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태어남에 대하여 .................................................... 마광수
나는 타의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더 정확한 원인을 얘기하자면 부모가 한 섹스의
부산물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고통만 존재하는 이 풍진(風塵) 세상에 태어난 것을 늘
억울해 했다. 내가 태어나자고 자원한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세상에 내던져져 갖은 고생
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태어난 날은 1951년 4월 14일. 한국전쟁 중 1. 4 후퇴로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어느
이름 모를 시골 객지에서 어머니는 나를 의사나 산파의 도움도 없이 그냥 낳았다. 그래서
나는 한창 전쟁 통이라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못 먹었고, 세상에 나온 뒤에도 어머
니가 영양부족이라 젖이 전혀 안 나와 모유 한 방울 얻어먹지 못하고 억지로 겨우겨우 자
라났다.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을 때 태몽(胎夢)으로 별 꿈을 꾸었다. 맑은 밤하늘에 다른 별들은
하나도 없고, 오직 북극성만 외로이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태몽을 꾸지만
태몽치고는 희소한 태몽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태몽은 내가 평생을 문장가(文章家)로 살
아나가게 된다는 것을 예지해 준 듯도 하다.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李白)이 모친의 태중
(胎中)에 있을 때, 이백의 모친은 태몽으로 샛별, 즉 태백성(太白星)을 꾸고서 이백을 낳았
다고 한다. 그래서 이백(李白)의 아호가 ‘태백(太白)’이 된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혀주는 북극성은 찬란한 빛을 갖고 있지만, 홀로 떠 있어 무척이나 외
로울 것이다. 나는 태몽에서부터 벌써 처복(妻福)이 없는 것을 암시받았다고 볼 수 있다.
처복뿐만 아니라 ‘여복(女福)’ 자체가 없는 내가, 한평생 ‘야한 여자’ 타령을 하고 있다는
것은 퍽이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자 어머니는 나를 보고 징그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뱃속에서 이
미 너무 여위어 있어서 말라비틀어진 원숭이 새끼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란다. 모유가
안 나오니 우유라도 먹여야 할 텐데 난리 때라 우유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먹고 자란 것은 좁쌀 미음뿐이었다.
더군다나 산후 조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 이후로 평생 산후병에 시달렸
다. 그래서 내가 태어난 4월이 되면 어머니는 늘 온몸이 더 쑤시고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널 낳고 나서부터 이렇게 아프다”는 말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되풀이하곤 했던 것
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흥, 내가 뭐 낳아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나? 왜 아픈
탓을 나에게 돌리는 거야?”하고 중얼거리면서 인생살이 자체가 귀찮고 힘들다고 생각하
며 투덜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많은 병에 시달렸다. 다 뱃속에서, 그리고 어려서 못 먹고 자랐기 때
문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당시로는 고치기가 그리 쉽지 않았던 병인 폐병을 앓기도 했다.
또 황달, 축농증, 치질, 위장병 등을 달고 살았고, 특히 이(齒)가 약해서 자주 아파 치과에
늘상 드나들어야만 하였다.
태어난 게 억울하다는 생각을 물론 어머니한테 직접 드러내서 말하지는 못했다. 내가 무
척이나 마음이 약한 체질이기 때문이었다. 2000년에 일어났던 이른바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들의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교수 재임용 탈락 소동’ 때도, 나는 나의 교수 재임용 탈
락 상신을 주동한, 가장 믿고 사귀었던 후배이자 친구인 K교수 (그때 학과장직을 맡고 있
었다) 와 R교수에게 실컷 욕지거리를 한 번 퍼부어주지 못했다. 그네들은 나한테 “야, 너
나가.”라고 말하며 깡패처럼 굴었는데도 말이다. 마음이 약한 내 성격 때문이었다.
