에 네츠 프랜차이즈가 50주년이 되어 메이저 랭킹이 10위까지로 확대되면 무난히 메이저로 들어가겠지만요.
현역 중에는 현재 아너러블 멘션에 랭크되어 있는 재럿 잭이 이변이 없는 한 다음 시즌에는 마이너 랭킹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시리즈 첫 글인 네츠의 포인트가드편 랭킹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가급적이면 1주에 시리즈 2편 정도는 업데이트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Special Thanks to :
웹사이트
www.basketball-reference.com (레퍼런스는 사랑입니다♡)
en.wikipedia.org/wiki
netsmediaguide.com
기타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는 여러 사이트들...
도서
<From Julius to Jason: The Fall and Rise of the New Jersey Nets> by Guy Kipp (2003)
☞ 줄리어스 어빙 시절부터 제이슨 키드 시대까지 네츠의 역사를 잘 개괄해놓은 책으로,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책도 보고 신문도 검색할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입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억의 선수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앤더슨,카셀,마베리... 다들 참 개성 넘치는 선수들이었죠. 예상대로 뉴저지 올타임 No.1 포인트가드는 역시 제이슨 키드군요.
키드야 뭐 포지션을 넘어서 네츠 역대 최고 선수 타이틀을 어빙, 벅 윌리엄스랑 다투는 레벨이니까요...ㅋ
우와 대박이네요 이런 엄청난 퀄러티이 글이
잘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꾸벅)
넷츠의 1위 5위인키드와 데론은 넷츠와 끝이 썩 좋지 못하게 끝난게 아쉽죠. 지금도 넷츠팬들에겐 썩 좋지 못한 상태에서 얼굴봐야 하고. 거기다 7위 레이도 약물에 6위 마버리도 묘한 마인드의 소유자였다보니 뎁스를 떠나서 수맥이 흐른다는 넷츠팬끼리 농담이 농이 아닌듯ㅠ
그래도 뭐 키드는 최근까지 감독도 했었고...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긴 한데 그전에 콜먼이니 앤더슨이니 제이슨 윌리엄스니 이런 양반들에 비하면 그래도 '애'쪽에 훨씬 가깝다고 봐줘야겠죠. 데런은 정말 아쉽습니다. 하필 발목이 그 모양이 되서 클래스를 잃을 줄은... 네츠에 있을 때 좋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이 돌았고 끝내 바이-아웃으로 나가버렸으니 네츠 팬들은 정말 속터질 수 밖에요. 데런 데려온다고 데릭 페이버스 내주고 또 데런 FA일때 환심 산다고 제럴드 월러스랑 똥계약 맺고, 무리하게 조 존슨 영입해서 샐러리 터지고 막 그랬는데 본인은 감독이랑 대판 싸우고 재럿 잭에게도 밀리다가 결국에는 바이-아웃 퉁치고 나가버렸
으니...ㅠㅠ
참 넷츠 역사보면 좀... 불운이 있는 느낌...
네츠는 재능은 있는데 멘탈이 받쳐주지 못한 몇몇 스타들이 참 아쉬웠죠. 그래도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드래프트 하나는 참 잘 하는 팀이라는 겁니다. 하위권으로 추락했다가도 이내 드래프트 잘 해서 올라오고, 또 떨어졌다가도 다시 드래프트 잘해서 올라오고... 감독 복은 확실히 좀 없엇는데 래리 브라운, 척 데일리는 너무 짧게 머물렀고, 바이런 스캇, 로렌스 프랭크는 좀 범범했었죠. 감독상이 원체 받기 힘든 상이긴 하지만 48년 팀 역사상 단 한번도 감독상 수상자가 없었다는 게 참 아쉽죠.
@허슬 플레이어 드래프트를 아주 못하는 팀은 아닙니다. 전통 약팀도 아니고 가끔 잘하기는 하는데 가장 아쉬웠던게 NBA로 옮기면서 생긴 사건이죠. 어빙이 식서스로 가게 된 게 아쉬웠고. 이후 약간 팀이 미묘하게 아주 강팀이 잘 안되는 흐름을 타더라구요. 어서 NBA를 페이서스보다 먼저 우승하면 NBA 사상 첫 ABA와 NBA 전부 우승할수 있는 팀이 되는지라 기대 많이 하는 중입니다. ㅋㅋ
사실 nba 편입 이후로 넷츠의 역사는 빛이 든 시기가 거의 없었죠.
에이스로 나선 포인트 가드가 많았던 거도 이런 맥락이었고요. 지금이야 1번이 에이스인 것이 보편화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꿀리고 들어가는 사항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인물은 많아도 팀 성적들은 대체적으로 후졌던 듯 해요.
