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
열정과 욕심을 구분하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 일어나는 시험이 대부분 욕심 때문입니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잘해 보자”는 열심의 대부분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 안에 교묘히 숨어 스스로 속고 지냈던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를 향한 열정’으로 포장되어 있었기에 분별하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회개없는 열심이 욕심이었습니다.
기도없는 열심이 욕심이었습니다.
순종없는 열심이 욕심이었습니다.
말씀없는 열심이 욕심이었습니다.
사랑 없는 열심이 욕심이었습니다.
참 많이도 스스로 속이고 살았습니다.
교회도 과시욕이 있습니다.
교인 수나, 예배당 건물,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스스로 감당할 영적 수준이 아니면서 교인만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욕망이 거룩한 것으로 포장되니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성도들도 욕심을 축복이라고 스스로 속이고 삽니다.
돈만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감당하지 못할 높은 지위만 바랍니다.
미국의 어느 부자 교인이 진정으로 회심한 후 고백했습니다.
“제가 간음하거나 방탕한 죄를 지었다면 교회 안에서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도둑질하고 살인하였다면 얼굴을 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싼 차를 사고 큰 집을 사서 과시하는 일에 대하여는 오히려 축하를 받았습니다”
욕심은 망하는 길입니다.
욕심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다스릴 수 없습니다.
부자 청년처럼 결국 욕심 때문에 영생을 잃게 되고,
주위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고 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공동 상속자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 땅에서 체류하며 양육받고 연단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자녀로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한 미래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을 훈련하셨던 것입니다.
때로 그것은 그 당시에 보기에 너무 심하거나 설명할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백성을 그의 자녀로 보지 않으셨다면,
다른 나라들처럼 그들을 혼자 걷게 놔두셨을 것입니다.
광야의 연단을 통하여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신 8:3)
알게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에 충성된 자에게 많은 것을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숙해지게 면밀히 역사하시고,
많은 것을 맡기시기 전에 우리가 작은 것에 신실한지 보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욕심이 있으면 이 때를 견디지 못합니다.
열정과 욕심은 참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요?’
욕심은 도를 닦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결코 욕심을 이길 수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한 사람만이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아니, 버려집니다.
주 예수님을 알면 누구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기쁨을 가진 사람만이 욕심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어떤 것 보다 귀한 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