그 대신 나는 금세 급작스런 정신적 쇼크에 따른 '외상성(外傷性) 우울증‘에 걸려 거의
인사불성 상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학교 당국에서 나를 봐주어 (연
구 실적물이 많았으므로. 나를 이지메 했던 교수들은 내 업적물의 ‘질’이 형편없다는 이
유를 갖다 댔었다) 그 사건은 유야무야 됐지만, 나는 깊은 배신감에 의한 외상성(外傷性)
우울증 때문에 3년 6개월 동안을 휴직상태로 보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이 약하니 어찌
내가 어머니한테 ‘낳은 죄’에 대해 따지고 들 수 있었겠는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억울하다는 생각은 평생토록 갔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
는 결혼을 했을 때도 이혼하기까지 4년간 (별거 기간 1년 포함) 절대적으로 피임을 했고,
결혼 전 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할 때도 줄 곳 오럴 섹스로만 일관했다. 오직 임신시키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늦은 나이에 가서야 나를 이 세상에 내보낸 부모에
대한 원망을 담은 솔직한 시를 한 편 써서 발표했다. 1997년, 그러니까 내가 46살 때 쓴
「낳은 죄」라는 짧은 시가 그것이다.
부모들은 다 죽어 마땅해
‘낳은 죄’를 저질렀으니까
자식한테 미리 동의를 구하지 않고
무조건 자식을 낳았으니까
부모들은 다 죽어 마땅해
정말 대역죄(大逆罪)인
‘낳은 죄’를 저질렀으니까
그러나 그 이전에 아주 젊었을 때도 나는 ‘효도(孝道)’라는 윤리에 반발하는 「효도에」
라는 시를, 훨씬 부드러운 어조였을망정 대담하게 써서 발표했었다. 27살 때 쓴 시 「효
도에」의 전문(全文)은 이렇다.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얘기가 아니예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 대겠다는 말이 아니예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리는 서로가 어쩌다 얽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느라 이렇게 늙었다, 고생했다”
이런 말씀일랑 말아주세요.
어차피 저도 또 늙어 자식을 낳아
서로가 서로에 얽혀 살아가게 마련일 테니까요.
그러나 어머니,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
모든 동정으로, 연민으로
이 세상 모든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으로
진정 어머닐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차피 우린
참 야릇한 인연으로 만났잖아요?
위의 시를 쓸 때만해도 나는 ‘사랑해요’를 남발해가며 아양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나도
결국 세상 풍속에 굴복하여 자식을 낳게 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얼마 후
에 가서는 절대로 평생 동안 자식을 안 낳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다. 그런 심정을
나는 그때 집에서 기르고 있던 개에 대한 느낌을 빌려 「업(業)」이라는 제목의 시로 발
표하였다. 내가 28살 때였다.
개를 한 마리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식 낳고 싶은 생각이 더 없어져 버렸다
기르고 싶어서 기르지도 않은 개
어쩌다 굴러들어온 개 한 마리를 항해 쏟는
이 정성, 이 사랑이 나는 싫다.
그러나 개는 더욱 예뻐만 보이고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계속 솟구쳐 나오는 이 동정, 이 애착은 뭐냐
한 생명에 대한 이 집착은 뭐냐
개 한 마리에 쏟는 사랑이 이리도 큰데
내 피를 타고난 자식에겐 얼마나 더할까
그 관계, 그 인연에 대한 연연함으로 하여
한 목숨을 내질러 논 죄로 하여
나는 또 얼마나 평범하게 늙어갈 것인가
하루 종일 나만을 기다리며 권태롭게 지내던 개가
어쩌다 집안의 쥐라도 잡는 스포츠를 벌이면 나는 기뻐진다
내 개가 심심함을 달랠 것 같아서 기뻐진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불쌍한 쥐새끼보다도
나는 그 개가 내 개이기 때문에, 어쨌든
나와 인연을 맺은 생명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다
하긴 소가 제일 불쌍한 짐승이라지만
내 개에게 쇠고기라도 줄 수 있는 날은 참 기쁘다
그러니 이 사랑, 이 애착이 내 자식 새끼에겐 오죽 더해질까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자신 없는 다짐일지는 모르지만
정말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모든 사랑, 모든 인연, 모든 관계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도록
이를 악물어 봐야지
적어도, 나 때문에, 내 성욕 때문에
내 고독 때문에, 내 무료함 때문에
한 생명을 이 땅 위에 떨어뜨려 놓지는 말아야지
위의 시의 내용대로 나는 ‘자식 안 낳기’를 실천했다. 지금 나이가 되도록 그렇게 일관
되게 (다시 말해서 변절하지 않고) 실천한 것에 대해 나는 큰 자부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