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이 <흥인지문>으로 불린 사연
英祖 :
돈의문과 숭례문의 현판은 둘 다 ‘敦義門’, ‘崇禮門’이라고만 썼는데 흥인문의 현판만 유독 ‘興仁之門’이라고 썼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徐命珩(1687~1750) :
‘之’자를 근거도 없이 더 써넣었겠습니까마는 신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英祖 :
翰林은 알고 있는가?
黃景源 :
신도 잘 모릅니다.
英祖 :
注書는 아는가?
李箕彦(1697~1743) :
(일어났다 다시 엎드려) 신 또한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듣기로 도성 동쪽에 있는 水口의 지세가 매우 취약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曲城을 쌓고 현판에도 ‘之’ 자를 더 써넣었다고 합니다. 한 글자를 더 넣는다고 해서 수구의 취약함을 보강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예전 사람들은 그렇게들 말했습니다.
英祖 :
注書가 알고 있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 말이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承政院日記 英祖 17년(1741) 4월 11일》
上曰, 敦義·崇禮兩門門額, 皆只書敦義門·崇禮門, 而興仁門門額, 則獨書以興仁之門, 其義何也? 命珩曰, 之字偶爾加書乎? 臣未詳其義矣。上曰, 翰林知之乎? 景源曰, 臣亦未能詳知矣。上曰, 注書知之乎? 臣箕彦起伏曰, 臣亦未能詳知, 而曾聞國都東方水口甚虛, 故別築曲城, 門額亦加書之字云。一字增減, 似若無關於水口之虛疎, 而先輩之言如此矣。上曰, 注書所知是矣, 此說誠然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