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날새와 함께하는, 2026년 6월 19일 금요일입니다. 창세기 사십구장, 11절, 12절 말씀에서 '포도나무에 나를 매며 포도주로 빨래하기'라는 제목으로 창세기 이야기를 드립니다.
11절: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절: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아멘
제가 시골에 살다가 대구로 이사 온 것이 육십 년대 후반이었습니다. 대구로 이사 오기 전까지 시골에 사는 동안, 저는 포도를 구경해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 사는 동안 포도는 아니지만 포도와 닮은 산머루는 가을이 되면 몇 차례는 먹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산머루는 동네 근처 얕은 산에는 없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는 팔공산에 올라가면 산머루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동네 친구분들과 산나물을 하려고 팔공산에 가셨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산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오셨는데, 산나물 보따리 안에는 어김없이 새까만 산머루 몇 송이가 들어있었습니다. 지금의 그 어떤 포도도 그때의 산머루 맛을 따라올 수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유다를 축복할 때 포도주를 축복의 이미지로 사용하여 말씀하였습니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하였습니다. 나귀를 쉬게 할 때에는 나귀가 제멋대로 어디 가지 못하도록 줄을 묶어둡니다. 그럴 때 우리나라 같으면 감나무나 대추나무나 아니면 버드나무 같은 큰 나무에 줄을 매어둡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에는 나귀보다 몸집이 절반도 되지 않는 염소라도 묶어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는 어린아이가 흔들어도 뿌리까지 흔들리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귀를 묶어두면 나귀가 마음만 먹으면 포도나무 뿌리째 뽑고는 얼마든지 달아날 수가 있습니다. 설령 그렇게 하지 않을지라도 나귀가 몸을 한번 크게 흔들게 되면, 포도나무가 태풍에 흔들리듯 흔들려서 포도송이가 우수수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보가 아니고서는 포도나무에 나귀를 매지 않습니다. 더욱이나 나귀 새끼는 매지 않습니다. 나귀 새끼는 천방지축입니다. 그런 나귀 새끼를 포도나무에 매게 되면 포도송이가 남아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다 지파들은 포도나무에 나귀를 매고 또한 나귀 새끼를 맬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포도나무밖에는 주변에 나무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방천지가 포도나무 밖에 없기 때문에 포도나무에 나귀를 맬 수밖에 없으며 나귀 새끼를 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물보다도 포도주가 더 흔하여 옷을 포도주로 빨고 겉옷은 포도 즙에 빨래할 정도로 포도나무가 차고도 넘쳤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포도나무가 숲을 이룰 정도로 많은 것이 어떤 축복입니까? 팔레스타인에서는 포도가 생활의 기본입니다. 특히 포도주 없는 결혼식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도주는 기쁜 날에는 빠질 수가 없습니다. 포도주는 여러 사람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의 포도주는 기쁨을 찾게 해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포도주는 기쁨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러한 포도가 무한정으로 있다는 것은 무한정으로 기뻐하며 풍성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누가 이런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사자의 발톱에 걸려든 사람입니다. 사자는 한번 물었거나, 한번 발톱으로 움켜쥐면 결코 놓치를 않습니다. 사자 같으신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을 예수님은 그 어떤 것에게 빼앗기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한번 붙들린 사람은 그 능하신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넘치는 기쁨이십니다. 나귀 새끼를 포도나무에 매고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포도주에 빨래를 할 정도로 포도가 넘쳐나듯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십니다.
누가복음 이장 10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었다는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 하였습니다. 성령 충만과 기쁨이 별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젓가락은 두 개가 하나이듯이 성령 충만은 기쁨과 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것은 탈이 나도 단단히 난 것입니다. 큰 기쁨이되신 예수님를 우리가 구주로 믿는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도록, 우리 삶의 끈을 세상의 재물이나 쾌락이나 출세나 스마트폰이나 게임에다가 묶지 말고, 포도나무에 나귀 새끼를 매고, 나귀를 매듯이,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나를 매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리고 세상 것으로 나를 깨끗하게 하려 하지 말고, 나를 포도주 보다 더 진한 예수님의 피로, 먹보다도 더 검은 죄를 깨끗하게 씻도록 기도합시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포도나무에 나를 묶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기뻐하며 살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항상 기뻐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포도주에 빨래하듯이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날새 :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신다.(사 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