키드 시절도 합병 이후 nba 최저 승률 컨퍼런스 1위일 정도로.
네 뭐 그래도 백투백 준우승이라면 나름 의미있는 성과라고 봅니다. 준우승조차 못해본 프랜차이즈들도 아직 더러 있는 걸 보면요. 첫 준우승 후 나름 야심차게 추진한 무톰보 영입이 그만 본전도 못찾은 실패로 돌아간 게 뼈아팠다고 봅니다. 그때 센터 자리를 좀 더 잘 보완했었더라면 02-03시즌에 일낼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정규 시즌 승수는 오히려 더 떨어졌지만 03 플옵에서 동부 팀들을 파죽지세로 휩쓸고 파이널 진출할 때 포스가 제법 있었고, 나름 던컨 최전성기 때의 샌안을 상대로 파이널 2승까지 따냈으니... 마틴이 던컨을 상대로 맥을 못춘게 아쉬웠는데 던컨, 로빈슨을 좀 더 견제해줄만한 빅맨 자원이 더 있었음
해볼만한 파이널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네요. NBA 편입 후 가장 우승에 근접한 시기가 그때라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후 추진했던 모닝 영입까지 실패로 돌아가는 등(뭐 모닝은 나중에 빈스 카터 영입 카드로 나름 쏠쏠히 써먹긴 했지만...) 잇다른 빅네임 센터 영입의 결과가 너무 처참해서... 뭐 무톰보, 모닝 본인들에게도 네츠 시절은 잊고 싶은 흑역사겠지만요. 카터 데려와서 삼각편대 만들었을때에도 백코트는 강했지만 골밑에 한계가 있어서 웬지 빅3 시절 밀워키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도 아쉽습니다.
블레이락이 넷츠 소속이였던적이 있었군요..잘보았습니다.
무키의 네츠 시절의 로버트 패리쉬의 골든스테이트 시절 만큼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역사죠...ㅋ
너무 잼있게 잘 봤습니다~
네 감사드립니다^^
사진이 다 엑박이 떠서 재업했는데 이제는 잘 보일려나 모르겠네요...ㅠㅠ
수고하셨습니다.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이 제일 안타깝죠. 기량으로만 따지면, 매직과 아이재야 토마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장신 포인트 가드였는데...
정말 악마의 재능이었죠. 나중에 파포 나올때 언급되겠지만 데릭 콜먼도 그렇고, 정말 역대급 기량을 타고났음에도 멘탈 문제로 끝내 이를 다 발휘하지 못했던 악마의 재능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좋은 글 잘봤습니다ㅎ 빌 멜치오니가 인상적이네요. 실력에 인성까지. 저는 포가랭킹에서 멜치오니가 가장 빛나보입니다.
근데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이 '슈가 레이'로 불렸다는데 복싱도 그렇고 슈가는 화려한 별명인가 보네요ㅎ
멜치오니는 정말 "미스터 네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네츠팀을 사랑했고, 어찌보면 영구결번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 있죠. 다만 네츠가 NBA로 넘어갈 때 팀에서 멜치오니에게 온갖 뒤치닥거리를 떠넘기며 많이 힘들게 했고, 자기 손으로 어빙을 팔아야만 하는 끔찍한 현실에 멜치오니가 무척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하네요. 팀 입장에서 온갖 이미지 깎이는 일을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단장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이미지 희석시키려는 수작을 부린 셈이니... 결국 어빙을 떠나보낸 충격때문에 네츠 단장으로 오래 머물지 않고 농구계를 떠나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죠.
"슈가 레이"라는 별명은 순전히 복싱계의 전설 "슈가 레이 로빈슨"으로부터 유래한거구요, 슈가 레이 로빈슨 이후, 레이란 이름을 가진 스타에게 으레 붙는 호칭이 되었습니다. 역시 복싱 스타였던 슈가 레이 레너드도 마찬가지고, 레이 리차드슨 역시 미들네임 레이 덕에 "슈가 레이"가 되었으며, 또 "레이" 알렌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동명의 락밴드도 있죠. 모든 슈가 레이의 원조는 슈가 레이 로빈슨이고, 미국인들에게 "슈가"는 "레이"라는 이름 앞에 아주 자연스럽게 붙는 접두사나 마찬가지죠.
@허슬 플레이어 슈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많았군요. 저는 스포츠 스타에게만 붙이는 별명인줄 알았거든요ㅎㅎ
멜치오니와 슈가에 대해 자세히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